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대부분의 교수들은 학기를 마친 뒤 학생들이 스스로 하는 강의평가에 신경을 많이 쓴다. 강의 성과와 질적 수준이 어느 정도 드러나기 때문이다. 강의평가는 연구논문 등과 함께 다면평가제로 이루어지는 교수의 성과를 매기는 데 중요한 잣대로 작용한다. 학생들의 주관성이 다소 개입될 소지는 있으나 비교적 정성, 정량화된 자료로 평가를 하는 관계로 그 신뢰성이 매우 높다. 강의 평가항목에는 수업준비를 철저히 했는지, 결강은 하지 않았는지, 학생들의 출결 관리는 철저히 했는지, 성적 평가는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했는지, 학생들의 질문에 적절히 수용했는지 등 다양한 평가 항목이 포함된다. 이 자료는 세부 항목별로 학생들이 점수를 매겨 합산한다. 점수도 백분율로 환산돼 학생들의 성적처럼 A+로 시작해 등급별로 나누어진다.

최근 지난해 2학기 성적 사정을 한 뒤 내가 강의를 한 모 대학 학생들의 강의평가결과를 학교 웹사이트를 통해 조회해봤다. 이 대학에서 스포츠 PR론 강의를 2년간 했었는데 이번에 강의평가에서 눈길을 끌 만한 학생의 것이 하나 있었다. 좋았던 점이나 개선할 점을 묻는 소감 항목에 “이 강의는 저의 미래 직업 선택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라고 밝혔다. 통상 “교수님, 수고 많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유익했습니다” “너무 좋은 수업이었습니다” 등으로 평가가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진로와 관련해 언급을 했던 것이 이례적이었다. 얼마나 자신의 미래 목표와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을 주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이번 강의가 아마도 그 학생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강의를 통해 스포츠 현장에서 행해지는 PR의 이론과 실제적인 부분을 접하면서 스포츠 PR맨이라는 직업이 자신의 적성에 많은 부분 맞는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강의평가는 무기명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 학생이 어떤 학생인지는 알 수가 없다. 20여명 정도의 수강생 중에서 짐작이 가는 학생이 있기는 하지만 꼭 누구인지를 찾고 싶지도 않다. 다만 그 학생의 진지한 열정을 높이 사고 싶은 것이다. 학기 중 4번의 과제와 발표, 중간 및 기말고사 등 쉽지않은 과정이었지만 힘들어하지 않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중요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에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이 강의평가를 보고 학생들을 지도하는 선생의 입장에서 가장 바람직한 학생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생각을 해봤다. 그동안 강의를 하면서 많은 학생들을 봤다. 수업에 열심히 임하는 학생, 신세대답게 자신의 개성을 잘 드러내는 학생, 현재를 고민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학생 등 여러 유형들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과제물도 열심히 제출하고 시험도 잘 보는 학생이 좋은 성적을 받는다. 졸업 후 취업에서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각종 스펙 쌓기에 몰두하는 현재의 대학생 상황을 생각하면 일반적으로 성적 올리기에 주력하는 학생들의 모습도 어찌보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성적을 잘 받는 학생보다는 진지하게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이 가는 것은 학생으로서의 순수성이 중요하다고 느껴져서일 것이다. 바람직한 인생의 중요한 가치가 무엇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를 학생들은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나 스스로도 오래 전 학창시절을 되돌아 보면 여러 친구들이 있었다. 이러한 친구들 중 대학교수나 의사, 국회의원 등이 된 이도 있고, 기업체에서나 개인 사업으로 크게 성공한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의외로 자기의 실력을 지나치게 과신한 나머지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여러 그릇된 행동을 범하고 중요한 고비에서 낙마한 친구도 있었다. 이러한 차이가 생긴 것은 학생시절 자신의 인생에 대해 얼마만큼 진지하게 성찰했는가도 많이 작용했을 법하다. 학창시절에는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지만 성급하게 성과를 내는 데 급급하기보다는 미래의 그림을 자유분방하게 그려나갔던 이들이 의미있는 성공을 거두는 것을 보았다.

학생에게는 공부를 열심히, 잘 하는 것이 미래에 성공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공부에서 조금 앞서 나가는 것이 반드시 미래의 성공지표가 되지는 않는다. 내일을 위해 진지한 고민을 많이 하며 불투명한 앞날을 하나 하나 헤쳐 나가는 것이 좀 더 나은 삶의 방법이 아닐까 싶다. 아마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학생은 미래의 목적지를 향해 열정을 불사르는 지난 학기 만난 그런 학생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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