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랑 꼭두박물관 관장

동숭아트센터라는 문화공간을 운영하는 동안, 점차 예술 지원의 방법론에 관한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예술 지원은 예술 경영과 분명한 구분이 필요하며 명분과 원칙이 요구됨을 깨닫게 된 것이다. 80년대 후반에는 지원을 하는 쪽이나 받는 쪽 모두가 서툴렀다. 예술가들은 지원받는 상황을 어색해 하고 불편해 했으며, 나 역시 지원하면서도 그 의미와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 회의가 든 적이 많았다. 그때까지는 사실상 상하의 위계질서 속에서 지원을 주고받았기 때문에, 평등한 관계에서 호혜적으로 이루어지는 지원방식이 서로 낯설었던 것 같다. 기준과 방향, 그리고 형식을 갖춘 제대로 된 예술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1991년 10월, ‘옥랑문화재단’이 설립된 배경에는 바로 이런 이유가 숨어있다.

처음에는 재단이 아닌 옥랑예술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어 동숭아트센터 개관 2주년 행사의 기획 및 제작에 참여하는 등 일련의 활동을 벌였다. 그러다 1992년 10월에 문화체육부로부터 문화재단 설립허가를 취득하여 등기를 마치고 11월부터 재단법인 옥랑예술연구원으로 개명하게 된다. 1993년, 옥랑예술연구원이란 명칭은 다시 옥랑문화재단으로 변경되었다. 설립 21주년을 맞이한 2012년의 옥랑문화재단은 여전히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한 공익법인으로서 여러 가지 문화예술 지원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옥랑문화재단은 ‘전통의 현재적 재창조’를 설립 이념으로 하며 ‘한국문화의 정체성 탐구’와 ‘문화예술인 지원’에 중점을 두고 사업을 전개해 왔다.

우선 한국문화의 정체성 탐구작업은 ‘원형탐구’에 초점을 맞추어 시작되었다. 원형탐구가 곧 예술활동의 토대임을 인지하고 본격적인 논의를 위해 4차에 걸친 원형탐구 심포지엄을 기획한 것이 1993년의 일이다. 1차 심포지엄에서는 우리 민족의 ‘정신사적 원류’ 탐구를 주제로 선정하여 사상사, 비교철학, 종교학, 사회학, 인류학 등 다(多)학문 연구를 시도하였다. 2차 심포지엄에서 무속, 신화, 전통 민간사상 등을 통한 ‘전통의 재해석’을 논의하였고, 3차 심포지엄에서는 앞에서 도출된 재해석을 활용하여 주요 전통적 상징을 설정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4차 심포지엄은 그렇게 도출된 상징을 통해 현재의 삶과 연결될 수 있는 예술 양식을 탐색하는 자리였다. 원형탐구에 관한 이러한 논의들은 이후 전통과 연계한 창작극 제작에도 큰 기여를 하게 된다.

옥랑문화재단은 한국문화의 원형탐구에 팔을 걷어 부치는 동시에 전통과 현재를 잇는 문화예술인을 발굴하여 지원하기 시작했다. 국악인 박윤초의 경우 유치환, 김소월, 구상 등 한국 대표 시인의 작품에 창(唱)이나 판소리, 구음 등 전통가락을 붙이는 작업을 해오고 있었는데, 이는 국악을 현대화하고 시를 음악화하는 장르 간 접목의 일환이었다. 이에 재단은 박윤초가 더욱 새로운 양식을 탐구하여 창작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또 사진작가 배병우의 경우 우리 자연을 전통적 관점이 아니라 현대적으로 새롭게 재해석해낸 점을 높이 사서 그의 사진전 ‘한국의 하늘, 땅, 사람(12.7~9,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옥랑문화재단의 사업은 이후로도 다양한 갈래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아마도 다음 칼럼에서 자세히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전통과 현대를 잇는 새로운 방식의 예술지원은 나 역시도 처음 해보는 일이었던 까닭에 많은 좌절을 겪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늘 전통이란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고 움직여온 방식이므로, 현재의 우리 삶을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통부터 잘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통과의 단절은 무모할 뿐만 아니라,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지 않은가? 결국 문제는 ‘전통의 어떤 부분을 어떻게 이을 것인가’일 뿐이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도 재단 사업이 지금까지 일관되게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이 같은 철학이 밑바탕에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문화의 발전을 위해 옥랑문화재단이 추진한 일련의 사업은 학계나 관 주도의 연구가 아니라, 순수 민간단체가 자생적으로 벌인 것이었다는 점에서 하나의 민간 문화운동으로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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