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봉스님.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백지원 기자] “남을 꾸짖을 마음으로 나를 꾸짖고, 자기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하라. 남을 대할 땐 봄바람처럼 대하고, 스스로 자숙할 땐 추상(秋霜, 가을의 찬 서리)같이 하라.”

남에게는 관대하되 자신에게는 엄격하라는 가르침이 담긴 경봉스님의 말이다. 그의 후학들은 그를 온화하고 검소하며, 따뜻한 가르침을 베풀었던 스님으로 기억한다.

1892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경봉스님은 소년시절부터 이치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7살 때 한학자 강달수 선생으로부터 ‘사서삼경’ ‘명심보감’ 등을 배우며 표면적인 내용보다 그 안에 담긴 깊은 뜻을 탐구하도록 가르침 받았다.

그 같은 가르침을 따라 경봉스님은 글에 담긴 이치와 도리를 깨닫기 위해 노력했고, 어른이 되면 사람 사는 이치, 세상의 이치를 밝히는 선비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생사에 대한 고민으로 출가
그러던 그에게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찾아왔다. 그가 열다섯 살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다. 그는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졌고, 생사의 이치를 깨닫기 위해 1907년 통도사를 찾아갔다.

이것이 인연이 돼 출가한 스님은 그곳에서 명신학교에 입학해 지리, 산술 등 신학문을 접했다. 어려서부터 한문을 익혀온 그는 불경도 빠르게 익혀갔다. 또한 그의 재능을 알아본 스님들 덕분에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다. 이후 불교전문강원 대교과에 입학해 ‘능엄경’ ‘금강경’ ‘화엄경’ 등 불경을 심층적으로 배웠다.

◆나라 없는 설움 깨닫다
그는 대교과에서 만해 한용운으로부터 ‘화엄경’을 배웠다. 이때 한용운으로부터 ‘월남망국사’에 나타난 월남이야기를 들으며 ‘나라 없는 설움’을 알게 됐다. 이에 나라와 민족이 처한 현실이 어떠한 상황인지 알게 되면서, 무엇보다 백성을 깨우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 같은 일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화엄경’에서 ‘종일토록 남의 보배를 세어도 반 푼어치의 이익이 없다’는 글귀를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경전에 깊은 뜻이 담겨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부처의 보배이지 자신의 보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보배를 찾고자 통도사를 떠나 해인사 퇴설당, 금강산 마하연‧석왕사 등을 돌아다니며 정진하고 공부했다. 그리고 통도사 극락암으로 자리를 옮겨 3개월 동안 정진을 이어갔다.

이 같은 수행 끝에 깨달음을 얻은 스님은 통도사 극락호국선원의 조실로서 설법을 구하러 오는 불자들을 가르치고, 후학을 양성했다. 불자들에게 깨달음을 주고자 여러 책을 저술하기도 했던 스님은 1982년 91세의 나이로 입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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