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3월 10일 미군은 전쟁 종결을 위해 일본의 수도인 도쿄와 그 주변 일대에 대량의 소이탄을 투하했다. ‘도쿄대공습’이라 불리는 이 전투에서 미군은 약 344기의 B-29 슈퍼포트리스 폭격기를 이용, 총 2400여t에 달하는 대량의 폭탄을 도쿄 상공에서 투하했다. 이 공습으로 도쿄와 그 일대가 쑥대밭이 되면서 10일 하루에만 10만여 명의 주민이 목숨을 잃었다. ‘도쿄대공습’이라 불리는 이 폭격은 일본인의 주거 형태를 고려한 철저하게 준비된 공격이었다. 당시 일본 주민은 목재 가옥에 살았는데 나무의 유연성을 이용해 지진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이 탓에 폭탄의 화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고, 주민 대부분은 불에 타 죽었다. 한편 당시 사상자 중에는 다수의 재일동포가 포함돼 있었는데 전문가들은 최소 1만 명이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기존까지 당시 재일동포 중에 누가 죽었고, 이들이 어디에 묻혔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었다. 일본 측이 ‘강제징용’의 그림자를 가리고자 한국인 사망자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죽음을 신원할 수 있는 작은 계기가 생겼다.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위원장 박인환)가 공습 당시 사망한 조선인 95명의 신원을 확인해 6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시바우라(芝浦) 군용 의류품 공장과 이시카와지마(石川島) 조선소 등 군수공장 숙소에 집단 수용된 90명이 공습 당시 즉사한 것으로 조사됐다. 공습에 따른 사망자를 공식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충격적인 것은, 강제 수용으로 인해 공습 당시 탈출 자체가 불가했다는 점이다. 공장에 갇힌 채로 아비규환 속에 죽어갔을 우리의 ‘할아버지들’을 생각하니 아찔하기만 하다.

위원회는 법령상 유골 봉환과 부조금 지급 책임이 일본 정부에 있는 만큼 이 부분을 일본 정부에 적극 요구할 방침이라고 한다. 이번에 확인된 자료는 일본 측이 넘겨 준 것이다. 일본 정부도 이전처럼 ‘모르쇠’로 일관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 시점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의 의지다. 이번 기회에 강제 징용 사망자들에 대한 일본 정부의 지급 책임을 확실히 강조하고, 거둘 수 있는 유골은 고국으로 봉환해야 한다. 그것이 짓밟힌 역사를 바로잡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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