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악플로 인한 폐단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동쪽에 있는 예의에 밝은 나라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이라 불렸다. 서로 양보하고 싸우지 않는 등의 풍속이 아름답고 예절이 바르다하여 일컬어진 말이다. 하지만 인터넷 강국이라 불리는 지금의 한국은 악성댓글(악플)로 한 개인을 죽음으로까지 몰아넣는 나라가 돼버렸다.

최근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故김지후 씨와 故장채원 씨의 미니홈피가 악플러들의 무차별 공격으로 폐쇄 되는 등 죽음도 개의치 않는 악플러들의 행위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문제가 심각한 것은 ‘악플러’라고 불리는 그들 중 다수가 평범한 우리의 이웃이라는 점이다. 평범한 그들이 인터넷만 들어가면 달라지는 이유, 무엇이 문제일까. 

급증하는 사이버 명예훼손

경찰청에서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사이버 명예훼손은 2005년 3600여건, 2007년에 4800여건으로 2년 사이 30%이상 증가했으며, 올해 8월말 현재 3100여건에 이른다.

신고하지 않은 피해자들까지 감안한다면 그만큼 악플로 인한 고통이 실재(實在)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재미로 올린 글, 누군가는 맞아 죽어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는 속담이 있다.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간다는 뜻이다. 이는 악플로 인한 폐해를 대표적으로 표현해주는 속담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악플로 인해 빚어진 피해가 참담한 결과로 드러나고 있어 나라 안팎이 떠들썩하다. 이러한 악플 또는 명예훼손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은 공인을 비롯한 정치·연예·종교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먼저 대중에게 가장 많이 노출되어 있는 연예계의 경우, 악플로 인한 고통이 자살로 나타나고 있어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악성 루머에 시달려왔던 故 최진실 씨의 죽음은 많은 이들을 충격에 빠트렸고, 故장채원, 故김지후 등 연예계의 잇단 자살소식에 ‘최진실 법’이라는 말까지 등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얼마 전 연기자 홍석천 씨는 MBC ‘100분 토론’에 패널로 참석해 악플에 대한 심각성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는 “악플과 연예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며 “악플이라는 것에 공격을 당하기 시작하면 인격모욕부터 시작해 심지어 나는 죽어야 되는 사람이라고 세뇌 시키는 것만 같다”는 심정을 토로했다.

이러한 악플의 폐해는 종교계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종교계의 경우 타 종교를 배척하는 종교편향주의나 비 종교인으로부터 집중 비난을 받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특히 기독교 내 타 종교 배척과 이단정죄는 심각한 수준이다.

 타 종교나 교단의 안티를 자청하는 인터넷 상 클럽과 카페에서는 기독교인들의 집단이라고 보기 어려운 비방과 욕설, 인권모욕을 동반한 악플이 죄의식 없이 난무하고 있다. 이들은 ‘종교비판의 자유’라는 미명 아래 인신공격과 사실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악성댓글들을 사이버 상에서 유포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사이버 주홍글씨’라 불리는 일방적인 정죄로 악플의 폐해를 주도하고 있는 격이다. 

비방댓글로 인해 고소 당하고도 죄의식 없는 일부 기독교인들의 단면.

악플러 비방 댓글, 왜 이러나?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유범희 교수는 인터넷에서 비방글을 쓰는 사람들은 익명성을 빌어 숨어서 욕하는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이러한 사람들은 보통 일상생활에서 자신감이 없고, 심리적 열등감 등으로 위축되어 있는 상황”이라며 “숨을 수 있는 공간에서는 평소 내재되어 있던 공격성이 무차별적으로 발산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인터넷 등의 익명성이 보장되는 공간을 감정의 배설구로 이용하는 것이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사람들은 글을 쓸 때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하고자하는 욕구가 있다”며 “인터넷 상에서는 내가 올린 글을 많은 사람이 볼 때 자신감이 생기기 때문에 더 자극적인 글과 엽기적인 글을 올리는 등 튀어야 많은 사람이 본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이처럼 “관심 받는 것을 인터넷에서 한번 맛 들이고 나면 많은 사람이 들어주고 반응을 보이는 것에 중독돼 오로지 반응에만 집중하는 성향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자신의 글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그것이 나쁜 행위인지, 얼마나 많은 피해를 주게 될지 등을 망각하게 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물론 잘못한 것에 대해서 처벌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규정을 정하기 이전에 의식개혁을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故 최진실 씨의 영구차가 4일 장례식장을 나서고 있다.

이러한 악플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불특정다수를 가해자로 여겨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게 된다. 곽금주 교수는 “피해자들의 경우 모든 사람이 다 나의 적으로 보이는 대인기피증 증세를 보이게 된다”며 “극심한 심적 고통으로 인해서 자살을 하는 사람도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은 차라리 오프라인에서 한 대 맞는 폭력이 더 낫다고 호소한다는 것이다.

