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열 대표. ⓒ천지일보(뉴스천지)

“내가 아는 게 전부라는 생각 ‘착각’… 물어보고 들어보라”

[천지일보=이길상 기자] 지난 2월 4일 (사)상좌불교 한국명상원은 (재)한국이슬람교 이주화 이맘을 초청해 ‘이슬람교의 이해’라는 주제로 강연회를 열었다. 이 행사를 참석한 대다수 사람들은 “종교 간 화합과 이웃종교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던 뜻 깊은 시간이었다”고 평가를 내렸다.

이 행사를 기획하고 주최한 곳은 ‘유엔종교 간 평화추진 한국협회(KSUNIPAR)’다. 이 단체는 이날 행사 후 종교 간 관계에 대해 성명을 발표했다.

“한국에서는 일찍부터 선각자들이 종교 화합 운동을 벌여 종교 본연의 사명을 다해왔다. 종교인이 마음을 열고 대화할 때 서로 이해하고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며 행복한 삶의 지평이 넓어질 것이다. 다양성이 살아 있는 종교문화를 유지하는 데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배타적 신앙이다. 특히 종교 간의 진지한 대화가 필요하다.”

‘케이에스유니파(KSUNIPAR)’는 왜 이런 활동을 할까. 이 단체를 이끌고 있는 김윤열 대표를 만나 단체 설립 목적과 그의 신앙 철학에 대해 들어보고자 그가 머물고 있는 수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독립운동가였던 부모님

김 대표는 1928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났다. 올해 그의 나이는 85세다. 그의 활기찬 모습과 힘이 넘치는 목소리를 들으니 85세라는 나이가 믿기 어렵다. 인생을 편히 즐기고 산다 해도 그 누구도 뭐라고 할 수 없는 나이다. 그러나 그는 젊은이도 엄두를 낼 수 없는 일을 시작했다. 즉 세계 종교의 화합과 상생을 이끌어 이 지구촌에 평화가 깃들게 하고, 자칫 일어날 수 있는 종교 간의 전쟁을 사전에 예방하는 일에 앞장선 것이다. 그가 그런 일을 하겠다고 나선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의 부모가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안다면 그 의문은 의외로 쉽게 풀린다.

그의 아버지 김주 목사와 어머니 정창신 여사는 결혼 전인 1919년 3.1운동 당시 ‘함흥 3.3거사’를 이끈 함흥 42인 주모자로 김주 목사는 거사 당일 함흥 장터의 지붕에 올라가서 만세삼창을 선창했고, 함흥 영생여학교 선생이던 어머니는 학생을 주동해 만세 운동을 한 죄로 체포돼 9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김주 선생은 연희전문과 평양신학을 나와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는 함흥의 한 교회에서 ‘신사참배는 우상숭배’라고 설교해 1943년에 일경에 잡혀가서 1년 6개월간 갖은 고문을 받으며 광주형무소에 수감됐었다. 어머니 정창신 여사는 출옥 후 캐나다 선교부의 장학생으로 동경의 영화전문에서 정교사 자격증을 수료하고 귀국했으나 불령선인(일제강점기, 불온하고 불량한 조선 사람)의 낙인이 찍혀서 모교 영생여학교에 정교사로 근무할 자격도 박탈당했다.

조국을 찾은 김주 목사 일가는 뿔뿔이 남하해 어머니는 해방 후 미군정(美軍政)이 설립한 한국여자경찰학교 제1회 졸업생으로 여성 계몽 운동에 앞장섰고 수복 직전에는 인천여자경찰서 서장으로 특히 전쟁고아 구제 사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국가에서는 김주 목사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고, 정 여사는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까닭에 남한에 재판 기록이 없다고 ‘대통령 포장’으로 추서돼 현재 대전 국립묘지에 합장돼 잠들어 있다.

