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앞뒤가 똑같은 전화번호~’라는 어느 대리운전 사업체의 광고 노래가 있다. 앞의 네 자리와 뒤의 네 자리 숫자가 진짜 똑같다. 외우기도 쉽고, 그 때문인지 돈벌이도 잘 되는 모양이다. 이렇게 앞뒤가 꼭 맞는 덕에 운이 따르는 경우도 있지만, 그 반대도 있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초(楚)나라에 무기를 파는 상인이 있었다. 그는 여느 때처럼 시장으로 나가 창과 방패를 팔고 있었다. 그가 방패를 들고 큰소리로 외쳤다. “이 방패를 보세요. 너무나 튼튼하여 세상 어떤 창이라도 다 막아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창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여기 이 창을 보세요. 이것이 예리하기로는 이 세상 최고입니다. 어떤 방패라도 단번에 뚫어 버립니다.” 구경꾼 하나가 말했다. “그 예리하기 짝이 없는 창으로 그 견고하기 짝이 없는 방패를 찌르면 도대체 어찌 되는 거요?” 상인은 말문이 막혀 달아나고 말았다.

모순(矛盾)이란 말이 여기서 나왔다. 창과 방패라는 뜻으로, 말이나 행동의 앞뒤가 서로 일치되지 아니한다는 의미다. 이율배반(二律背反), 자가당착(自家撞着)과 비슷한 의미로 쓰인다. 살다보면 대리운전 전화번호처럼 앞뒤가 착착 맞아떨어지기가 쉽지 않고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란 대개 모순 덩어리이거나, 이율배반 혹은 자가당착에 빠져들기 십상이다. 모순되지 않고, 이율배반하지 않고 자가당착에 빠지지 않는 게 쉽지 않고, 그래서 앞뒤가 꼭 들어맞는 사람들을 존경하게 되고, 또 그렇게 살라고 가르치기도 한다.

정치하는 사람들 중에 모순된 이들이 많다. 보통 사람들이야 모순되고 자가당착에 빠지더라도 사회에 큰 피해를 주거나 영향을 끼치지 않지만, 정치하는 사람들은 나라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는 이들이라 그냥 봐 주기가 힘들다. 보통 사람들처럼, 그럴 수도 있지, 라고 그냥 넘어갈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반미를 외치면서 자식들을 미국으로 유학 보내고, 미국으로 돈을 빼돌리고, 미국의 부동산을 사들이는 사람들의 언행은 그야말로 모순이다. 똑같은 사안을 두고 잘 한 일이라며 목소리를 높이다가 시절이 바뀌자 정반대로 돌변해 죽기 살기로 반대하는 것 역시 모순이다.

재벌기업에서 평생 녹을 먹고 보통 사람들이 평생 일해도 벌지 못할 돈을 모은 사람이 재벌개혁을 하겠다며 정치판으로 뛰어든 꼴도 모순이다. 그 아버지가 일제시대 순사질을 한 사람이, 일제잔재를 청산하지 못해 나라꼴이 이 모양이라며 큰소리치는 것 역시 모순이다. 사교육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며 해마다 같은 소리를 반복하면서도 그를 위한 노력은커녕 입시정책이나 비비 꼬아 사람들 골이나 아프게 하는 것도 모순이다. 참, 모순도 많다.

가까운 역사를 돌이켜보면 모순의 극치는 정의사회구현이다. 그 시절 눈곱만큼의 정의도 없이 정권을 잡은 자가 정의사회를 구현하겠다며 생사람들을 잡았다. 선생 아들이 공부 못 하고, 의사 아들이 허약하고, 경찰 아들이 사고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이건 그냥 웃자고 하는 소리다. 하지만 나라의 운명을 거머쥔 사람들이 이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을 저지르면 정말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랏일을 책임지지는 않지만 대중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인기스타들도 모순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미디어 기술 발달로 수많은 사람들과 실시간 소통하는 세상이 되다 보니, 인기스타들의 영향력과 그 파괴력 또한 대단하다. 웬만한 교주들 저리가라 할 정도로 절대적 영향력을 과시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 만큼 말 한 마디, 행동 하나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스타들의 언행이 잘 쓰이면 약이 되지만, 반대로 독이 될 수도 있다.

선거가 코앞이다. 다 같이 투표하러 갈 일이다. 가서, 앞뒤가 똑같은 전화번호가 아니라, 앞뒤가 똑같은 인간을 가려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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