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적 조치에 불과… 폭력 유형 진화 거듭

[천지일보=송범석 기자] 그간 학교 폭력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왔다. 이전 세대들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엽기적이면서도 조직적인 폭력이 피해 학생들을 짓눌러 왔던 것이다. 이 같은 학교 폭력의 잔인성이 이슈가 될 때마다 교육 당국이 여러 가지 대책을 발표했지만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한시적인 조치에 불과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 폭력은 20여 년 전부터 이미 ‘조직화’가 이뤄져 있었다. 1990년 4월 서울지방경찰청은 폭력조직을 결성, 야산에서 본드를 흡입한 후 환각상태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상습적으로 금품을 갈취해 온 고등학교 2학년 김모 군 등 17명을 붙잡은 바 있다. 이들은 환각상태에서 모두 60여 차례에 걸쳐 학생들에게 약 500만 원의 금품을 갈취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당시 상당한 파문이 일었다.

이와 함께 같은 해 11월엔 중학생들이 조직한 ‘일진’끼리 패싸움이 붙어 29명이 경찰에 붙잡히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 서울 남부경찰서에 따르면 이들은 ‘맘모스파’ ‘범성파’라는 조직명을 사용했는데 놀이터에서 각목, 쇠파이프, 손도끼 등을 휘두르며 패싸움을 벌여 지탄을 받았다.

당시 정부는 교육·제도 개선보다 주로 대대적으로 가해자들을 잡아들이는 데 주안점을 뒀다. 실제로 1990년 11월 26일부터 28일 밤까지 사흘 동안 7700여 명의 경찰력이 동원돼 광주·전남 지역에서만 폭력 가해 학생 1220명을 검거했다. ‘악의 근원’을 뿌리 뽑으면 학교 폭력이 전부 해결될 것이라는 단순한 믿음에 근거한 조치였다. 하지만 정부의 바람과 달리 학교 폭력은 끝없이 이어졌다.

지난 1995년 10월엔 자기구역에 들어왔다는 이유로 타교생들을 집단폭행한 고교생 7명에 대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서울지방경찰청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같은 기간 서울 구로경찰서는 ‘놀자파’라는 불량 서클을 결성한 뒤 폭력을 휘두르고 현금을 빼앗은 여중생 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주목할 점은 당시에도 학교 폭력이 지금처럼 이슈로 떠오르면서 정부가 ‘요란한’ 조치를 내놨다는 것이다. 같은 해 11월 27일 정부는 김영삼 대통령의 학교폭력근절책 수립지시에 따라 국무총리실, 교육부, 내무부, 보건복지부, 문화체육부, 공보처 등 관계부처의 장관 또는 실·국장급으로 협의회를 구성하는 등 범정부적인 차원에서 종합대책을 마련했다. 특히 이때에는 검찰까지 나서 ‘지역담당 검사제’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능동적인 움직임을 보였지만 사실상 눈에 띄는 효과는 거두지 못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학교 폭력은 단순히 신체적 폭행을 가하는 방식에서 진화했다. 동시에 그 방식은, 더 잔인해졌다.

지난 2002년 3월 서울의 한 중학생이 청소년폭력예방재단에 “학교에서 말다툼했던 친구가 학교 홈페이지와 아이들이 자주 접속하는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마다 나에 대한 욕설을 늘어놓으며 ‘죽여버린다’는 등의 협박문구를 올려놓았다”고 상담을 요청했는가 하면 다른 한 학생은 문자메시지를 이용한 금품 갈취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같은 해 4월에는 친구들을 상습적으로 때린다는 이유로 중학생이 동급생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서울 남부경찰서에 따르면 가해 학생은 여교사와 30여 명의 학생이 수업 중인 교실에서 피해 학생의 목 등을 9차례나 찔러 그 자리에서 숨지게 했다. 공교롭게도 2002년은 교육인적자원부가 공교육 내실화를 달성하기 위해 ‘폭력 없는 학교만들기’ 원년으로 정한 해였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지금, 일진에게 스마트폰의 테더링 또는 핫스팟 기능을 제공하는 ‘와이파이 셔틀’이나 게임 캐릭터의 등급을 올리기 위해 피해 학생에게 자신들의 아이디로 게임을 할 것을 종용하는 새로운 유형의 폭력이 이뤄지고 있다. 언어폭력 역시 휴대전화 문자 등 SNS 등을 통해 손쉽게 반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그런가 하면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같은 반 친구에게 ‘원조교제’를 강요하거나 ‘노스페이스’ 점퍼를 갖기 위해 또래 학생들을 폭행하고 점퍼를 빼앗은 10대들이 경찰에 붙잡히는 사건도 있었다.

특히 이처럼 학교 폭력이 집요해지면서 심지어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던 학생이 다시 폭력을 당하지 않기 위해 다른 학생에게 폭력을 가하는 악순환까지 생겨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지난 3일 경찰청은 지난달 학교폭력 117신고센터를 통해 접수된 616건의 피해자 가운데 65.3%가 동급생으로부터 폭력피해를 당했다고 밝혔다. 전체 건수도 증가했는데, 지난달 학교폭력의 일일 평균 신고는 19.9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0.8건)보다 2.5배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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