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찰스 토마스 스터드.
[천지일보=백지원 기자] 찰스 토마스 스터드는 한때 “영국 최고의 선수”로 명성을 날리던 크리켓 선수였다.

하지만 캠퍼스 집회에 참석하며 회심한 그는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중국과 인도, 아프리카 등지를 오가며 선교사로 새 삶을 살아갔다.

◆크리켓 선수의 꿈을 접고
처음 그가 선교를 위해 헌신하겠다고 다짐한 때는 캠브리지 대학의 크리켓 선수로 활동하던 시기였다. 유명 팀에 속한 스터드는 그 가운데서도 주장으로 활동하며 유능한 선수로 꼽혔다.

그런 그가 선교를 떠난다는 것은 지금까지 누려온 명성과 보장된 미래 등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것을 의미했다. 때문에 그런 그에게 누군가가 이렇게 물었다.

“자네는 보장된 미래를 포기하고 떠나는 것이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러자 스터드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죽으셨다면 그를 위한 어떠한 희생도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다”고 고백하며 주저없이 선교를 위해 나섰다.

그가 이같이 회심하게 된 계기는 형이 큰병으로 죽을 위기에 놓이면서였다. 생과 사를 오가는 형을 보면서 “이같이 유명세를 누린다고 한들 죽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이에 캠퍼스 집회에 참석하며 설교를 듣게 됐다. 그러면서 구원의 기쁨을 깨달으며 복음을 위한 헌신을 다짐했다.

◆물려받은 재산도 모두 나눠줘
그는 중국으로 건너가 물려받은 50만 달러에 이르는 재산마저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그리고 검소하게 살면서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펼쳤다.

특히 그는 마약중독자들에게 관심을 많이 기울였는데 그들이 복음을 통해 새 삶을 살기 바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1894년 건강이 악화되면서 다시 영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몸이 아직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그는 6년여 동안 미국과 유럽을 순회하며 학생들을 대상으로 캠퍼스 설교, 부흥집회를 열었다.

그는 이 집회를 통해서 선교에 대한 비전을 강조했는데 이로 인해 그의 집회에 참석했던 수백 명이 해외 선교사를 지원하게 됐다.

◆인도와 중앙 아프리카로
또한 아버지의 유언을 따라 가족과 함께 인도로 선교를 떠나 그곳에서 6년여간 활동을 펼쳤다. 그러다 또다시 건강문제로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어느 날 길을 가다 “식인종들도 선교사를 기다린다”는 문구를 보게 됐다.

그러면서 중앙 아프리카로 황금을 찾기 위해 상인, 무역상들은 몰려오지만 복음을 전하러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에 아프리카로 떠나기로 결심했는데 당시 병으로 건강이 악화된 상태였던 터라 주변 사람들이 극구 말렸고, 의사도 가면 죽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황금을 얻기 위해 사람들도 도박을 하는데, 나는 하나님을 위해 도박을 하겠다”며 고집을 꺾지 않고 아프리카로 가서 18여 년 동안 선교사역을 계속했다.

그의 이 같은 헌신적인 노력으로 많은 아프리카인들이 복음을 듣고 세례를 받았다.

그는 1931년 71세를 일기로 콩고에서 생을 마감했는데 7천 명에 이르는 아프리카인들이 그의 장례를 보기
위해 찾아왔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