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세월 따라 지하철 풍경도 많이 달라졌다. 책을 읽거나 신문을 보는 대신 저마다 휴대폰 따위에 코를 박고 있는 모습이 대세다. 다리를 쫙 벌린 채 두 팔 벌려 신문을 활짝 펴고 읽는 바람에 옆 사람을 짜증나게 하던 매너 빵점 아저씨들도 찾아보기 힘들다. 선반 가득 널브러져 있던 신문들도 사라졌다.

똑똑한 휴대 전화 덕분에 비난받을 짓을 하는 모습이 가끔 인터넷을 타고 퍼지기도 한다. 인터넷에 올라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분을 사는 사람들은 주로 젊은이들이다. 상하 관계를 중시하는 우리네 문화 탓인지, 거두절미하고 아래 위, 나이를 따져 어린 것이 무조건 잘못한 것으로 매도되는 점도 없지 않다.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짜증나게 하는 것 중 하나가 휴대 전화다. 똑똑한 휴대 전화 덕분에 신문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좋기도 하지만, 자신의 안방이나 되는 것처럼 휴대전화로 마구 떠들어대는 사람들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기도 한다. 휴대전화에 귀를 들이대고 복잡한 통로를 막고 서 있는 청춘들도 있다.

휴대 전화라는 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게 장점이고 그 때문에 들고 다닌다. 광고를 그렇게 때려서 그런지 그야말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매너 제로 인간들이 많다. 들어보면 별 것도 아닌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지금 무슨 역을 지나고 있다거나, 저녁 반찬은 뭐냐, 몇 번 출구로 나갈까, 뭐 그런 것들이다. 좀 더 뻔뻔하고 같잖다 싶은 것은, 무슨 대단한 사업이라도 하는 듯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를, 남들이 제발 좀 들어주었으면 좋겠다는 듯이 큰 소리를 떠들어대는 것이다.

프랑스 소설가 움베르토 에코는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이란 책에서, 장애자나 소방서장, 시골의사, 갓 죽은 사람의 장기를 기다리는 이식 전문의 등 긴급사태에 즉각 대응해야 하는 사람들, 그리고 내연의 커플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휴대 전화를 사용해도 된다고 했다. 웃자고 하는 소리 같지만, 과연 그럴 듯하다.

“설령 그들이 레스토랑이나 영화관이나 장례식장에서 전화를 받는다 해도 우리는 그것을 용납한다. 내연 관계에 있는 남녀들로 말하자면, 그들은 대개 아주 조심스럽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 없다.”

휴대폰 사용이 위험한 사람은 첫째, ‘방금 헤어진 친족이나 친구와 하찮은 화제를 놓고 계속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조건에서는 어디에 간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자들’이다. 두 번째는, ‘대단히 복잡하고 지극히 긴급한 업무 때문에 전화가 끊임없이 걸려온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과시하고 싶어 하는 자들’이다.

“기차 안이나 레스토랑에서 우리의 귀를 따갑게 하는 그들의 대화 내용을 들어보면, 대개 미묘한 금전거래나 재고품 넥타이에 대한 할인 요구 따위와 관련된 것들이다. 당사자가 생각하기에는 록펠러 같은 사업가들이 나눌 만한 이야기다.”

“이런 사람들은 정작 록펠러 같은 사업가에게는 휴대폰 따위가 필요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록펠러 같은 사람은 대규모의 유능한 비서진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자기 할아버지가 임종을 맞고 있다는 소식 같은 것도 운전사가 와서 귓속말로 전해준다. 진짜 힘 있는 사람은 걸려오는 전화를 일일이 받지 않는다.”

휴대폰을 과시하는 것은, ‘먹고 살기 위해 밤낮으로 채권자들을 쫓아다녀야 하며, 딸아이가 처음으로 영성체 성사를 받는 날 예금 잔액 부족으로 은행으로부터 박해를 받는 처량한 신세임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래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마구 전화질을 하시렵니까?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