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순화 화백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백지원 기자] 고운 한복을 입은 성모 마리아가 미소를 짓는다. 동그란 얼굴에 곱게 머리를 빗어 올린 모습은 ‘한국의 어머니들’을 떠올리게 한다. 편안하고 따뜻한 모습 속에는 포근한 엄마의 마음, 그리고 한국의 정서가 담겼다.

심순화(카타리나) 화백은 ‘성화(聖畫)’를 그리는 작가다. 1999년부터 6차례에 걸쳐 개인전을 열었고,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여러 곳에 그의 그림이 걸려 있다.

지난 2003년에는 세계적인 명소인 루르드에, 2007년에는 로마 교황청에 그림이 봉정될 만큼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서울 ‘당고개 성지’ 건축 설계와 그곳에 그려진 성화들도 그가 도맡아 작업했다.

◆“모든 걸어온 길이 하느님의 섭리”
그는 왜 많은 그림들 가운데 ‘성화’를 그리게 됐을까. 심 화백은 “처음부터 성화를 그리려 했던 건 아니었다”며 “지금 되돌아보면 모든 과정이 하느님의 섭리였던 것 같다”고 말문을 열었다.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아이들에게 때 묻지 않은 순수함, 시골의 정서를 나눠주고 싶었단다. 그래서 동심화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때 한 교장 수녀의 부탁으로 장애아들의 모습이 담긴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이 그림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는 계기가 됐다. 그 그림을 눈여겨 본 한 신부에 의해 가톨릭 미술가협회에 가입하게 된 것이다.

“그때는 ‘종교화’가 무엇인지도 몰랐고, 본 적도 거의 없었어요. 무엇을 그리느냐부터 막혔죠.” 그러다 그는 우연히 듣게 된 ‘아베마리아’에서 마음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으며 ‘성모님을 그려야겠다’는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어떤 모습을 그려야 할까라는 문제에 또다시 부딪혔다.

◆한국적인 성모 마리아
그는 그 답을 어린 아이들에게서 찾았다.

“아이들을 보면서 성모님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면 이 아이들이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유럽의 성모님 대신 우리의 모습, 한국적인 모습으로 오는 성모님이라면 아이들이 더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이에 그는 한복을 입은 성모님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후 기도나 미사, 성체조배(성체 앞에서 존경을 바치는 행위) 등 신앙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감정들과 생각들을 그림 속에 담아냈다.

▲ 심순화 화백의 그림들 ⓒ(사진제공: 심순화 화백)
그의 그림의 주된 대상은 성모 마리아다. 그는 성모 마리아를 그릴 때는 어떤 구체적인 모습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 아름다움의 본질을 생각하며 그린다고 했다.

그렇게 그가 그린 그림들은 전시회 등을 통해서 알려지며 점차 빛을 발했다. “저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춰질까를 생각하고 그린 게 아니었어요. 그런데 반응이 정말 좋은 거예요. 어떤 분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하시고 천국을 봤다고 이야기해주시기도 해요.”

◆“그림 그리는 일은 아기를 낳는 것”
심 화백은 “그림 그리는 일은 아기를 낳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단순히 그림을 그리고 색을 칠하는 작업이 아닌 한 명의 아기를 탄생시키는 일만큼 조심스럽고 많은 정성을 필요로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작업실을 ‘산실(産室)’이라고 표현했다.

루르드에 보낼 그림을 그릴 때는 6개월간 골방에서 문을 잠그고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나쁜 건 무조건 피했다. 길을 갈 때도, 텔레비전을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오로지 집과 성당만 오가면서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생각했다. 이는 나쁜 기운이 자신에게 전해져 그림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렇다 보니 힘에 많이 부쳤다. 그래서 그림을 완성하고 나니 ‘이렇게 일생을 보낼 수 있을까’ 하고 겁이 났다. 작업을 시작하면 거의 하루 종일 작업실 안에만 있다 보니 사람들과의 관계도 많이 소원해져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한때는 ‘이 일이 제 욕심이라면 그만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이 일을 놓으려고 했던 적도 있다. 그러던 중 한 신부에게 전화가 왔다. 자신이 맡고 있는 성당의 그림을 의뢰하고 싶다는 전화였다.

“몇 달 전 철야 피정에서 만났던 신부님이셨어요. 그때 자신의 성당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셨는데 혼자 생각하기를 ‘성당과 내 그림이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 옆 사람에게 물어 성당 이름까지 수첩에 적어왔는데 잊고 지냈던 거죠.”

그는 전화를 받고 전율을 느꼈다. 모든 걸 내려놓으려는 순간에 그 전화가 온 것이 우연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의뢰받은 그림을 그리게 됐고 그 뒤로 지금까지 그림 의뢰가 끊이질 않아 10여 년 넘게 이 일을 해오고 있다.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사람들이 그림을 보고 기뻐하는 모습과 소명에 대한 믿음으로 다시 힘을 얻는다.

그의 이 같은 마음은 작업실 벽에 걸린 글이 고스란히 전해준다. “주님 빛으로 저를 이끌어 주시고, 저는 주님의 힘으로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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