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지 내에 길게 이어진 ‘묵주기도의 길’. 나무나 꽃들과 잘 어우러져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백지원 기자] 푸른 나무들 사이로 ‘기도의 길’이 길게 이어진다.

산을 한 바퀴 휘감는 기도의 길을 따라 걸음을 내디디면 방송에서 나오는 ‘묵상기도’가 귓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그 위에선 사람들이 한 발자국씩 걸음을 옮기며 기도를 올린다.

◆무명 순교자들의 순교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성모 마리아’를 테마로 조성한 ‘남양 성모성지(경기도 화성시 남양면)’는 이름처럼 ‘엄마의 품’을 생각나게 한다.

드넓은 성지 곳곳에는 다양한 모습의 성모 마리아 상이 세워져 있고, 성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십자가의 길이나 묵주기도의 길은 산책로처럼 편안하고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원래 이곳은 병인박해 당시 이름 없는 수많은 순교자들이 죽어갔던 곳이다.

이름이 남은 사람은 김 필립보(1818~1868), 박 마리아(1818~1868), 정 필립보(?~1867), 김흥서 토마(1830~1868) 네 사람뿐이다.

천주교 측은 1983년 남양 순교지 발굴을 한 뒤 이듬해 성지 개발에 들어갔다.

이후 광장 조성과 성모상 제막, 경당 건립 등 보수를 거쳐 성지는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 성지 입구에 세워져 있는 성모 마리아 상(像). 남양 성모성지는 ‘성모 마리아’를 테마로 조성한 순교성지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성모 마리아를 테마로
남양 순교성지가 ‘성모 성지’라는 테마를 갖게 된 것은 성모 마리아가 ‘순교자들의 어머니’로 상징되기 때문이다. 성지 측 안내에 이 같은 글이 있다.

“성모님이 아들의 십자가 곁에 서 계셨던 것은 기적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모든 수난과 죽으심에 참여하신 성모님께서 분명히 피를 흘린 이상으로 고통을 당하셨고, 따라서 모든 순교자의 모후가 되심이 확실하다….”

남양 성지에 유난히 기도의 길이 길고 넓게 펼쳐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 순교자들에 대한 기록과 증언을 보면 당시의 순교자들이 박해의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묵주기도를 올리며 성모 마리아에 의지했다는 것이 성지 측의 설명이다.

어머니가 아들의 소원을 들어주듯 신자들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가 그들의 기도를 들어줄 것이라는 믿음이 바탕을 이루는 것이다.

▲ 성모 마리아나 예수와 여러 조형물, 건축물들이 자연과 잘 어우러져 조성돼 있어 많은 사람들이 성지를 찾는다. ⓒ천지일보(뉴스천지)
▲ 강복 그리스도 상은 예수의 모습이 십자가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유난히 십자가에 못 박힌 손 부분이 부각돼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푸른 나무들과 잔디밭
얕은 물이 흐르는 다리를 지나 도착한 성지에선 철쭉이 가득한 길이 가장 먼저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이 길 초입에는 작은 성모 마리상이 세워져 있는데, 아기 예수를 품에 안은 모습에서 따스함이 전해진다. 그 뒤로 작은 길이 이어져 있고, 옆으로 넓은 운동장이 펼쳐져 있지만 공사가 진행 중이라 통행은 어렵다.

이 길뿐 아니라 성지 곳곳에는 꽃들이 가득했는데 잘 가꾸어진 꽃과 나무들, 그리고 이 꽃들을 보호하기 위해 세워진 표지판 등은 많은 정성이 들어갔음을 짐작게 했다.

이 길 끝에 다다르면 본격적으로 성지 안으로 들어서게 되는데, 울창한 나무들과 그 아래 펼쳐진 싱그러운 잔디밭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사람들은 잔디밭 아래서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한다.

그 앞으로 매우 커다란 조각상을 발견할 수 있는데 모양이 조금 독특하다. ‘강복 그리스도 상’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조각상은 예수의 모습을 표현했는데 그 자체로 십자가의 형상을 하고 있다.

이 조각상에선 손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 십자가에 못 박힘을 상징하는 이 손은 ‘용서와 치유’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 옆으로는 성체 조배실과 초 봉헌실이 있는데 이 건물들은 자연과 잘 어우러져 세워져 있다.

그 다음 발길을 옮겨 닿은 곳은 경당 옆에 있는 ‘순교자의 항아리’다. 박해를 피해 남양 일대에 숨어 살던 천주교 신자들은 옹기를 구워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 천주교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 숨어 살면서 옹기를 구워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또한 항아리 밑에 십자가를 표시해 교우들끼리 소식을 주고받기도 했다.

당시 이 일을 하는 것은 매우 천대받는 일이었지만, 천주교 신자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신분까지도 기꺼이 내려놓았다.

십자가의 길과 묵주기도의 길은 산을 한 바퀴 돌아 길게 이어진다. 걷다보면 때론 푸른 숲을 만나기도 하고, 때론 화사한 꽃길을 만나기도 한다.

이렇게 한 바퀴를 돌아 끝에 다다르면 커다란 성모상 앞에 이른다. 이 성모상은 곱게 빗어 올린 머리와 얼굴 등에서 한국 여인의 모습을 생각나게 한다.

그리고 그 옆에 어머니의 옷자락에 매달린 한 아이의 모습도 한국적인 느낌이 묻어난다.

이처럼 남양 성모성지 둘러보다 보면 어느새 엄마의 품에 안긴 듯 마음이 포근하고 차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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