▲ 독수리연대 장병들이 주간 경계 근무를 수행하고 있다. (독수리연대 제공)

대한민국 안보가 시작되는 GOP… 그곳엔 ‘태풍’이 있다

[천지일보=송범석 기자] ‘소통불능’ ‘구타·폭언’ ‘가혹행위’ 그리고 ‘자살’…. 우리 군에 점철된 이미지다. 여기에 ‘폐쇄’와 ‘구식’이라는 단어까지 덧씌워지면서, 군은 말 그대로 어두운 냄새나 풀풀 풍기는 집단으로 인식이 돼왔다. 왜 이렇게 됐을까. 본지는 유독 군의 사건·사고만 물고 늘어지는 언론의 보도 행태에서 그 문제점을 찾았다. 분명 군에도 우리 사회가 본받을 만한 점이 존재한다. 우리 군은 지금 이 순간에도 국민에게 외면 받지 않기 위해 혁신을 거듭하면서, 묵묵히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제, 누군가는 그들의 노고를 알려야 한다. 그 몫을 천지일보가 맡았다.

서울에서 2시간. 경기도 연천군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다. 무적태풍 28사단 독수리연대(연대장 이제수) 정문에는 독수리마크와 함께 ‘존중’과 ‘배려’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정문에서부터 부대의 특성을 느낄 수 있었다.

“태풍!”

하늘이 떠나갈 듯한 초병의 경례구호가 이어졌다. 초병의 목소리는 그 부대의 사기와도 관계가 있다는 말이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연대 본부에 신분증을 맡기고, 다시 돌아 나와 GOP(주력 부대의 전방에 배치돼 적을 관측하거나 적의 기습으로부터 아군을 보호하는 부대나 진지)로 향했다. 10여 분이 흐른 후, 이내 검문소에 도달했다. 검문소를 통과하자 또 다른 검문소가 나왔다. 전파장애가 있으니 휴대전화를 미리 꺼두는 게 좋다는 귀띔에, 의심 없이 휴대전화 전원을 눌렀다. 최전방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진풍경이었다.

계속 북쪽으로 올라가니 논과 밭만 시야에 들어왔다. 건축물이라든지, 인간의 손길이 미친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경사 70도의 가파른 산길을 위태위태하게 올라가는 취재차량을 염려하는 것도 잠시, 차량 앞으로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고라니를 본 철없는(?) 취재진은 이내 탄성을 지르며 손을 흔든다. 봄의 기운을 머금은 낮은 숲 사이로 ‘지뢰’ 표시가 붙은 철조망이 묘한 대비를 이루는 이곳, GOP에는 자연의 풍광이 오롯이 남아 있었다.

취재진이 검문소 3곳을 지나 처음 다다른 곳은 박격포 진지였다. 거대한 거북 등껍질 모양의 유개화(有蓋貨) 진지는 적의 포탄으로부터 장병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흔히 적이 포탄을 쏘면 전방부대부터 표적이 돼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고 알고 있는데, 이는 짧은 생각이다. 유개화 진지의 경우, 인원 보호는 기본이고 5분 안에 반격할 수 있는 시스템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 박격포 설치를 지켜본 결과 2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또한 유개화 진지 자체에 박격포와 포탄이 배치돼 있기 때문에 유사시 위험을 무릅쓰고 탄약고까지 달려가지 않아도 된다. 말 그대로 ‘완벽방호-즉각대응’ 채비가 완비돼 있는 것.

이유민(중위) 소대장은 “GOP 경계작전 간 24시간 경계태세를 유지한 가운데서도 교육 훈련 시간을 반영, 계급별 임무 숙달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면서 “전 인원 포수화 훈련을 통해 유사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즉각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포를 다루는 장병들도 특별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손원태 이병은 “이곳에 배치된 박격포는 사람이 들 수 있는 포 중에 최대 화력을 가지고 있다”면서 “빠른 설치를 통해 가장 강력한 화력으로 적들을 섬멸하는 임무를 맡은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격포 진지에서 차로 조금 더 들어가니 말로만 듣던 GOP 소초가 모습을 드러냈다. 소초는 철책을 지키는 장병들이 생활을 하는 공간이다. 장시간 경계근무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심하기 때문에 GOP 소초는 늘 총기사고 위험지대로 인식돼 왔다.