 

▲ 김윤열(왼쪽) 대표가 주말레이시아 UNDP 대표시절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 UN사무총장(당시, 오른쪽)과 환담을 하고 있다(1984). (사진제공: 케이에스유니파)
◆한국인 최초 UN 정식 관리

 

전형적인 개신교 틀 안에서 자라난 그는 특히 인간의 존엄성을 깊이 새기며 세상에 대한 꿈을 키워나갔다. 그는 부모가 모두 불령선인인 까닭에 함흥에서 공립학교에 입학할 수 없어서 서울의 보성고보로 유학, 졸업 후 경성제대사범과에 입학했다.

김 대표는 해방 후 남하해 군정청 공보부에서 편지 검열, ‘아메리카’ 잡지 편집을 맡았다. 그는 1948년 대한민국 외무부가 창설되자 최초의 외교관이 돼 장관 비서실에 근무하다가 외무부를 떠났다. 그 후 유엔 한국통일부흥위원회(UNCURK)의 사무장으로 임명돼 유엔대표단들을 대동하고 한국 각지를 돌며 3.15 선거 감시 시찰을 했다.

4.19가 터지자 장면 정권의 요청으로 그는 다시 외무부로 돌아가서 유엔 총회 기간 중 한국 대표부에 파견돼 한국의 유엔 가맹 득표 공작에 힘을 쏟았다. 그러던 중 5.16혁명이 일어나고 본국으로부터 파면 연락을 받았다. 이 소식을 당시 호주 유엔대사로 유엔총회에 왔던 호주 대사 ‘프림솔씨(전 UNCURK 대표)’가 알게 됐다. 그가 친구인 함마숄드 유엔 사무총장에게 청탁해 유엔 가맹국 사람도 아닌 김 대표가 한국인 최초의 UN 정식 관리로 특채가 됐다. 이는 김 대표가 ‘UNCURK’에서 쌓은 공로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1961년 8월에 김 대표는 유엔기술원조청(UNTAB) 리비아 행정관으로 유엔 직원으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김 대표는 주이집트 유엔 개발계획(UNDP) 행정관, 주인도 UNDP 수석 행정관을 거쳐 1969년 말에 뉴욕에 있는 국제개발기구(UNDP)본부로 전임됐다.

10년을 특임 사무관, 총무부장으로 본부 근무를 하던 김 대표는 1979년에 주재국의 발전계획을 돕는 UNDP 지역 대표로 임명됐다. 스리랑카, 몰디브 주재 지역대표를 선두로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브루나이 지역대표 일을 맡았다. 그때 그는 캄보디아 난민 구호 사업 유엔사무총장 대리직도 겸했다. 그 후 주태국 지역대표를 끝으로 1988년에 UN에서 은퇴했다.

그는 재임 중 네덜란드 국립 사회 대학원(Institute of Social Studies, Netherlands)에서 ‘개도국 정치경제문제 특별연구과정’을 수료했다. 그가 미국 하버드 대학교 국제개발대학원(Harvard Institute of International Development)에서 국제개발투자 및 경영학(Program on Investment Appraisal and Management)을 수료할 때에는 각 나라의 장관들을 위시한 고급 공무원으로 구성된 졸업반 학생들을 대표로 답사(答辭)하기도 했다.

1988년에 35년간의 유엔 관리직을 퇴임한 후에도 김 대표는 유엔 자문 위원으로 세계를 돌아다니며 UN과 관련된 일을 했다. 기록할만한 일은 유엔 관례를 벗어나서 비록 은퇴는 했으나 자기 나라에서 주한국 유엔디피 대표직을 임시로 3개월씩 두 번이나 재임했다는 사실이다. 그 외에도 주미얀마 유엔디피 임시 대표직을 수행한 바 있다. 그리고 방송 해설, 중앙대학교 대학원 국제학과 특임교수,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CSULB) 노인대학에서 국제관계과 지도교수로 3년 반 강의를 했다. 그는 외무부 외교안보연구원에서 국제회의 관리를 위주로 하는 교수직을 수행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다가 2011년에 드디어 한국에 정착해 종교 간 평화를 추진하는 ‘KSUNIPAR(시민 사회 기구)’를 창설하기에 이르렀다.

