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세 나이로 제76회 의사국가고시에 합격한 김윤권 씨. (사진제공: 영남대학교)

 

“노인들 도와주는 요양·실버의료 전문의 될 것”

휴대폰 대리점 운영하다 외환위기로 부도
극심한 스트레스로 심근 경색 수술 받아
필기시험 합격했지만 제도 달라져 다시 1년 실기 준비
주변 사람들에게 받았던 은혜 그대로 갚으며 살아갈 것

[천지일보 경북=장윤정 기자]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근근이 생활하다 최근 발표된 제76회 의사국가고시에서 최종 합격하며 ‘인생역전’의 기회를 거머쥔 사람이 있다. 바로 영남대학교 의대 출신 김윤권(50, 남) 씨다.

7살짜리 딸과 6살짜리 아들을 둔 그는 “아내와 어린아이들에게 정말 미안했습니다. 이제는 제대로 가장 노릇 좀 해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동안 불평 한 번 없이 내 옆을 지켜준 아내와 좌절할 때마다 용기를 북돋아 줬던 지인들에게 그저 고마울 따름”이라고 덧붙였다.

김 씨는 이웃집 아저씨와 같이 푸근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지녔다. 여러 번의 실패와 좌절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 그의 얼굴에 그대로 묻어난 듯했다.

그는 어쩌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살아가게 됐던 것일까. 김 씨는 굴곡진 인생 이야기를 펼치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1982년 영남대 의과대학에 비교적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지만 그때는 의사보다는 다른 일들을 해 보고 싶었다.

김 씨는 “어린 생각에 의사로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왠지 답답했어요. ‘다른 삶의 길이 있지 않을까’ 고민하느라 공부를 소홀히 했어요. 시간을 어영부영 보냈죠. 등록을 무려 24번이나 했고 1996년 2월에 겨우 졸업을 하긴 했지만 의사국가시험을 치지는 않았습니다. 그때까지도 나에게 주어진 다른 삶을 찾고 싶었어요”라며 그 당시를 회상했다.

졸업한 후에 그는 휴대폰 대리점을 운영하게 됐다. 평탄한 삶을 살아갈 것 같았지만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부도를 맞았고 2004년에는 채무를 이행하지 않아 신용불량자까지 됐다.

그래도 이겨내기 위해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따고 요양보호사로 근무하기도 했다. 그러나 형편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그저 미안한 마음만 들었다.

그러던 찰나 5년간 식물인간으로 지냈던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김 씨는 “대학교 다닐 때는 집이 넉넉해서 먹고살 걱정은 평생 안 하고 살 팔자라고 생
각했습니다. 그래서 별로 열심히 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렇게 벼랑 끝까지 몰릴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인생의 내리막길을 걸어가던 끝에 그는 2009년 의사국가고시를 보기로 결심했다. 1년 동안 영남대 의과대학 도서관에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공부에 매달렸다.

그는 이때 학교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영남대에서 의대생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줬습니다. 젊은 학생들과 함께 모의시험을 치고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더라고요.”

이같이 노력한 결과 그는 2010년 제75회 의사국가고시 필기에 합격했다. 그러나 여기서 다 끝난 것이 아니었다. 2009년부터 의사국가고시에 실기가 추가돼 1년을 더 공부해야 했다.

김 씨는 “의사국가시험 제도가 달라졌는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실기 준비를 또 해야 했죠”라며 허탈하게 웃었다.

그러던 중 지난해 8월 5일 극심한 스트레스로 심근경색 수술을 받기도 했다. ‘얼마나 고민하면서 힘들어 했을까.’ 기자도 그의 삶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하지만 힘든 것도 잠시. 그는 마침내 올 초 실기시험까지 최종 합격하게 됐다. 이젠 의사로서의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이다.

그는 이달 중순 무렵부터 대구의료원에서 한 달여간 교육을 받게 된다.

김 씨는 요양이나 실버의료 분야의 전문의가 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어려운 시절 요양원에서 일했던 경험이 의사국시 합격에 도움이 됐던 것 같습니다.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받았던 것들 이 분들에게 그대로 갚으며 살아갈 것입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절박하게 매달리면 반드시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며 “요즘처럼 팍팍한 세상에서 좌절하고 움츠러든 젊은이들에게 내 짧은 인생 이야기가 한 가닥의 희망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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