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의원 원장

 

고상한 엄마들이 있다. 그리고 고상하게 보이고자 하는 엄마들은 더 많다. 그런데 이와 같이 고상한 혹은 고상해지려는 엄마들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서 자존감 저하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서 우려가 된다.

예를 들어 놀이터에서 자전거를 타고 노는 아이에게 친구가 타고 싶어 한다고 무조건 양보하라고 하거나, 아이가 화가 나거나 짜증을 표현하려고 할 때 무조건 참으라고만 한다든지, 또는 더러운 것을 아이가 만지는 것이 싫어서 무조건 “더러우니 안 돼” 등의 말만 한다. 특히 남들에게 나는 어떤 엄마로 비춰질까라는 생각이 지배적인 경우에 더욱 그러하다. ‘무조건 양보하라’는 말은 남을 배려한다는 차원을 넘어서서 자신의 욕구나 바람을 포기하라는 의미다. 즉 자신만을 생각하는 자기중심성을 갖고 있는 유아 또는 아동기 때 서서히 다른 사람의 감정과 입장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이타심 또는 양보를 가르쳐야 하는데, 이러한 과정이 지나쳐서 무조건 양보하라는 것은 발달학적인 차원에서 아이의 수용 능력을 넘어서는 요구다. 따라서 아이는 엄마의 요구가 이해가 되지 않을 뿐더러 결국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라는 것으로 받아들이기에 ‘우리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결국 자신은 누구로부터도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생각으로 확대 발전되어 자아 존중감의 저하, 자기 비하, 부정적인 자기 인식 등의 심리적 결과를 초래한다. 양보를 강요받다 보면 결국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정당한 요구를 주장하기 어렵기에 자기주장 능력과 의사 표현 능력이 감퇴되고, 그 결과 원만한 대인관계를 이루지 못하여 사회적으로 회피 또는 철수된 채 살아갈 것이다.

‘참아라’는 말 역시 감정의 억압을 뜻한다. 화가 나서 물건을 던지거나 또는 남을 때리는 행동을 보일 때 참으라고 지시하는 것은 적절하다. 그러나 화가 나는 감정 자체를 참으라는 것은 어불성설이요, 아이에게 무리한 요구이며, 또한 바람직하지 않은 훈육이다. 감정 자체를 억압하라는 뜻은 앞으로 결코 분노, 불안, 우울, 좌절, 적개심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인식해서는 안 된다고도 말하는 것과 같다.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자연스럽고 적절하게 표현하지 못하게 되어서 끊임없이 계속적으로 억압하다가 나중에는 한계에 부딪히고 그 결과 더 극단적인 방법으로 표출되게 마련이다. 그것은 대개 공격성, 폭력, 자해, 심한 욕설, 극도의 감정적 흥분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마음대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자신감의 저하 및 위축을 보이다가 나중에는 결국 극단적인 자신의 부정적인 모습마저 경험하게 되어 자신을 세상에서 제일 못난 사람으로 여기게 된다.

“안 돼, 더러워!”라고만 말하는 엄마는 위생을 지나치게 강조하게 되어서 세상의 웬만한 사물들을 만지지조차 못하게 한다. 그 결과 아이는 탐색의 범위가 현저하게 좁혀지고, 세상을 온통 위험과 더러움이 가득한 곳으로 인식한다. 성격이 소극적으로 바뀌게 되고, 매사 엄마의 허락을 구한 다음에 행동을 하는 의존적인 아이로 변해 가며, 다른 사람들은 더럽고 나는 깨끗하므로 다른 사람들을 피하는 행동을 보일 수 있으며, 세상 곳곳이 더러우니 나는 가급적 외출이나 움직임을 줄여가는 사회적 은둔 또는 회피 현상이 초래될 수 있다. 자신을 연약한 존재로 여기게 되고, 겁이 많아지며, 자신감과 도전 의식은 현저하게 저하된다.

이제부터 엄마들은 자신의 고상함을 벗어 던지자! 아이가 아이답게 클 수 있도록 내버려 두자. 우선 아이의 욕구를 먼저 충족시킨 다음에 다른 사람의 욕구와 필요를 이해하고 인정하게끔 가르쳐 주자. 양보는 어른들도 실천하기 어려운 도덕적 덕목이므로 지나치게 강요하는 것은 일종의 억압이다. 또한 엄마는 아이에게 부정적 감정을 해소할 만한 방법들을 제시해 주자. 그림과 음악, 놀이 등은 매우 유용한 방법들이다. 마지막으로 아이가 더러운 것을 만지면, 나중에 씻게끔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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