 

▲ 김윤열 대표가 하바드 대학 투자 감정 및 관리 과정 연수 후 학생대표로 답사를 하고 있다(1985). (사진제공: 케이에스유니파)
◆‘UN총회 결의문집’ 발간

 

우리나라는 불교‧개신교‧가톨릭이 더불어 큰 성장을 이뤘다. 그럼에도 종교 간 큰 충돌과 갈등이 없는 모범 국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렇게 우리나라에 종교가 골고루 발달하고 평화를 이루고 있는 원인에 대해 김 대표는 “우리나라의 국민성이 우수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민족은 어떠한 종교‧문화‧사상도 포용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과 여유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세계 종교 간의 화합과 상생을 이끌어갈 수 있는 리더십과 자질이 충분한 나라”라며 “이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국제기구의 본부를 한국에 유치하는 일에 힘을 쏟겠다”는 각오를 보였다.

또한 김 대표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이슬람교의 변화이다. 김 대표는 “이슬람이 스스로 개혁하려는 의지를 느낄 수 있다. 이슬람이 인권이나 민주주의 틀을 만들어 가면서 타 종교와 화해를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슬람이 화해의 손길을 내밀 때 서방의 기독교 세계가 그 손을 잡아줘야 한다”며 “그렇게 하지 않을 때 종교 간의 충돌이 예상보다 빨리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종교 간의 화합은 오랜 역사를 두고 강조돼 왔지만 지금까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평가다. 그래서 현재 UN에서 펼치고 있는 역점사업 중의 하나가 ‘UN 세계 종교 간 화합운동(UN WorldInterfaith Harmony Proclamation)’이다. 종교 간의 대립은 국민들의 분열은 물론 국가 간의 전쟁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는 게 김 대표의 판단이다.

‘케이에스유니파(KSUNIPAR)’는 최근 ‘세계 종교 간 화합과 평화에 관한 UN총회 결의문집’을 발간했다. 이 책은 1981년부터 2011년까지 세계의 종교화합과 평화에 관해 UN총회에서 채택돼 영어로 발표된 11개의 UN총회 결의문 전문과 한국어로 번역한 결의문 전문을 함께 묶은 것이다. 김 대표는 “그간 발표된 유엔총회결의문은 종교의 순기능을 살려 종교가 인류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가장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며 “그래서 모든 종교인과 시민사회단체에게 유엔총회 결의문의 정신을 알리고 그 뜻을 구체적으
로 실천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이 책을 펴낸다”라고 출간 이유를 밝혔다.

이어 “이 책은 국제학‧종교학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이며, 특히 종교인들이 이 책을 통해 종교가 나아가야 할 바른 길을 알고 실천할 수 있다면 세계평화와 인류의 행복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 김윤열(왼쪽에서 네 번째) 대표를 비롯한 '케이에스유니파' 임원들이 천도교 임운길(가운데) 교령을 예방하고 천도교 중앙대교당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천지일보(뉴스천지)
◆“호기심 갖는 것 신앙인의 필수 태도”

 

김 대표는 신앙인들에게 호기심을 가질 것을 당부했다. 과연 내가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인지 항상 자기 자신에게 물어야 하며, 동시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내가 알고 있는 게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은 크나큰 착각”이라면서 “새로운 곳을 찾아 물어보고 들으며 호기심을 갖는 것은 신앙인의 필수적인 태도”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개신교의 현실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교회가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것과 인간화‧세속화돼 가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김 대표는 “설교 내용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고 초점을 잡을 수 없다”면서 “너무 쉽게 목사 자격증을 따는 것도 그 원인 중의 하나”라고 지적했다.

예수님과 부처님은 검소한 생활을 몸소 실천했다. 종교지도자들이 고급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호화스런 생활을 하는 것은 한 번 깊이 성찰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다며 김 대표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모쪼록 ‘케이에스유니파’가 세계 종교 간 화합과 평화를 이루는 일에 한 알의 밀알이 되길 기원해본다.

※KSUNIPAR-Korea Society for UN Initiative for Peace among Relig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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