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남도청 축산과 김관식 씨. ⓒ천지일보(뉴스천지)

“넓게 보며 사랑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집중”
짧은 순간 말 한 마디로 사람들 웃기고 울리는 사회자

[천지일보 충청=김지현 기자] 충남도청 농수산국 축산과에 가면 김관식 씨가 있다. 어떻게 보면 아주 평범한 옆집 아저씨 같아 보이지만 그에게 마이크를 맡기면 예사롭지 않은 사람으로 변한다. 그에겐 수많은 사람을 짧은 순간 말 한마디로 웃기고 울리는 재주 아닌 힘이 있다.

그는 정말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고도 남을 사람 같이 보이기도 하고 한순간도 관객을 지루하지 않게 행사를 진행하며 감동과 웃음을 자아내는 지혜와 순발력이 있다.

‘어떻게 진행을 그리도 재미나게 하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김관식 씨는 “사회자는 전체를 두루 볼 줄 알아야지 결코 한 곳만 치중하면 안 된다”고 답한다. “관객 모두 넓게 보면서 사랑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집중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죠. 모두가 즐거운 시간이 돼야 하기 때문에 행사 진행 프로그램, 의전과 내빈, 옆쪽과 뒤쪽 관객 등을 동시에 신경을 써야 해요.”

그는 최근, 지난 24일 충남도청이 내포 신도시로 이전하기 전 ‘마지막 영산홍 축제’에서 뛰어난 진행 솜씨와 역량을 발휘했다. 이날 그는 관객들로 하여금 초여름 같은 봄 날씨와 함께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웃음을 만끽하게 했고 때로는 아픈 가슴의 응어리와 현실의 답답함을 시원하게 터뜨려 주기도 했다.

예를 들면 경품 추첨을 할 때 “맨 날, 있는 사람은 경품도 잘 타. ‘나는 태어나서 경품 한 번도 못 타봤다’는 분 있으면 나오세요”라고 하자 순간 손을 들고 한 직원이 나왔다.

김관식 씨는 “네~ 자전거 한 대 드립니다”라면서 경품을 전달했다. 자전거를 받아든 직원은 “그동안 속상했던 마음이 다 풀렸다”며 웃었다.

◆공감대 형성하고 함께 느끼고 이해하는 마음, 아픈 체험에서 나와
김 씨가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는 오늘이 있기까지 그에겐 나름대로 아픔과 고난을 극복하는 과정이 있었다.

그는 “많은 사람 사이에 공감대를 형성해나가면서 함께 느끼고 서로 아우를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상대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아픈 체험에서 나오는 것 같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충남 부여 규암면 나복리에서 태어난 그는 규암초등학교, 백제중학교, 부여고등학교를 거쳐 공주대학교 축산과를 졸업하고 현재 공주대 대학원 축산과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 여유롭지 못한 형편에 학교를 다니던 그에게 아픈 추억이 하나 있다.
“아침에 학교에 가려고 할 때 가끔 누나가 울 때가 있었어요. 누나가 어머니에게 갑자기 육성회비 등을 달라고 하자 돈이 없는 어머니는 이른 아침부터 동네 먼 곳까지 돈을 꾸러 가셨지요. 그 모습을 본 저도 학교에 내야 할 것이 있었지만 아무 말도 못 꺼낸 적이 꽤 있었어요.”

당시 어린 김관식 씨는 “나는 어른이 돼 장가를 가면, 자식에게 내 마누라가 돈 꾸러 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겠다”고 작정을 했다. 또 그는 “우리 집은 왜 이렇게 못살까. 토끼를 기르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 규암면 ‘딴펄’이란 동네에 사는 친구에게 그때 돈 100~200원을 주고 토끼 두 마리(암, 수컷)를 샀다.

시골집 뒤편 두엄이 쌓인 곳에 아버지가 벽돌로 칸막이를 쌓아주고 그는 거기서 토끼를 길렀다. 그는 어린 나이에 새벽에 일어나 토끼풀을 뜯어다 놓고 물지게를 지고 물을 길어다가 부뚜막 물 항아리에 가득 채워놓아야 학교에 갔다. 조금 더 자라서는 돼지도 길렀다. 이렇듯 어렸을 때부터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그는 무진 애를 썼다.

그래서인지 그는 가장 안정적인 직업 중의 하나인 공무원의 길을 택했으며 “정말 행복하고 멋진 직업인 것을 동료도 다 느꼈으면 좋겠다”면서 “부모님께서도 기뻐하신다”고 말했다.

▲ 충남도청이 내포신도시로 이전하기 전 ‘마지막 영산홍 축제’를 진행하고 있는 김관식 씨가 지난 24일 안희정 도지사의 인사말이 있기 전, 화려한 입담을 뽐내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그는 MC 등 ‘연예 분야의 일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에 대해 묻자 “서울에서 재수학원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로 음악다방 DJ를 했다”는 이야기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나이트클럽 DJ를 하면서 점차 노련한 MC의 자질을 갈고 닦게 됐다.

그는 태권도 공인 3단으로 중학교 때부터 선수생활을 했으며 군대에서는 조교를 했다. 이때 그의 연예 경력 탓에 문선대로 차출됐다. 그는 군인의 애로를 풀어주기 위해 2시간 동안 해학과 웃음을 주는 편안한 시간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강원도 정선, 속초 군민회관과 영월 극장 등에서 주민과 부대원이 함께 어우러지는 ‘군‧민 한마당 축제’ 등의 사회를 맡았다.

“당시 공연의 반응이 좋아 앉을 자리가 없자 2층에 올라가 파이프를 잡고 위험하게 매달려서라도 공연을 보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사인해달라는 학생들도 많았죠.” 당시 그는 유머, 개그뿐 아니라 창작극 각본, 연출까지 맡기도 했다.

이같이 다재다능한 그에게 에피소드를 전해달라고 하자 “태백 공연 전날 밤에 군부대 불을 다 꺼놓았는데 숙소 쪽으로 가다가 어두워서 그만 가파른 계단에서 50계단쯤 굴러떨어졌어요. 그때 팔이 부러졌는데 혼날까 봐 아무 말도 못하고 바로 다음날, 웃어가면서 행사 진행을 끝까지 했지요.”

현재 공무원이자 가장, 남편, 아빠로서 충실한 삶을 엮어가고 있는 김관식 씨는 충청남도 공무원노동조합 대외협력국장이기도 하다. 그는 또 독학으로 일본어를 익혀 ‘백제문화 한일 교류 공연’ 방송에도 출연한 바 있으며 일본에 가면 ‘와리깡(각자 밥값 내기)’에 익숙한 일본인 가운데 밥을 사주는 친구들도 꽤 많이 있다.

그는 이영순(44) 씨와의 사이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 중고등학생인 용남, 다은을 낳은 지 한참 만에 본 늦둥이 하은(3)과 함께 ‘행복한 충남인’의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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