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일 오전 횡성 우시장에서 축산농민들은 전날 발효된 FTA로 소 값이 떨어질까 걱정하며 소를 바라보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송아지 평균 가격 127만원, 연초보다 10%↓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올 초보다 소 값이 조금 올랐지만 다시 하락하고 있어, 그놈의 한미 FTA 때문이지, 온종일 한숨밖에 안 나와….”

16일 새벽 6시 횡성 횡성읍 조곡리 우시장. 동틀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우시장에서 만난 축산농민들은 전날 발효된 한미 FTA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지난해 발생한 구제역과 사료값 폭등, 한우값 하락 등이 이어지다가 최근 다시 소값이 안정되는 듯 보였지만 한미 FTA 발효로 축산농가가 또 한 번 직격탄을 맞게 된 것이다.

특히 이날은 소 거래량 감소가 눈에 띄게 늘어 농민들의 걱정은 쌓여만 갔다.

송아지 두 마리를 데리고 우시장 온 박명수(65, 남, 강원도 횡성군 우천면) 씨는 제값에 소를 팔지 못해 되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박 씨는 “송아지 한 마리당 160만 원은 받아야 하는데 130만 원 아래로 가격이 내려갔다”며 “가뜩이나 사료값도 비싸 소를 키우기 어려운 상황인데 한미 FTA로 소 값이 내려간다고 하니 소를 사겠다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묵묵히 소를 트럭에 싣던 그는 “너무 지친 상태다. 축산농가의 상황이 점점 열악해진다”며 “무엇부터 해야 할지 너무 답답하다”고 말하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에서 소 100여 마리를 키우는 오주원(가명, 51, 남) 씨는 간밤에 잠을 설쳐 새벽 3시에 우시장에 도착했다. 그는 “설마 FTA 때문에 가격이 떨어질까 생각했는데, 걱정이 현실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오 씨는 “지난주에는 소가 많이 왔는데, 오늘은 절반 정도 소가 나온 것 같다”며 “아직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가격을 흥정하다 싸우는 농민의 모습을 4번이나 봤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날 오전 횡성 우시장에서 거래된 소는 20여 마리에 불과했다. 평소 거래량인 50여 마리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다. 송아지 평균 거래가격은 두수 당 127만 원. 연초 거래가격인 140만 원에 비하면 약 10%나 하락했다.

시장 한쪽에서 비표를 적던 이호영(45, 남, 강원도 횡성군 갑천면) 계장도 우시장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는지 서글픈 표정으로 소의 콧등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이 계장은 “지금 모든 축산 농민이 힘들어 한다”며 “FTA로 인해 가격이 계속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농민들이 너무 낮은 가격에 소를 팔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심지어 타산이 맞지 않는 축산농민의 경우 소를 안 키우겠다며 생업을 바꾸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농어업 생산액은 한미 FTA 발효 후 5년 차에 7026억 원, 10년 차에 1조 280억 원, 15년 차에 1조 2758억 원 줄어드는 것으로 추정했다.

특히 농어업 분야 중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분야는 축산업으로 15년간 누적 피해액이 7조 2993억 원에 달해 전체 피해액의 59.7%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정부는 각종 세제혜택·재정지원 등을 통해 충격을 최소화하고 경쟁력 제고를 유도하겠다는 대안을 세워놓고 있다.

그러나 축산 농민들은 정부의 대책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우시장의 동향을 살피러 온 원택규(61, 남,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씨는 “앞으로 소를 계속 사육할지, 키운다면 어떻게 소를 키워야 할지 등의 정보를 얻기 위해 우시장에 왔다”며 “우상인들도 유통이 전혀 안 된다는 반응을 보여 불안감이 도무지 가시질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1차 산업인 농업이 가장 큰 피해 대상”이라며 “앞으로 축산 농가를 위해 정부가 어떤 정책을 펼지, 과연 잘해 나갈지 의문스럽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어느 정도 국내 한우 생산기반을 마련한 후 사육두수를 정한 상태에서 한미 FTA가 발효되는 게 옳은 방법이었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이에 대해 농림수산식품부 농업정책과 유원상 사무관은 “축산소득 비과세와 수입사료 무관세 확대 등 다양한 정책을 통해 농어업의 경쟁력을 높일 예정”이라며 “중장기적으로 경쟁력을 키워 축산농민들이 한미 FTA에 대한 피해를 극복해 나갈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편 경기도는 한미 FTA 체결로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축산분야에 1966억 원을 투입할 계획이라고 21일 밝혔다. 이는 지난해보다 총액 대비 599억 원이 늘어난 액수로, 특히 올해는 FTA 대책으로 신규 7개 발굴사업에 105억 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경기도청 축산정책국 견홍수 주무관은 “분야별로 총 40여 개의 사업에 지원을 해 생산력을 낮추고 생산성을 향상시킬 방침”이라며 “국내 쇠고기 가격을 낮춰 외국의 저렴한 쇠고기와의 경쟁에 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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