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 판검사 이상 고위직 출신 100대 기업에 47명

(서울=연합뉴스) 대기업 곳곳에 권력의 정점에 있던 고위직 검사와 판사 출신 사외이사와 임원들이 넘쳐나고 있다.

전문성과 윤리경영 강화가 고위 법조인 영입의 표면적인 이유이다. 그러나 각종 이권을 위한 로비용이나 검찰의 '대기업 손보기'에 대비한 바람막이용이 아니냐는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실제로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의 불구속 기소 조치가 내려진 직후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출신을 고위임원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3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100대 상장기업 사외이사와 임원 중 검사와 판사 등 법조인 출신은 76명으로 집계됐다.

부장검사나 부장판사 이상 고위직 법조인은 47명이다. 이 중에서 차관급 이상으로 분류되는 법조계 최고위직 인사만 19명에 달했다. 법무부장관, 검찰총장, 헌법재판관, 고법원장 출신도 적지 않다.

송정호 전 법무부 장관은 고려아연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김각영 전 검찰총장은 하나금융지주의 이사회 의장(사외이사)으로 일하고 있다.

송광수 전 검찰총장은 두산중공업, 이명재 전 검찰총장은 두산인프라코어의 사외이사다.

삼성증권 신창언 사외이사는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지냈다. 주선회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CJ제일제당과 웅진코웨이 사외이사를 겸직하고 있다.

오세빈 현대차 사외이사와 이태운 현대모비스 사외이사, 박송하 대우건설 사외이사, 김동건 현대상선 사외이사도 모두 장관급인 서울고법원장 출신이다.

법무부 차관(김상회 LG전자ㆍ효성, 문성우 GS건설, 정진호 한화 각 사외이사), 법제처장(남기명 LG화학, 한영석 SK C&C 사외이사) 등 차관급 출신도 9명이나 됐다.

검사장과 법원장급 인물은 윤동민 삼성전자 사외이사(전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김영진 삼성생명 사외이사(전 대구지검장), 박상옥 현대건설 사외이사(서울북부지검장) 등 12명이다.

고위직 법조인 출신의 사외이사가 이처럼 많은 것은 기업과 당사자 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이지수 연구소장은 "검찰총장과 고법원장 등 고위직 법조인의 사외이사의 영입은 '보험용'이라는 측면도 있다. 혹시, 오너나 기업에 문제가 생겼을 때 로비의 창구로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일부 고위직 인사들이 2곳 이상 기업의 사외이사를 동시에 맡고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김한기 경제정책팀장은 "엄밀하게 말하면 사외이사를 겸직하는 것은 도덕적 해이다. 1개 기업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복수의 기업을 맡는 것은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단순 거수기 역할만 한다는 방증이다"라고 주장했다.

기업들이 집행 임원으로 법조인을 영입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집행임원의 경우 사외이사와 달리 부장검사급 이하의 비교적 젊은 법조인들이 영입대상이다.

100대 상장기업의 부장검사와 부장판사급 인사는 모두 16명이다. 이 중에서 김상균 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삼성전자 준법경영실장)와 윤진원 전 서울지검 형사6부장(SK 윤리경영부문장) 등 7명은 대기업 고위임원으로 재직 중이다.

부장급 이하 법조인 출신 26명 중 21명도 대기업 법무 관련 부서에서 임원으로 일하고 있다.

삼성전자 법무실과 준법경영실에는 조준형 법무팀장(전 인천지검 검사), 성열우 부사장(서울고법 판사) 등 10여 명의 전직 검사와 판사들이 임원으로 고용돼 있다.

최근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의 불구속 기소가 내려진 지 3주 만에 박철 전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를 SK건설 윤리경영총괄(전무급)로 영입했다고 밝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최 회장의 계열사 자금 횡령 혐의를 담당하는 곳은 박 전무가 소속됐던 서울중앙지검(특수1부)이다.

이지수 소장은 "기업 입장에서 법조인의 임원 영입은 회사 내에서 법률적 검토를 한 번 더 거치게 함으로써 위법을 피할 수 있는 순기능이 있다"고 말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