이 같은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연대는 현재 ‘전우사랑 한마음 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칭찬과 격려·긍정 문화를 정착시켜 장병들이 심적인 안정을 얻도록 이끌고 있는 것.

아울러 생활관 환경이 정신건강에 큰 영향을 미치므로 제대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 마련에도 힘을 쏟았다. 생활관에서는 일단, 2층 침대가 눈에 띄었다. 과거 내무반처럼 일렬로 매트릭스를 깔고 자는 환경은 아무래도 요즘 세대에게는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침대’는 휴식에 큰 도움이 된다.

특히 인터넷을 할 수 있도록 마련한 공간은 취재진에게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곳에서 장병들은 계급과 상관없이 페이스북 등을 통해 가족·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취재 도중 한 일병이 인터넷에서 ‘아이유’ 사진을 검색하며 천진난만하게 웃는 모습에 주위 분위기가 환해지기도 했다. 물론 보안사항은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고.

김유빈 상병은 “아무래도 군대에 있다 보니까 친구들이 보고 싶은데, 페이스북을 통해서 바깥 친구들과 많은 대화도 나누고 하면 스트레스를 많이 풀게 된다”면서 “이등병이라고 못하는 것도 아니고 선임들이 다 시켜주기 때문에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민수 일병은 “근무 후 짬짬이 노래방을 이용하고 컴퓨터도 사용하면서 즐기고 있다”며 “가족과 이메일 등으로 연락을 할 수 있어 특별히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소초를 책임지고 있는 임동명(중위) 소초장은 “GOP 소초장으로서 경계작전에 임하면서 병력 통제에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며 “소초단위 생활을 하다 보니 좀 더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소초 간부들과 병력들이 어우러질 수 있어 상호 존중하고 배려가 넘치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취재진이 찾은 곳은 철책 근무 지역이었다. 불과 1km 전방에 북한군 소초가 뿌연 점묘화처럼 펼쳐져 있었다. 피는 같지만, 사상이 다른 저들이 눈앞에서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니 숨이 ‘턱’ 막혀왔다. 이곳에서 서울은 직선거리로 65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무엇보다도 서울로 연결되는 주요 도로가 이 부근에 있다. 만일 이곳이 뚫린다면…. 해일 같은 전율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GOP는 그저 분단의 상징으로 기억될 곳만은 아니었다. 최전방을 지키는 ‘용사’들이 있기에 우리는 각자가 간직한 젊음, 사랑, 꿈, 그리고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삶의 뜨락에 피워낼 수 있는 것이다. 온몸으로 다른 사람의 행복을 지키는 일보다 더 값진 게 있을까. 그렇기에 이곳 장병들은 스스로를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부른다.

박종철 상병은 “GOP는 민간인들에게 허락되지 않은 곳이고, 군인들 중에서도 극소수의 선택받은 인원들만 올 수 있는 곳”이라면서 “그것을 생각하면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이 매우 자랑스럽다. 야간 경계작전을 마치고 아침 해가 떠올랐을 때, ‘오늘도 국민들이 안전한 하룻밤을 보냈구나’하는 생각이 들 때도 큰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러한 사명감 때문에 전역을 연기한 장병도 있었다. 경계임무 종료를 완수하기 위해 전역을 마다하고 6개월간 복무를 연장한 김기덕 전문하사는 GOP에서 풍겨 나오는 ‘사람냄새’가 어떤 꽃향기보다도 좋다고 말했다. 그는 “주·야간 계속되는 경계작전과 교육훈련, 끊임없는 사격훈련과 최근에 시작한 진지공사까지, 하루가 정말 짧게 느껴지지만, 전우들이 있어서 정말 즐겁게 해내고 있다”면서 “군 생활을 통해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좋은 전우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 내 인생의 가장 값진 선물”이라며 진심을 전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