유희범 교수는 이들의 심리를 “길가다 모르는 사람한테 갑자기 욕을 먹는 경우나 구정물을 맞은 경우에 비유할 수 있다”며 “대중 앞에서 모욕을 당한 것이므로 심리적 충격이 있을 수 있고, 자꾸 그 생각이 되풀이 되어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고 했다. 문제는 악플의 대상을 잡을 수 없어 문제를 해소할 수 없는 것이 큰 이유다. 하지만 유 교수는 “일부의 악플을 일반적인 평가라고 비약시켜 사고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악플’ 이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한나라당과 정부가 故 최진실씨의 죽음을 계기로 정보통신망법에 사이버모욕죄를 도입해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한다는 입장을 두고 야당과 시민단체의 반발이 거세다.

지난 8일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연대 등 6개 시민단체가 주최한 ‘악플문화 극복을 위한 합리적 대안 모색’ 긴급토론회가 서울 한백교회에서 열렸다. 이날 토론회의 쟁점은 단연 ‘사이버모욕죄’였다.

강장묵 세종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네트워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네트워크를 통제하려다보니 규제와 검열이라는 ‘손쉬운 칼날’을 택했다”고 비판했다.

‘악플문화 극복을 위한 합리적 대안 모색’ 긴급토론회에서 강장묵 세종대 컴퓨터공학과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현행형법상에는 1년 이하의 징역, 2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도록 하는 모욕죄가 있다. 김보라미 법무법인 문형 변호사는 이를 두고 “‘악플’은 매우 모호하고 다양한 개념”이라며 “악플의 유형에는 허위사실, 명예훼손, 욕설 등이 있는데 이 모든 것들이 지금 현행법으로도 처벌 가능하다. 지금 문제는 악플이 아니라 정부 측이 이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거다. 정부가 故 최진실씨를 이용해 ‘망법 개정안 밀어부치기’를 시도하는 것은 오히려 최씨를 모욕하는 짓”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에서는 법은 가장 최후의 수단이며 악플의 기준마련부터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어 9일 ‘사이버모욕죄, 필요한가’를 주제로 진행된 MBC 100분 토론에서 찬반론이 치열한 가운데 민주당 우윤근 의원이 악성댓글은 심각한 사회문제이기 때문에 근원적인 처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우 의원은 “이것은 우리 사회가 병들어있다는 증거”라며 “이례적인 법개정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고 이 문제는 사회전반에 걸친 문제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근본적인 종합대책을 또 장기적으로 수립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악플에 대한 범위도 악플을 제한하는 방법도 효과적인 연구 없이 너무 밀어붙이기 식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사이버모욕죄' 주요 쟁점

찬성입장

법안핵심

반대입장

“인터넷 상의 비방행위에 대해 피해자의 고소·고발 없이도 수사와 처벌이 가능하도록 한다”

사이버 모욕죄 친고죄 폐지

“형법상의 모욕죄처럼 고소고발이 있어야 수사가 가능한 ‘친고죄’를 폐지한 것은 공권력 남용을 제도적으로 보장한 것”

“건전한 인터넷 문화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

인터넷 실명제 확대

“공권력이 인터넷을 통제함으로써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것”

“악성댓글 등으로 피해를 본 당사자가 댓글 삭제를 요청할 경우 해당 포털사이트는 24시간 내에 이를 삭제하거나 임시로 내리는 조치 의무화”

문제 댓글 삭제 의무화

“비리고발이나 사회 비판적인 댓글 등 네티즌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인터넷이 가장 중요한 특징인 쌍방향 소통을 유명무실화시킬 우려있다”

너도나도 대안 찾기 발등에 불, 선(善)플달기 운동 확산

악플이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른 가운데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런 시점에 선한 댓글달기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리고 있다.

선플달기운동본부 민병철 대표는 “근거 없는 내용으로 상대방의 인권을 침해하고 인격을 모독하는 악성댓글들은 막상 피해를 당하는 당사자에게는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주고, 경우에 따라 생명까지도 내 던지게 만든다”며 “이제부터라도 다른 이들의 불행을 자초하는 악플이 더 이상 확산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 대표는 “善플달기운동의 아름다운 댓글달기 뿐만 아니라 내가 먼저 다가가는 先플달기로의 확대는 무조건적인 비난과 반목이 팽배해 있는 우리사회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했다. 

선플달기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들과 회원들 /사진제공 : 선플달기운동본부

익명성, 가상의 공간, 현실세계와는 다른 인터넷 공간에서 지금의 전통적인 형법과 형사상 법만 가지고는 부족하다는 의견이 팽배한 가운데 현행법으로 해결 방안을 마련하자는 방법이 제시되고 있다. 이와 함께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의식개혁이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문제가 발견될 때마다 헌법보다 위에 군림하는 식의 법안을 자꾸 마련해 간다는 것은 국민들이 국법을 바라보는 신뢰가 없어지는 것이고 국민들도 혼란을 가져올 뿐이다. 이런 식의 법안 마련은 근본적인 문제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 물론 정치에 이용해서도 안 된다. 뭔가를 의도하고 법을 제정하려 하는 것은 맞지 않다. 진정 국민의 입장에서 국민의 명예와 권익을 보호해 줄 수 있는 그런 마인드로 이것을 해결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법망을 이용해서 국민의 의무와 기본권은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허술한 법망으로 인해 국민의 기본권에 위해가 가해지면 안 된다. 솜방망이 같은 임시방편적인 해결책을 찾아서도 안 되고 진정 이것이 문제가 된다면 철퇴를 가할 수 있는 제도가 시급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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