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성장 모범사례”… “베이커리 몇 개 철수 서민 살리기 도움 안 돼”

[천지일보=정인선 기자] 최근 커피숍과 빵집 등 재벌 기업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이 골목 상권을 죽이는 것이라는 비난이 거세진 데다 정치권에서도 대기업 때리기에 나서자 재벌 기업들이 하나둘씩 소상공 업종에서 손을 떼기 시작했다.

하지만 재벌 기업의 빵집 철수가 골목상권과 서민경제를 살리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5일 “대기업이 소상공 업종까지 사업영역을 넓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서민생업 침범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가장 발 빠르게 이에 대응한 곳은 호텔신라다. 이어 LG그룹의 아워홈, 현대자동차 등도 줄줄이 소상공 업종에서 발을 빼고 있다.

◆ “재벌가 철수, 동네 빵집에 큰 의미 없어”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 27일 논평을 통해 “삼성과 LG의 골목상권 철수는 대‧중소기업 간 실질적인 동반성장에 모범이 되는 의미 있는 사례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재벌 기업의 사업 철수가 서민경제에 과연 얼마나 큰 도움을 줄지는 알 수 없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대한제과협회 임영진 수석부회장은 “전체 제빵업계 비중에서 얼마 안 되는 재벌 딸들의 빵집 철수가 동네 빵집을 살리는 데 큰 도움이 되거나 의미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며 “동네 빵집이 죽어가고 있는 실질적인 원인은 파리바게뜨나 뚜레쥬르의 공격적인 점포 확대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실제로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가 생긴 만큼 동네 빵집이 없어졌다”며 “현재는 포화상태가 돼서 모두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아티제가 입점해 있는 지역에서 동네 빵집을 찾아보긴 어렵다. 청계광장 아티제 근처 작은 점포에서 와플과 커피를 팔고 있는 김경철(66) 씨는 “주변에 아티제 말고 커피숍과 타 브랜드의 빵집이 얼마나 많은데 그거 하나 없어진다고 우리한테 달라지는 건 없다”며 “어차피 재벌가가 철수해도 다른 사람이 들어와서 운영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즉 재벌 기업이 상생 경영을 위해 소상공 업종에서 철수하는 것은 좋은 선례지만 소상공인들의 생계에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대책이 시급한 때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 호텔신라 ‘신호탄’으로 대기업 속속 철수
지난 26일 호텔신라 이부진 사장은 지금까지 운영해온 커피‧베이커리 카페인 ‘아티제’ 사업을 철수하기로 했다. 또 2007년 홈플러스와 함께 설립한 ‘아티제 블랑제리’ 지분도 처분할 계획이다.

아티제 블랑제리는 홈플러스가 81%, 호텔신라가 19% 지분을 투자한 상황이며 홈플러스 매장에서 숍인숍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호텔신라는 2004년 유럽형 라이프스타일 카페를 표방해 아티제를 열었고 2010년부터 자회사 보나비를 통해 운영하고 있다. 아티제는 현재 27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지난해 매출은 241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호텔신라 전체 매출(약 1조 7000억 원)의 1.4%에 불과한 수치다.

호텔신라는 “대기업의 영세 자영업종 참여에 대한 비난 여론에 부응하고 상생경영을 적극 실천한다는 취지에서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아티제의 구체적 철수 방법은 결정되지 않았다. 호텔신라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 철수할지는 아직 고민 중이다.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티제 외에도 재벌 3세가 운영하거나 지분을 가진 베이커리 업체는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 외손녀인 장선윤 블리스 대표의 ‘포숑’ 신세계그룹 이명희 회장의 딸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의 ‘데이앤데이’ ‘달로와요’ 등이 있다.

포숑은 작년 5월부터 롯데백화점 서울 본점 등 대형 점포에 단계적으로 입점해 9월까지 12개 점포를 냈지만 이후 일부가 철수돼 현재 7개 매장이 운영되고 있다.

신세계 정유경 부사장이 2대 주주로서 지분 40%를 가진 조선호텔 베이커리는 빵집 브랜드 ‘데이앤데이’와 ‘달로와요’ 등을 운영하고 있다. 데이앤데이는 이마트 118개 매장에 입점해 있고 달로와요는 신세계 백화점 본점과 강남점 등 10개 점포에 입점해 있다.

신세계 관계자는 “데이앤데이와 달로와요 등은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 매장에서만 운영하며 로드숍에는 진출하지 않았다”며 “앞으로도 계획이 전혀 없어 대기업 골목 빵집 진출 등의 이슈와 상관이 없다”고 해명했다.

아티제에 이어 LG그룹이 운영하는 종합식품기업인 아워홈은 순대와 청국장 소매 시장에서 철수할 것을, 현대자동차는 구내 카페인 ‘오젠’ 사업 중단을 선언했다.

아워홈은 “작년 발표된 동반성장위원회의 순대‧청국장 사업 확장 자제 권고안을 검토한 결과 소매 시장에서 사업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현대차 그룹도 “오젠이 김밥, 샌드위치 등을 판매하는 사내 매점 성격의 편의시설로 운영됐으나 오해의 소지를 없애고자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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