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언젠가 삼성전자 수원 공장에서 있었다는 얘기다. 현장 조사 차 나온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관들이 수위들의 제지로 공장 안으로 진입할 수가 없었다. 조사관들이 방문 목적을 밝혔지만 사전 연락이 없으면 진입이 불가하다며 한사코 공무 집행을 지연시켰다. 수위들의 연락을 받고 사무실 요원들까지 달려 나와 합세한 것을 보면 윗선의 지시가 있었음이 명백해진다. 그 사이 공장 사무실에서는 황급하게 증거인멸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바로 그 증거인멸 작업 시간을 벌기 위해 수위실에서의 실랑이는 기획되고 실행됐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사소해 보일지 모르나 그날의 해프닝은 재벌의 힘을 보여주는 상징성을 지닌다. 힘없는 보통의 일반시민이나 중소기업의 입장에서는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돈으로 막든지 로비로 막든지 간에 뒷감당을 할 수 있는 처지에서만 이런 어이없는 일은 가능하다. 그렇기에 한편으로는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공권력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공권력은 사회 경제적 강자에게도 범법이나 편법이 피해갈 수 없게 공정하고 엄정해야 하며 그것이 일반의 법의식으로 각인돼야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파출소에 붙잡혀온 취객이 기물을 부시고 경찰을 패고 난동을 부리는 것과 같은 말단의 공권력 경시 풍조와 같은 것은 저절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오래된 일이지만 아직도 진행 중인 일인 것 같다. 이것 역시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정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로 알려졌다. 반도체 공정에서는 이름을 알 수 없고 회사 측에서도 그 이름을 밝히려 하지 않는 화공약품을 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그 공정에 종사하는 인원들에게 웬일인지 암이 발생하거나 괴질에 이환(罹患)되는 경우가 숱하게 보고되고 있는데도 그 원인이 만족할 만하게 밝혀지지가 않고 있다. 회사 차원에서는 암 발생이나 괴질의 이환이 작업 환경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해명하고 분분한 사회적 의논들을 덮으려 한다. 그럼에도 의문들은 수그러들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문다. 현재까지는 그 어느 쪽 주장도 정답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는 아니다. 그렇지만 여기서도 재벌의 힘과 위력은 느껴진다.

만약 삼성이라는 재벌 기업이 아니었다면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무시할 수 없는 파급력을 지닌 사회적 문제 제기에 맞서 그렇게 의연하게 자신들의 주장을 일관되게 밀고 나갈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설사 자신들의 주장이 맞고 옳다 해도 그러하다. 힘이 뒷받침 되는 재벌이 아니었다면 재조사, 재재소사와 같은 당사자들과 일반이 납득할 수 있는 번거롭고 귀찮지만 꼭 필요한 절차들을 회피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재벌은, 더구나 고질적인 정경유착의 원죄를 안고 있는 한국의 재벌은 이처럼 자신의 담론을 밀고나가는 막강한 힘과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들은 정부와 언론, 사회경제적 제(諸) 단체와 조직에 자신들의 주장을 설득시키고 전파하며 지지를 얻어낼 수 있는 재력과 영향력, 그리고 그것들을 이루어내는 맨 파워(Man power)를 갖추고 있는 한국 특유의 무소불위 거대 기업 집단인 것이다.

그 같은 재벌의 힘이 기업 경영의 능률화와 효율화, 기업역량의 세계적인 확장과 같은 수익활동에 쓰이는 것이라면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꼭 그러하기보다는 부정적으로 크거나 작거나 자신의 허물을 덮는 데 많이 쓰여 왔다. 그것이 목하 일반의 재벌에 대한 이지지의 저울추를 부정적인 데로 기울어지게 만든 까닭이기도 하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성숙한 시장경제 사회에서 그것은 재벌 자신의 퇴출을 부를 수도 있는 자해 행위다. 지금은 기업이 정경유착이나 권력의 비호로 탐욕만을 추구하며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자유방임의 이윤추구가 미덕이 아니라 공동체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되는 것, 그 일원으로서 응분의 역할을 하는 것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때다. 재벌 스스로 그것을 절실하게 깨닫고 달라져야 할 때가 왔다.

그렇다면 삼성전자 반도체 공정의 미스터리와 같은 의문은 한 점 의혹 없이 밝혀져야 한다. 기업 스스로 못하면 정부가 해야 한다. 정부마저 못하면 사회의 불신 지수가 올라가는 것은 정부와 재벌의 공동 책임이다. 정부와 재벌의 관계에서 어물쩍 넘어가는 일들이 그동안 사회 불신을 얼마나 심각하게 심화시켜왔는지 안다면 더는 그 우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재벌의 힘이 한국만큼 강한 나라도 없지만 재벌에 대한 각종 규제 역시 실효가 확실하지 않아 그렇지 한국만큼 많고 강한 나라가 없다. 규제가 있어도 실효가 없으면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고 실효가 없는 규제는 비난 여론에 대한 방패막이에 불과해 도리어 보호막이 된다. 이는 사실이 입증한다. 재벌에 대한 규제가 애초부터 약발이 제대로 먹혔다면 현재처럼 재벌이 중소기업 영역을 침입하고 골목 상권까지 위협하는 문어발 확장은 벌써 끝장이 났어야 옳다. 뿐만 아니라 무리한 순환출자나 가격담합, 가격조작, 하청 중소기업 쥐어짜기와 같은 불공정 행위들도 자취를 감추었어야 마땅하다. 그렇지만 재벌이 저지르는 각종 위반 행위는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고 아프지 않은 회초리와 같은 뒷북치는 당국의 단속과 처벌도 예전과 매한가지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재벌의 규제 정책이라는 것은 얻어맞아도 아프지 않은 매, 벌금이나 과징금을 내고 처벌받아도 오히려 장삿속으로는 남는 것이 있을 것이므로 규제 정책이 아니라 비호 정책이다. 이런 나라도 역시 지구상에는 없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폭발직전의 재벌에 대한 원성과 사회 양극화에 대한 위화감을 투표에 이용하려 재벌 해체라는 과격한 구호까지 들고 나섰다. 그 같은 과격한 발상이 꼭 옳다고 할 생각도 없지만 그 같은 슬로건을 부르짖는 그 사람들이 막상 칼자루를 들고 재벌들과 맞닥뜨렸을 때 정말 꼬리를 내리지 않을 자신을 가지고 있는지 확신이 안 간다. 한국의 재벌은 통상 세습되는 영원한 권력이다, 언젠가 빈손으로 물러가야 하는 시한부 권력은 근본적으로 재벌의 권력을 이기지 못한다. 은퇴한 권력들은 재벌이 불러주면 영혼을 내던지고 달려간다. 차라리 이 사람들이 소기업 소상공이나 중소기업인들과 함께한다면 재벌의 횡포에 바람막이가 되고 공정사회를 앞당기는 데 일조가 될 것 같은데 그것은 역시 현실성이 적은 이상에 그치는 일 같다. 그렇지만 희망은 있다. 재벌이 외압 권력이나 규제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스스로 달라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공동체의 가장 무서운 성원들인 국민의 심중에서 발견하지 않을 수 없는 때가 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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