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잇큐스님.
[천지일보=백지원 기자] “앞으로 어려운 일이 생기면 이것을 뜯어 보아라.”

잇큐스님은 세상을 떠나기 전, 제자들을 불러 모아 봉투 하나를 건넸다.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 절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그런데 스님이 입적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절이 경영난을 겪게 됐다. 제자들은 방안을 모색하던 중 잇큐스님이 남기고 간 봉투를 열어보기로 했다.

그들은 금전적인 어려움을 해결해줄 무언가가 들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봉투를 열었으나 봉투 안에는 이 같은 글이 적힌 종이만 있었다. “걱정하지 말거라, 어떻게 될 테니까.” 스님이 제자들에게 남기고 간 것은 다름 아닌 ‘지혜’였다.

◆독특했던 삶
일본 무로마치 시대를 살았던 잇큐스님은 일본 불교사에서 매우 독특한 인물로 회자되고 있다. 고기나 술을 즐기는 등 무애행을 실천했으며, 잠시 절의 주지를 지낸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평생을 떠돌아다니며 선(禪)을 전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그는 세상의 명예나 권세, 물질적인 욕심 없이 살았던 삶과 독특하면서도 깊은 가르침으로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와 관련한 우화나 일화가 에도 시대에 쓰인 잇큐 이야기에 전한다.

어린 시절부터 스님은 매우 총명했다. 어린 잇큐스님은 스승에게 “왜 사람들은 죽어야 하나요?”라고 질문했다.

그러자 스승은 어린 스님을 기특해하며 자세히 답을 했다. “사람이 죽는 건 자연의 섭리란다. 사람뿐 아니라 이 세상 태어난 모든 것은 죽는단다.” 그러자 어린 잇큐스님은 뒤에 감추었던 깨진 찻잔을 꺼내며 이같이 말했다. “스승님, 스승님의 이 찻잔도 죽을 때가 되었나 봅니다.”

◆“벚꽃나무 쪼개 봐라”
장성한 스님은 신도들의 집에 자주 초청받았다. 한 번은 교토에 있는 한 부호의 집으로부터 초청받았을 때였는데 잇큐스님은 누더기 옷을 입고 지저분한 모습으로 그 집을 찾았다.

그러자 집 주인은 “당장 저 거지를 쫓아내라”고 소리쳤고, 스님은 하인들에 의해 끌려 나갔다. 잠시 후 스님이 목욕을 하고 깨끗한 모습으로 금란가사(金襴袈裟, 금실로 지은 스님들의 법의)를 입고 다시 그 집을 찾아가자 주인은 매우 깍듯이 스님을 맞이했다.

하지만 잇큐스님은 문 앞에만 서 있을 뿐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주인이 그 이유를 묻자 스님은 이같이 답했다.

“좀 전에 누더기 옷을 입고 왔을 때는 박대를 하더니 금란가사를 입고 오니 환대를 합니다. 그래서 저보다는 이 금란가사가 더 필요한 듯해 이 옷을 드릴 테니 법회는 이 옷이 주관하도록 해주십시오.” 이 같은 꾸짖음으로 가르침을 전했던 것이다.

또 하루는 으슥한 숲길을 가다 험상궂은 떠돌이 스님을 만났는데 그 스님은 잇큐스님을 시험해 보고자 시비를 걸었다. “불법이 어디 있느냐?” 그러자 잇큐는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며 “내 가슴 속에 있다”고 답했다.

그러자 떠돌이 스님은 “정말 있는지 가슴을 열어 봐야겠다”며 잇큐스님에게 단도를 들이댔다. 그러자 잇큐스님은 이 같은 시 한 수를 읊었다고 한다.

“때가 되면 해마다 피는 산벚꽃, 벚꽃나무 쪼개 봐라. 벚꽃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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