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제공: 서울시정연구개발원)

장애인 10명 중 7명 탈시설 희망… 시민단체 지속적으로 투쟁
“이미 ‘시설’이라는 집단생활 자체가 인권을 침해하고 있는 것”

[천지일보=이솜 기자] “시설에서 나와 보치아를 배우고 있습니다. 배울수록 자신감이 생겨 올림픽 출전이라는 목표도 생겼습니다. 처음 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할 때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하지만 긍정적인 마음으로 차근차근하다 보면 길이 보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2년 전, 뇌병변장애가 있는 신진수(32, 남) 씨는 시설에서 23년 만에 나왔다. 부모님에 의해 들어간 시설에서의 생활에 만족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신 씨는 “인생의 모든 시간을 시설에서만 지내니 너무 갑갑했다”며 “세상을 알고 싶어도 알 방법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최근 시설을 벗어나는(탈시설) 장애인이 늘고 있다. 이는 ‘도가니’ 효과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2008년 석암재단(현 프리웰)의 비리를 폭로한 ‘마로니에 8인’의 시위로 수면 위에 떠오른 시설 문제가 지난해 ‘도가니’ 영화와 소설로 알려지면서 큰 이슈가 됐다.

‘도가니’ 사건은 국민의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이에 따라 장애인 보호시설이 최선은 아니라는 인식이 점차 확산됐다. 여기에 힘입어 예전부터 진행됐던 장애인들의 탈시설 투쟁은 더욱 거세졌다. 사회복지사업법 개정 등의 성과도 있었다.

그럼에도 관계 시민단체 회원들은 지금도 탈시설 촉구 투쟁을 벌이고 있다.

◆“시설안 수동적 삶이야말로 인권침해”
‘탈시설 운동’을 외치는 사람들의 주장은 선명하다. “누구든지 ‘보통 사람’이 영위하는 환경과 조건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공동으로 생활하는 시설을 탈피하자는 얘기다.

‘탈시설’은 궁극적으로 지역사회에서 일반인들과 더불어 사는 생활을 지향하고 있다. 1960년대 북부 유럽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집단생활을 하면 개인의 일상생활이 자연스럽게 통제받고 억압받게 된다는 논리를 담고 있다.

이 운동은 현재 장애인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탈시설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시설 구조’ 그 자체를 공격지점으로 삼고 있다.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발바닥 행동)’의 김은애 활동가는 “사람들이 ‘도가니’에서 나타난 시설 안의 비리와 폭행 등에는 커다란 분노를 느끼지만 그 근본적 문제인 시설에서의 집단생활을 놓고는 고민하지 않는 것 같다”며 “이미 시설이라는 구조 자체가 인권을 침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장애가 있으니 시설에 갇혀 사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과 편견을 버려야 한다”며 “자기의 삶을 통제당하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이 어떻게 당연한 것인가”고 되물었다.

(사)해냄복지회 강현욱 실장은 “장애인들을 보호하고 분리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것이 문제”라며 “시설 안에서 계속 살게 되면 사회적 구성원으로서 갖춰야 하는 소양이나 사회성을 획득할 수 없다. 이것은 인간으로서 권리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강 실장은 또 “이렇다 보니 시설을 나가 자립 생활을 하고 싶어 하는 장애인들이 상당수”라고 덧붙였다.

실제 서울시정연구개발원이 2008년 38개 장애인생활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 1074명을 대상으로 ‘탈시설 욕구’를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57%가 “시설에서 나가길 원한다”고 답했다.

일부(290명)만을 대상으로 물은 ‘주거 및 서비스 지원 시 퇴소를 희망하느냐’는 항목에 대해선 70.3%가 ‘그렇다’고 답해 장애인들의 탈시설 욕구가 매우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탈시설 후 주택·재정 지원 미비
이렇듯 장애인들의 탈시설에 대한 희망은 간절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당장에 나가서 살 곳을 구하기가 막막하기 때문이다.

현재 장애인들의 탈시설을 돕기 위해 단계적 시스템을 구축한 곳은 서울시뿐이다. 이제 지자체 체험홈 한두 곳 정도가 생기기 시작한 형편이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재정 때문이다.

김 활동가는 “서울시 같은 경우는 이미 어느 정도 인프라가 구축됐지만 지방은 다르다”며 “복지부에서 직접 나서서 탈시설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에서 제공하는 ‘체험홈’은 자립체험 장애인의 원활한 주거생활을 위해 1개소에 3~4명이 6~18개월 동안 거주, 사회적응훈련을 받으며 체험하는 곳이다.

체험홈에서 일상생활훈련을 마친 장애인들은 ‘자립생활가정’으로 가게 된다. 여기서 기본 2년간 2~4명이 함께 거주하면서 본격적인 지역사회 자립을 준비하게 된다.

그러나 서울시의 탈시설 지원은 서울 내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선정하기 때문에 지방에서 올라온 장애인들은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이에 대한 보완책이 ‘장애인주거복지사업’이다.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발바닥 행동을 포함해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단체들로 구성된 활동가들이 직접 운영한다.

이들은 시설에서 나와 자립을 원하는 장애인들과의 상담을 통해 대상을 선정하고 집을 구해주며 장애인들의 관계망 형성에 도움을 주는 활동을 한다. 현재 이런 과정을 거쳐 자립생활을 하는 장애인은 총 17명이다.

하지만 이 사업의 지원도 올해로 끝이 난다. 내년부터 살 곳이 없어지게 되는 17명의 장애인들은 지난해 12월부터 서울시청 별관 앞에서 서울시 탈시설장애인의 주거대책을 촉구하는 1인시위를 진행하며 서울시와의 면담을 계속해서 요청해 왔다.

1인 시위가 시작된 지 14일 후 시는 탈시설장애인주거권쟁취대책위원회와 면담을 진행했다.

대책위의 발표에 따르면 서울시는 2012년 말까지 ▲기존 체험홈 입주기준을 완화(현 서울시관할시설 퇴소 1년 이내 기준 완화)하는 것 ▲타 지자체 관할 장애인생활시설에서 나온 장애인에 대한 실태조사를 통해 수용 파악한 뒤 기준을 완화하는 것 등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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