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종교, 특히 기독교의 현실을 국민들은 분명히 알고 냉철히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 8일엔 기독교인들에게 있어 아주 의미 있는 행사가 거행됐다. 바로 부활절 연합예배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과거 같으면 잠실 주경기장이나 여의도 행사장 등을 이용해 성대하게 예수부활의 의미를 되짚었을 것이나, 금년에는 사정이 그렇지를 못했다.

그 이유는 이렇다. 한국 기독교를 대표한다고 자처하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에 그 원인이 있었다. 기능은 아직 명맥을 이어온다 할지라도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한기총의 명예와 권위는 이미 지난해 대표회장 선거를 기점으로 소위 ‘10당 5락’의 오명과 함께 한기총 해체운동으로 이어졌고, 급기야 그 사명은 끝이 났다.

그 후 간신히 그 기능적 명맥만을 유지해 오던 중, 한기총 정상화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길자연 전 회장의 뒤를 이은 현 대표회장(홍재철 목사) 체제를 반대하는 20여 개 교단들이 모여 한국교회연합회(한교연, 김요셉 목사)를 다시 출범시키므로 한기총 설립 23년 만에 사실상 두 동강이 나 부러지고 말았다.

그 결과 한기총은 승동교회에서, 한교연은 정동제일교회에서 초라한 모습으로 예수부활의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현실을 바라보면서 일각에선 “한교연은 한기총과 뭐가 다른가. 그 나물에 그 밥이다”라며 한교연 또한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게 사실이다. 심지어 “한국교회의 연합기구는 명예와 권력을 향한 욕망의 바벨탑에 지나지 않는다”며 강하게 성토했다.

이제 말하고자 함은 오늘날 부정과 부패의 샘플이요 산실이 된 한기총의 모습이 오늘날의 개신교의 모습이며, 나아가 오늘날 종교의 현주소임을 인정할 때가 됐음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나라 개신교엔 부끄러운 역사가 있다. 일제 강점기에 온 국민이 총칼 앞에 맞설 때, 이 나라 개신교 지도자들은 자기 목숨을 보존키 위해 신앙인으로선 절대적으로 가지 말아야 할 길 즉, 배교(背敎)의 길을 걸었다. 하나님 대신 일본 천황과 신사를 향해 90도로 절을 했던 배교자들이다. 그 결과 이 민족은 두 동강이 나고 말았으니, 남북으로 갈린 이 현실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이 순간에 깨닫기를 바란다.

구약시대에도 “다른 신을 좇지 말라 하셨으나 저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내가 결단코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복에게 주리라”고 열왕기상 편에서 솔로몬 왕을 향해 하신 말씀과 같이, 솔로몬은 십계명의 제1 계명인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는 계명을 어기고 이방신을 섬긴 결과,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나뉘고 이어 패망의 길로 들어섰으니 무관하다고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어찌 그뿐이겠는가. 자기 생각과 자기 교리를 따르지 않는다고 마녀사냥을 해온 칼빈, 이 시대 개신교 또한 개종목사를 앞세운 불법개종교육을 통해 모두를 이단으로 몰아 핍박하고 욕하고 정죄하고 죽이는 또 다른 마녀사냥을 거침없이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종교 권력과 권세와 하나 된 정부는 이들과 하나 되어 국민들을 두 번 죽이고 있다. 이 나라 정부는 이미 국민들과는 상관없는 일부 기득세력의 정부에 불과하다는 낙인은 면치 못할 것이다.

오늘날 종교권력자들이며 칼빈의 그 후예들은 분명히 알고 듣고 새겨야 할 게 있을 것 같다.

자신들이 들고 다니는 경서엔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라는 구절이 있다. 2천 년 전에도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들을 죽인 당시 종교지도자들을 향해 예수님은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 가리라”라고 경고한 말씀도 상기해 봐야 할 대목이다.

갈라진 부활절 연합예배, 더 이상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에게 거룩하신 예수부활의 의미를 맡기기를 원하지 않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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