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조(趙)나라의 혜문왕(惠文王)이 초(楚)나라의 이름난 화씨(和氏)의 구슬을 손에 넣었다. 그 소문을 들은 진(秦)나라 왕이 사자를 보내 화씨의 구슬과 자기의 15개 고을과 바꾸자고 제의해왔다. 조나라 혜문왕은 대장군 염파와 중신들을 모아 놓고 상의를 했다. 의견은 분분하여 쉽게 통일되지 않았다. 진나라에 보낼 사자를 뽑는 일도 어려웠다. 그때 환관의 우두머리인 목현이 말했다. “저의 식객 중에 인상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라면 이번 일을 맡겨 진나라로 보낼 만합니다.” “어떤 사람인지 자세히 말해 보오.” 왕이 묻자 목현이 대답했다. “소인은 전에 죄를 짓고 연(燕)나라로 도망치려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를 못 가게 한 것이 인상여입니다. 그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연나라 왕과는 어떻게 아는 사이입니까?’ 하고 묻기에 ‘일전에 대왕께서 국경에 납시어 연나라 왕과 회담하실 때 함께 따라갔습니다. 어떤 기회에 연나라 왕이 나의 손을 잡고 친해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연나라로 가려는 것입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인상여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조나라는 강대국이며 연나라는 약소국입니다. 당신은 조나라 왕의 총애를 받기 때문에 친구가 되자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연나라로 도망가면 어떻게 되겠소? 연나라는 조나라를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에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고 반드시 붙잡아 조나라로 압송할 것이요. 그러니 도망가는 것보다 차라리 진심으로 왕에게 사과를 하면 용서를 받을지 모릅니다’라고 타일렀습니다. 그래서 소인은 대왕께 용서를 빌었고, 다행히 대왕은 과분한 조처를 내려 주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인상여는 지혜와 용기를 가진 사람이라고 판단됩니다. 그래서 그를 진나라로 보냈으면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왕은 인상여를 불러들였다.

“진나라 왕이 15개의 고을과 내가 가진 구슬과 바꾸자고 제의해왔소. 어떻게 하면 좋은지 의견을 듣고 싶소.” 인상여가 말했다. “진나라는 강대한 나라입니다. 그들의 요구를 듣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왕이 다시 물었다. “하지만 구슬을 빼앗기고 땅도 얻지 못하면 어떻게 할까?” “진나라는 교환을 제의한 것입니다. 구슬을 주지 않으면 우리에게 흠이 있고, 구슬만 받고 땅을 주지 않으면 잘못은 진나라에 있습니다. 어느 쪽이 이로운 일인가를 따져서 진나라의 제의를 받아들여 잘못이 진나라에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왕이 다시 물었다. “사자로서 어디 마땅한 사람이 있을까?” “만약 마땅한 사람이 없다면 제가 가겠습니다. 진나라에서 땅을 주면 구슬을 놓고 오고, 만약 땅을 주지 않을 경우는 구슬은 도로 가지고 오겠습니다.”
조나라 혜문왕은 인상여가 구슬을 가지고 사자로서 진나라에 가도록 명령을 내렸다.

진나라로 들어간 인상여는 왕궁에서 진왕을 만났다. 인상여가 화씨의 구슬을 조심스럽게 올리자 진왕은 기뻐서 옆에 있는 여인들과 하인들에게까지 그것을 보이고 자랑했다. 왕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만세를 불렀다. 그런데 진왕은 교환 조건으로 제시한 땅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이 없었다. 인상여는 앞으로 나아가 아뢰었다. “사실 그 구슬에는 흠이 있습니다. 그 흠을 대왕께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진왕은 아무 의심 없이 인상여에게 구슬을 건네주었다. 인상여는 구슬이 손에 들어오자 곧장 뒤로 물러서며 기둥 앞에 붙어 섰다.

그런 다음 험상궂은 얼굴로 외쳤다. “대왕께서는 구슬을 손에 넣기 위하여 사자를 조나라 왕에게 보냈습니다. 조나라 왕이 신하들과 상의했더니 ‘진나라는 욕심이 많은 나라이고 부강한 것을 미끼로 다른 나라에 억지를 쓴다. 땅을 준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하는 의견이 대부분이었소. 그래서 한때는 교환에 응하지 않기로 결정하였소. 그러나 나는 반대를 했소. ‘보잘것없는 백성들 사이에서도 사기 행위는 수치로 알고 있습니다. 하물며 강대국인 진나라에서 거짓말 할 리가 있겠습니까? 구슬 하나로 진나라와 우호 관계를 그르쳐서는 안 됩니다.’ 그리하여 조나라 왕은 나의 의견을 받아들여 닷새 동안이나 목욕재계한 뒤 저에게 구슬과 친서를 주어 이곳으로 보냈습니다. 그것은 대국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대왕의 태도는 어떻습니까? 구슬을 손에 넣기가 바쁘게 여자들에게 구경시키고 저를 우롱하였습니다. 예의에 어긋나는 정도가 지나치며 한 국가의 사자를 대우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또 대왕은 교환의 조건으로 제시한 땅도 줄 뜻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구슬을 도로 제 손에 넣었습니다. 그러니 저를 죽이시오.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기 전에 구슬도 이 기둥에 깨버리고 제 머리도 기둥에 부딪쳐 죽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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