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1965년 1월 김기수, 대한민국 첫 프로복싱 챔피언 탄생
[역사 속 오늘] 1965년 1월 김기수, 대한민국 첫 프로복싱 챔피언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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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루=글마루] 도시는 열광하고 있었다. 잡음으로 끊기는 라디오와 동네에 몇 안 되는, TV 앞에 모인 사람들은 동양챔피언 타이틀을 우리나라 선수가 거머쥐었다는 뉴스에 흥분하고 있었다. 일본 선수들의 독무대 동양타이틀에서 미들급 챔피언 가이즈 후미오를 6회 만에 KO시키고 여유 있게 링에 기대는 모습은 보는 이들을 매료시켜 버렸다. 그는 아마전적 88전 87승 1패, 프로 전적 49전 45승(16KO) 2무 2패의 위대한 기록을 세운 김기수 선수이다. 그가 대한민국에 첫 프로 동양챔피언 벨트를 선사했다.

하지만 동양챔피언은 시작에 불과했다. 아마추어 시절 87전승의 그에게 첫 패배를 안겨준 세계챔피언 이탈리아의 벤베누티를 판정승으로 꺾어 우리나라 선수로는 처음으로 프로복싱 WBA주니어 세계챔피언을 따냈다. (1966). 판정이 김기수 선수의 승리로 내려진 후, 경기장 내에서 관전 중인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뛰어가 승리를 전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재떨이에는 담배꽁초로 가득하였다고 한다.

그에게는 항상 ‘한국 최초’라는 단어가 따라 다녔다. 58년 한국 복싱계 최초로 아시안게임에서 복싱으로 금메달을, 65년 동양 챔피언타이틀에 이어 66년 6월 25일 WBA세계챔피언 벨트를 조국에 안겨 주었다. 그를 시작으로 많은 선수가 복싱 세계타이틀매치에 도전하면서 80년대까지 대한민국은 많은 세계챔피언들을 배출한 복싱강국으로 불리었다.

“전 38 따라지(38선을 넘어온 피란민을 부르던 속어)였죠!”

김기수 선수는 당시 가난한 60년대의 젊은이들에게는 세계챔피언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선사했다. 특히 자신이 유복자로 태어나 1.4후퇴 때 함경북도 북창에서 38선을 넘어 여수로 피난 온 피란민으로 배고픈 시절을 복싱에 대한 열정으로 이겨 ‘헝그리 정신’ 의 산 증인이 되었다.

그의 복싱 데뷔는 화려했지만 은퇴는 더욱 아름다웠으며, 철저한 자기 관리와 절제로 은퇴 후 사업가로 성실한 삶을 살았다. 생전 김기수 선수는 자기 관리를 못하여 현역이나 은퇴 후 무너지는 후배들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모 신문에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남겼다. 그의 메시지는 오늘날 냉혹한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주는 것일 것이다.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다. 삶의 현장은 더욱 냉정하다. 약육강식의 정글이다. 4각의 링과 세파 속에서 뼈가 굵은 나는 이 비정한 세계를 이겨내는 무기가 무엇인지 잘 안다. 자기 자신과 싸워 이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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