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3월이 가기 전에 쓰고 싶은 글이 있다. ‘봄은 왔으되 봄 같지 않다’는 ‘춘래불사춘(春來不仕春)’이지만 3월하면 왠지 ‘생명의 소망’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이 3월이 마냥 좋기만 하다.

‘생명(生命)’ 하면 원래 영원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일 게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문득 그 생명의 가치를 생각해 보고, 또 죽음까지도 생각해 본다.

독일의 한 대학생과 교수가 캠퍼스를 거닐며 나눈 대화가 있다. 교수는 학생에게 질문을 이어간다. 이 대학에 왜 들어왔느냐고 물었을 때, 학생은 좋은 직장에 들어가려고 한다고 답한다. 좋은 직장에 들어간 후를 묻자, 돈 많이 벌어 좋은 여자 만나 결혼하려고 한다고 답한다. 또 교수는 그 후를 묻자 학생의 대답은 “그렇게 살다가 죽겠지요”라고 답한다.

여기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삶이 지향하고 있는 목적지는 죽음이었고, 이를 향해 날마다 나아가고 있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잠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창조주의 근본 창조목적이 과연 인류가 사망과 죽음 가운데 있게 하는 것일까이다.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성서에 보면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영원한 생명을 허락했다. 하지만 죄로 말미암아 창조주 하나님은 이 지구촌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이유는 죄와 함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죄 값은 사망이다”라는 말과 같이 죄로 인해 이 세상엔 사망과 죽음이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 죄 아래 있는 한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라는 말과 같이 우리에겐 오직 죽음만이 존재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은 본시 인류를 죄 아래 두시고자 하심이 아니었고,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는 말씀과도 같이 인류를 죄에서 해방시켜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회복하시겠다는 계획을 성경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지금껏 알려 오신 것이다. 결국 성경도 창조주 하나님도 약속하신 것은 ‘영원한 생명’이었다. 성경은 물론 유불선을 포함한 모든 예언서는 이같이 해피엔딩을 알려온 것이다.

이제 잠시 화두를 바꿔보자. 2012년 올해는 유독 전 지구촌이 새로운 지도자를 뽑겠다고 난리법석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우리 대한민국은 총선과 대선이라는 두 번의 선거를 앞두고 그야말로 아우성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한번 생각해 볼 것은 없을까.

과연 이 세대는 어떠한 지도자를 요구하고 있을까. 올바른 지도자상은 뭘까. 참으로 고민해 봐야 할 때가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 이 세대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뭐란 말인가. 우주의 기운에 순응해야 하는 세대를 맞이했다는 의미다. 지금까지야 그저 잘 먹고 잘 살게 하는 것이 지도자의 덕목이었다고 할 것 같으면, 이 세대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세대는 생명이 회복되고 광복되는 기운이 이 지구촌에 찾아왔다는 점을 믿어야 할 것이다.

우주의 기운에 순응해야 한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모든 기운이 바뀌어져 가고 있는 섭리에 순응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도자를 ‘치리자(治理者)’라고 말한다. 이 말의 뜻은 ‘이치대로 다스리는 사람’을 의미한다. 또 지도자(指導者)를 ‘다스리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는 ‘말씀의 도(道)로 다 살리는 사람’에서 온 말임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 세대의 지도자상은 그저 세상의 학문과 도덕으로 백성을 통치하는 시대는 적어도 아니라는 점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인간을 포함한 우주만물이 사망 가운데 죽어왔다면, 이제는 하늘의 이치를 따라 다 살릴 수 있는 지도자가 이 시대에 요구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 시대의 지도자라 함은 한 나라를 다스리는 차원의 지도자도 아니다. 온 인류를 구원해 나가야 할 지도자이며, 새로운 세대를 책임져 나갈 위대한 지도자여야 한다는 점을 꼭 잊어선 안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부터 이 땅에 세워진 땅의 나라가 아니었다. 하늘의 기운으로 시작된 천신족(天神族)이었으며, 그 이념은 홍익인간(弘益人間) 즉,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라 라는 천명을 받은 민족이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 이 3월에 또 이 회복의 때에 우리 다같이 섭리 가운데 찾아온 이 운세를 다 누리는 우리가 돼야 하지 않겠는가.

오늘같이 혼탁한 세상일수록 어디선가 바른말과 진리가 있다면 귀 기울일 줄도 알아야 한다. 유념할 것은 말이라고 다 같은 말이 아니요 살리는 말도 있고 죽이는 말도 있음을 명심하자. 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각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고 있음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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