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의원 원장

 
3월부터 소득수준과 관계없이 0~2세 영유아에 대한 보육료가 지원된다는 정부 정책에 따라서 해당 연령층의 보육료 지원 신청이 급증했다고 한다. 보건복지부가 2월 22일 발표한 결과 0~2세 아동의 보육료 지원 신청 인원이 20만 3000명으로 전체 영유아(0~5세) 신청 인원(28만 3000명)의 72%를 차지했다. 만일 보육료 신청 추세가 지속될 경우에는 2월 말까지 누적 신청인원은 최소 30만 5000명에서 최대 34만 명으로 전망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한편 만 3~4세 아동을 둔 가정이 보육료 지원을 받으려면 4인 가구 기준으로 월 소득 정액(재산환산 포함)이 524만 원을 넘지 않아야 한다. 소득하위 70%의 기준선이다.

정부가 보육 지원을 확대하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부모님들이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정작 실제로 보육기관에 보내기 시작하는 만 3~4세의 연령에서보다 주로 가정에서 아이를 돌보는 시기인 0~2세의 연령에 지원이 더 많다는 점이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맞벌이 부부들은 대개 어쩔 수 없이 0~2세의 자녀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관점에서 볼 때 0~2세의 시기는 엄마와의 ‘애착 관계’를 안정적이고 긍정적으로 형성해야 하는 발달적 과제가 있기 때문이다.

‘애착’이란 한 사람을 향하여 가깝고 친밀하게 다가서고 싶은 감정과 행동을 말한다. 아이와 엄마와의 애착관계는 생후 6~8개월에서부터 만 2~3세까지의 시기에 집중적으로 형성된다. 아이는 낯선 사람을 구별하고, 엄마와 떨어지는 것을 불안해하며, 엄마의 단순한 생물학적 보살핌뿐만 아니라 애정, 관심, 상호작용, 놀이, 대화 등을 갈구하게 된다. 이러한 아이의 심리적 욕구에 적절하게 잘 반응하는 부모 밑에서 자라나면 아이는 ‘안정 애착’을 형성하게 되고, 그렇지 못하면 ‘불안정 애착’을 형성하게 된다. 안정 애착을 형성한 아이는 엄마의 표상(또는 이미지)이 긍정적으로 마음에 심어져 있기에 향후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이러한 긍정적인 표상이 자동적으로 작동되어 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관계를 맺어 나갈 수 있다. 늘 즐겁고 쾌활하며 다른 사람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기에 누구에게나 다 환영받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나 불안정 애착을 형성한 아이는 반대로 엄마의 표상이 부정적으로 마음에 그려져 있기에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에서 부정적인 시스템이 작동한다. 그 결과 다른 사람들을 의심하거나 적대시하거나 두려워하거나 질시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평가를 받음은 물론이려니와 본인 스스로 사회적 관계 맺기에 자신 없어 하면서 공격성과 위축이 교대로 나타나게 된다. 결론적으로 영유아 시절에 형성된 애착의 질이 추후 아이의 사회성과 인성의 발달 및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만 3세 이후에는 아이가 또래들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놀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된다. 그 이전의 연령에서는 친구들과 함께 놀고 있어도 자세하게 관찰해 보면, 주로 혼자서 놀고 친구와의 협력과 상호작용이 별로 이뤄지지 않는다. 마치 건전지를 병렬로 연결한 것 같다고 해서 ‘병렬 놀이’라고도 부른다. 여하튼 만 3~5세의 시기에서 본격적으로 사회적 관계 맺음의 실습 단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동네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마주칠 수 있고, 어린이집에서 매일 같은 아이들과 만나게 될 수 있으며, 가끔 사촌 형제들 또는 언니나 형의 친구들과도 어울리게 된다. 아이의 사회성 능력의 기초는 이와 같이 대개 만 5세 즈음까지 상당 부분 발달이 이루어진다.

혹시 아이를 충분하게 돌볼 수 있는 여력이 있는 어머니들이 보육료 지원이라는 당근 때문에 불필요하게 0~2세의 자녀들을 어린이집에 보낼까 우려된다. 반대로 사회성 발달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또래와의 관계를 맺는 방법들을 배우며, 학습 능력의 기초를 다지는 만 3~4세 아동의 어머니들이 경제적 부담 때문에 보육기관에 보내지 못하는 경우도 우려된다. 정부의 보육 정책이 향후 보다 더 면밀하고 효율적으로 보완되어 시행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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