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송범석 기자] 놀랍다. 모든 신체 기관이 시적 언어로 치환된다. 권위와 정형화에 도전하는 작가는 흡사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닮은 듯하다. 손가락 속눈썹 귓불 솜털 뺨 입술 쇄골 복사뼈 등 마흔여섯 가지 우리 몸의 각 부분이 예술적인 텍스트로 남겨진다. 작가는 시와 에세이의 중간지점, 그 속을 관통하며 ‘지금 내 몸에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의미를 탐색한다.

이 신체에 대한 시적 환상은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흙을 굽는 마음으로 언어를 주관해 간다.

저자는 엄지에 대한 시상을 형상화하다가 문득 피아니스트들의 손가락을 떠올린다. 그들의 손가락은 미개척의 대륙처럼 솟아올랐다가 우리가 모르는 심해로 가라앉는가 하면 눈을 감은 채 몰입하는 관객은 그 손가락이 만들어내는 대륙의 주민이 되기도 한다고 전한다.

이내 그의 주변으로 무수한 음표와 쉼표가 떠오르며 시적 은유가 시작된다.

“음악은 무수한 음표와 쉼표의 사이에 존재하는 공동체다. 음표와 쉼표의 조상들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 오로지 자신에게 속하면서 고유한 역사를 만들어왔다. 그들은 서로 기대면서도 끊임없이 불화를 만들어왔다.”

엄지에 대한 단상을 끝낸 그의 시선은 다른 영역으로 확장된다.

그에게 목선은 ‘잠자는 육신을 공중으로 데려갈 때 필요한 선’이며 핏줄은 ‘고독해서 몸속으로 숨어버린 살’이다. 누구나 발견할 수 있는 그러나 누구도 발견하지 못하는 세계를, 작가는 격렬하게, 그러면서도 부드럽게 탐미한다. “몸을 관통하지 못하는 언어는 어디로든 데려갈 수 없다”는 작가의 문제의식 속에 인체의 싱싱한 감각이 스며들면서 예리한 자의식을 남겨 놓는다.

김경주 지음 / 문학동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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