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선사 내 대웅전 역할을 하는 큰법당. 한글 현판이 인상적이다. ⓒ천지일보(뉴스천지)

현판뿐 아니라 주련도
한글로 쓰여 이해 쉬워

맑은바람 부는 ‘청풍루’
짜임새 있는 구성 ‘괘불’

[천지일보=백지원 기자] 이윽고 발걸음을 옮겨 청풍루에 다다랐다. 맑은 바람이 부는 곳이라는 의미의 청풍루(淸風樓)는 큰법당으로 가기 위한 하나의 관문이다.

청풍루 계단에 오르면 지금까지 지나온 길과 눈으로 덮인 산이 보인다. 맑은 바람 대신 거센 겨울바람이 불지만, 겨울산이 내주는 풍경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소원등(燈)‧사천왕 있는 청풍루
큰법당으로 향하는 길. 청풍루 천장엔 여느 사찰처럼 다양한 색의 소원등(燈)이 가득했고, 길 가운데 집 모양으로 생긴 유리관 안에선 여러 개의 촛불이 빛을 내고 있다.

반면 벽에는 무서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그림들이 걸려 있다. 보통 사찰에서 소조상으로 만날 수 있는 커다란 사천왕이다. 칼을 들고 있는 지국천왕(동쪽을 지키는 수호신), 용과 여의주를 들고 있는 증장천왕(남쪽을 지키는 수호신), 삼지창과 보탑을 들고 있는 다문천왕(북쪽을 지키는 수호신), 비파를 들고 있는 광목천왕(서쪽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이 사천왕은 사찰을 지키는 존재로 여겨지는데, 모두 왼발․오른발 하나씩 악귀를 밟고 있다.

▲ 맑은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란 뜻인 청풍루. 가운데 난 길을 따라 가면 천장에 소원등(燈)과 사천왕 그림 등을 만날 수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청풍루를 통과하니 몇 개의 돌계단 끝에 2개의 해태상이 흰 눈을 뒤집어 쓴 채 반긴다. 시선을 조금 더 멀리하면 탑 하나가 보이고 그 뒤로 커다란 법당이 보인다. 바로 보통 대웅전이라 부르는 큰법당이다.

◆정겨운 이름 ‘큰법당’
6.25전쟁으로 불타 무너진 대웅전을 다시 세우면서 운허스님이 이곳의 현판을 ‘큰법당’으로 바꿨다고 한다. 지금 봐도 이 같은 모습이 낯선데 당시엔 얼마나 신선한 시도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이 현판을 본다면 이 건물이 어떠한 곳인가를 단번에 알 수 있을 듯하다.

법당 주련도 한글이다. ‘온누리 티끌 세어서 알고/ 큰 바다 물을 모두 마시고/ 허공을 재고 바람 얽어도/ 부처님 공덕 다 말 못하고’라는 선시(禪詩)가 쓰여 있다. 불자가 아니더라도 그 의미를 어렵지 않게 해석할 수 있다.

“해인사에 팔만사천 장의 보물이 쌓여 있지만 남의 나라 문자인 한문으로 돼 있어 일반 대중에게는 한낱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는 나무토막에 불과하다. 이것을 대중에게 좀 더 가까이 갖다 주어 정말 무가보(無價寶,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귀한 보배) 구실을 하도록 해야 한다.”

운허스님이 평소 강조했던 말이라고 한다. 불경이 불경 자체로서가 아니라 그 뜻을 이해했을 때 보배가 된다는 것, 곧 법문이 사람들에게 가치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선 그 뜻을 알아야 한다는 의미다.

▲ 봉선사 큰법당 내부에는 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한글현판ㆍ주련 건 운허스님 뜻
전국의 사찰을 찾는 사람들 중 한문 주련에 담긴 뜻을 헤아리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많은 사람이 사찰을 다녀가지만 대웅전 등에 걸린 주련을 하나의 장식으로 여기고 지나친다. 주련에 쓰인 한자를 다 읽을 줄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은 데다 그 속에 담긴 뜻을 완전히 헤아리기는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불경을 마주하는 불자들의 모습도 마찬가지였기에, 운허스님은 이를 안타깝게 여겨 한글로 불경을 번역했고, 사찰 곳곳에도 이 같은 깊은 뜻을 담은 것이다.

이 같은 운허스님의 뜻을 기려 사찰 입구에서 올라오다 보면 연못 건너편에 운허스님 부도탑과 한때 이곳에 머물렀던 춘원 이광수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 보물 제397호인 봉선사 대종이 있는 범종루. 한글 현판이 걸려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삼층석탑과 봉선사 괘불
큰법당 앞에는 부처님 진신사리와 무구정광다라니가 봉안된 삼층석탑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법당 앞 한쪽에는 괘불지주와 괘불에 대한 안내판이 있다. 괘불은 사찰에서 주로 옥외법회를 할 때 밖에 내걸고 의식을 행하는 그림이다.

문화재청 자료에 따르면 봉선사 괘불은 삼존불이 대중들에게 설법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으며, 짜임새 있는 구성과 사실적인 묘사 면에서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받아 현재 경기도유형문화재 제165호로 지정돼 있다.

큰법당 옆 지장전, 사찰 높은 곳에 있는 삼성각, 그리고 관음전, 조사전, 방적당, 다경실 등 여러 건축물이 봉선사 내 자리하고 있다.

처음에는 낯섦 반, 신기함 반으로 한글 현판과 주련을 마주하게 되지만 그 속에 담긴 운허스님의 뜻을 알고 나면 그 깊은 의미에 더욱 감탄하게 되는 봉선사. 겨울이 내주는 사찰의 풍경도 멋있었지만 연꽃을 보지 못한 아쉬움에, 여름에 다시 한번 찾아오겠노라 다짐하며 봉선사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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