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천덕 신부
[천지일보=백지원 기자] “나는 늘 청춘을 꿈꾼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데 진력할 때 나는 늘 청춘이다.”

벽안의 외국인으로 한국의 신앙인들을 위해 기도를 아끼지 않았던 대천덕(Reuben Archer Torrey) 신부의 말이다.

지난 6일 故 대천덕 신부의 아내 현재인(Jane Grey Torrey) 사모가 별세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와 그의 남편인 대천덕 신부가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대천덕 신부는 한국에서 기독교 공동체를 설립하며 영성운동을 일으키는 데 힘쓴 인물이다. 그의 부인 현재인 사모 또한 신앙의 동역자로서 대 신부와 함께 한국선교를 하는 데 헌신했다.

특히 대천덕 신부는 한국인은 아니었지만 그 어느 한국인보다 한국을 사랑했고, 한국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자신의 소명을 다했던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중국 땅에서 한국으로
그의 아버지는 중국 선교사로 와 있었다. 때문에 그는 중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어려서 중국의 가난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 사회문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고민은 노동운동 등 사회주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특히 그는 노조활동이나 흑인해방운동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신학교를 졸업한 그는 사제서품을 받고 1957년 한국으로 건너왔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그가 건너왔을 당시 한국은 6.25전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였고,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극심한 생활고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이 같은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한국인들은 다시 일어서려는 강한 의지를 보였고, 이 같은 모습에서 그는 활력을 느꼈다고 한다.

◆기독교 공동체 ‘예수원’ 설립
그는 먼저 성미카엘신학(현 성공회대)을 재건립하고 학장을 지냈다. 이후 1965년 강원도 태백의 한 산골로 들어가 땅을 개간하고 성공회 수도원인 예수원(Jesus Abbey)을 설립했다.

예수원은 신앙인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공동체다. 특히 자유로운 실험과 개척 정신을 바탕에 두고 있는 초교파적 공동체로서 현재까지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곳이다.

수도원의 주된 일과는 기도와 묵상, 노동이다. 그는 그곳에서 수도자적인 삶을 살았다. 앞에서 했던 것처럼 그는 ‘청춘의 마음’으로 늘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하루 열 시간이 넘는 기도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상담일도 꼼꼼히 살폈다.

그에게 중보기도를 부탁하는 사람들이 많아 하루 몇 시간씩 시간을 내 중보기도를 했다. 그는 한국의 신앙인들, 그리고 한국교회 공동체를 위해 열심히 기도했다. 또한 빈부격차, 토지문제 등 사회적 문제와 관련해서도 소신 있는 발언을 하며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러던 중 뇌출혈을 일으켜 두 차례 뇌수술을 받은 대 신부는 84세를 일기로 지난 2002년 타계했다. 그리고 이후 그의 부인인 현재인 사모가 대표를 맡아 예수원을 운영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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