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희 정승.
[천지일보=백지원 기자] 조선을 대표하는 명재상인 ‘황희(黃喜, 1363~1452)’는 당대뿐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존경받는 인물로 꼽힌다. 그는 태종과 세종으로부터 신임을 얻어 24년간 재상의 자리를 지키며, 조선 ‘최장수 재상’에도 이름을 올린 인물이다.

그가 오랜 기간 재상직을 유지하며, 존경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그 비결로는 원칙적이고 소신 있는 정치적 성향, 청렴함, 모든 이들을 포용하는 성품 등이 꼽힌다. 당연하고 뻔한 이야기지만, 많은 사람들이 시대를 초월해 오늘날도 황희 정승과 같은 정치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황희는 고려 말부터 관리를 지냈다. 그러다 고려가 망하고 이성계가 혁명을 통해 ‘조선’을 건국하자, 그는 고려의 신하들과 함께 두문동에 숨어 지내며 정치에 참여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이성계의 요청과 동료들의 설득으로 어렵게 다시 출사를 결심했다.

이후 황희는 직예문춘추관, 사헌부 감찰, 형조‧예조‧병조‧이조정랑 등을 거치며 조선 초, 나라를 안정시키는 데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정치뿐 아니라 국방, 외교, 교육 등 모든 분야에 걸쳐 큰 공을 세운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정치적인 일만큼은 원칙과 소신을 매우 중시했다. 태종이 ‘양녕대군’을 세자에서 폐위시키고 그 자리에 충녕대군을 책봉하려 하자 황희는 ‘적장자(嫡長子) 승계 원칙’을 주장하며, 이러한 원칙이 깨지면 왕권이 흔들릴 수 있다며 강력히 반대하다 유배를 가기도 했다.

하지만 정치적인 면 외엔 온화하면서도 모든 이들의 입장을 품으려 했다. 한 번은 집안에서 노비들 간 싸움이 벌어져 한 노비가 황희에게 와서 자신의 입장을 토로하며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했다. 그 말을 들은 황희는 “과연 네 말이 옳구나”라고 말했다.

그러자 다른 노비가 황희에게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며 이야기했다. 이번에도 황희는 “네 말도 옳구나”라고 답했다. 그리고 이 모습을 지켜보던 황희의 조카가 “사물에는 옳고 그름이 분명히 있는데 왜 양쪽 모두 옳다고 하시는 것입니까?”라고 묻자 “네 말도 옳구나”라고 했다.

황희가 모두 옳다고 한 말에는 무조건 자신의 주장은 옳고 남의 주장은 그르다고 하는 것을 경계하며, 모든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책 ‘선비평전(이성무 지음, 글항아리 펴냄)’에는 황희와 김종서에 관련한 일화가 소개돼 있다. 하루는 영의정인 황희 앞에서 막 병조판서에 오른 김종서가 교의(交椅)에 삐딱하게 앉아 있었다.

이에 황희는 하인에게 “병조판서가 앉은 교의의 한쪽 다리가 짧은 모양이니 얼른 나무토막을 가져다 괴어 드려라”고 했다. 그러자 김종서가 깜짝 놀라 흙바닥에 내려와 사죄했다.

평소 인자하고 온화한 성품을 가진 인물이었던 황희 정승은 유독 김종서에게만큼은 엄했다. 이에 맹사성이 “김종서는 훌륭한 인물인데 왜 그리 매번 나무라는 것이오?”라고 물었다.

그러자 황희는 “김종서를 아끼기에 그러는 것이오. 큰 그릇이기에 훗날 우리 자리에 앉을 인물이오. 하지만 신중하지 못하면 자칫 일을 그르칠까 걱정돼 경계하려는 것이오.”

훗날 그는 김종서를 정승으로 추천했다. 김종서의 능력을 알아보고 그를 진심으로 아꼈기에, 더 큰 그릇으로 만들기 위해 매번 지적하고 엄하게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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