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익두 목사
[천지일보=백지원 기자] 과거 낙방, 아버지 사망, 친구로부터 당한 사기. 이같이 연달아 맞닥뜨린 시련에 김익두는 방탕한 생활을 시작했다. 시장에 가서 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리고, 밤낮으로 술만 마시는 술주정뱅이 생활을 했다.

◆사람들이 무서워하던 깡패
이에 사람들은 그를 ‘안악골 호랑이’ ‘망나니’라고 부르며 “오늘은 김익두만 만나지 않게 해달라”고 성황당에 빌었다는 소문까지 있었다. 그만큼 김익두는 사람들에게 무섭고 피하고 싶은 존재였다.

하지만 그에게 일생일대의 변화의 계기가 찾아왔다. 길을 가던 중 우연히 선교사가 건넨 전도지를 받게 된 것이다. 그 전도지에는 ‘인생은 무엇인가’라는 글귀와 이와 관련된 성경구절이 적혀 있었다.

◆부흥집회 따라가 기독교 믿기로
방탕한 생활을 하기는 했지만 평소 ‘인생’에 대해서 고민하던 김익두는 전도지에 마음이 끌렸다. 이후 친구 박태환이 찾아와 함께 금산교회에서 열리는 부흥회에 가자고 제의했다.

마침 전도지를 받고 마음이 끌렸던 차였기에 그는 친구를 따라 부흥회에 갔다. 그리고는 부흥집회에서 ‘영생’이라는 설교를 듣게 됐는데 이에 ‘인생’에 대한 고민의 해답을 찾아 기독교를 믿기로 했다.

그는 이후 그가 이전에 저질렀던 악행과 잘못들을 무단히 회개하고, 사람들에게도 사과하며 전도를 위해 힘썼다. 하지만 깡패였던 그가 전도자로 나타나자 사람들은 그를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김익두가 미쳤다’ ‘귀신에 씌였나 보다’ 하며 이전에 당했던 것을 앙갚음하듯 욕을 하고 때리기까지 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김익두는 참고 견디며 전도를 계속해 갔다.

또한 교회에 나가면서 술을 끊었던 그가 하루는 친구와 함께 술을 마셨는데 갑자기 몸에 불덩이가 떨어지는 신비한 체험을 하면서 그 길로 회개를 했다는 일화도 있다.

이후 목사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평양신학교에 입학해 1911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3.1운동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부흥집회를 열었다.

약 20년 동안 전국으로 이어진 부흥집회의 물결은 매우 뜨거웠다. 약 770회에 이르는 부흥집회를 열었으며 150개소의 교회를 신축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설교에 감화를 받은 많은 사람들이 목사가 되기도 했다. 그의 부흥집회는 늘 사람들로 넘쳐나 인산인해를 이뤘다.

하지만 부흥회가 미설과 이적으로 혹세무민한다는 보도가 있기도 했다.

◆성경에 큰 은혜 받아
김익두 목사의 집회가 뜨겁고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던 이유 중 하나는 ‘성경적’이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있다. 김익두 목사는 평생 동안 성경읽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평생 신약성경을 1천 번 가까이 읽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읽을 때도 마음을 다해 읽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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