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 둘레산길 가운데 ‘구봉정’에서 내려다 보이는 대전시에 새벽이 밝아오고 있다. (사진 제공: 대전 둘레산길 잇기)

‘봉황이 춤추는 산’… 보물 묻혀있다는 전설도 있어
“대전 둘레산 이어 오르면 내몸사랑 이웃사랑 싹터” 

대전 둘레산길 잇기 제1구간 보문산 길
[천지일보 대전=김지현 기자] 제주도에는 올레길이 있고 지리산, 북한산 등에는 둘레길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생긴 둘레길이 바로 대전의 ‘둘레산길’이라고 한다.

2004년 대전에서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시작된 ‘대전 둘레산길 잇기’가 올해로 8주년을 맞았다. 대전 둘레산길 잇기는 총 12개 구간 133㎞로 대전의 도심과 대청호, 계룡산으로 이어지는 한 폭의 산수화 같은 풍경을 접하는 길이다.

대전은 등산객이 수십만에 이를 만큼 등산이 생활화된 지역이다. 전국의 중심부에 있어 어떤 산이든 1박 2일 코스로 다녀올 수 있는 거리상의 장점이 있다. 대전은 등산동호회 수만 400여 개가 있으며 대부분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며 활동하고 있다.

대전 둘레산길 잇기 제1구간인 보문산 길은 ‘한밭도서관~시루봉~오도산~금동고개’로 이어진다. 대전 둘레산길 잇기 12구간 가운데 첫 구간인 보문산은 대전시민이 가장 많이 찾는 산이다.

시민 김선건(‘대전 둘레산길 잇기’ 카페 대표) 씨는 “보문산은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친숙한 산으로 많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으며 대전시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산”이라며 “시내에서 멀지 않으면서 그리 높지 않고 산자락의 품새가 넓어 접근로도 다양하다”고 자랑했다.

 

 

▲ 대전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보문산. (사진 제공: 대전 둘레산길 잇기, 아람 이주우)

김선건 대표는 대전 둘레산길 잇기와 관련해 시민들이 둘레산길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시에 여러 가지 내용을 정리해서 제안하고 카페나 오프라인 등산모임을 통해 꾸준히 활동해 왔다. 김 대표는 6년여 동안 삼백 리에 달하는 대전 둘레산길의 방향을 바꿔 6바퀴 이상 돌았다. 2004년 9월 보문산 시루봉에서 시작한 이 산행은 매월 셋째 주 일요일 9시, 회원들끼리 만나 1년에 12번씩 6년간 이어졌다.

1구간은 보문산의 남쪽 능선으로 정상인 시루봉에서 시작한다. 그는 “문화동 청년광장에서 이어지는 길은 가파르므로 고촉사에서 숨을 고르고 정상에 오르면 시내는 물론 겹겹이 펼쳐지는 산줄기 조망에 가슴이 탁 트인다”고 전했다.

또 “남쪽으로 방향을 잡아 오도산을 향하면 이사동에서 구완동을 넘어 다녔던 옛 고개를 만나고 산길은 호젓하게 이어진다. 남부순환도로가 지나는 구완터널을 지나 오똑한 오도산에 오르면 왼편으로 늠름한 식장산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며 “오도산에서 금동고개까지 오르락 내리락 숨을 고르다보면 소나무 세 그루가 있는 금동고개에 도착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민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대전의 산을 단편적으로 다녀 오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대전 둘레에 있는 산들을 이어서 걸어 보면 지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싹트게 된다고 덧붙였다.

둘레산길 잇기는 다양한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관련 공무원들도 함께하게 됐다는 점과 산길 잇기 대전 모델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 염홍철 대전시장(맨 앞줄 가운데)이 시 공무원, 시민들과 함께 대전 둘레산길 정비를 위해 답사하고 있다. (사진 제공: 대전시청)

보문산의 유래와 ‘봉문산’ 이야기
보문산공원관리사업소 이재만 씨는 보문산에 대해 대전에 있는 다른 산과 비교한다면 “식장산은 바위가 많고 계족산은 물이 적은데 비해 보문산은 등산객을 만족시키는 여러 가지 조건을 고루 갖추었다”고 설명했다.

보문산은 ‘보물이 묻혀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산이기도 하며, 이곳의 녹음(綠陰)은 대전팔경 중 하나로 선정됐다. 조선시대 동춘당 송준길 선생은 그의 문집에서 보문산을 ‘봉무산(鳳舞山)’으로 불렀는데 이는 “봉황이 춤을 추고 있는 산”이란 뜻이다.

산 정상인 시루봉에 오르면 주변 조망이 매우 좋아 날씨가 맑은 날에는 멀리 계룡산, 대둔산, 서대산, 속리산 등이 보이며, 보문정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산줄기가 겹겹이 멋지게 펼쳐져 있고, 북쪽을 바라보면 대전 시가지와 대전둘레의 산들이 한눈에 펼쳐져 있다.

1구간 코스는 고촉사를 거쳐 시루봉에 오르는 초입에 힘이 들지만 이후 오도산이나 금동고개까지 그리 힘들지 않고 여유롭게 산행을 할 수 있다.

 

 

 

 

▲ 대전의 중심, 보문산 정상부에 있는 백제 말기에 축성한 보문산(寶文山) 성(城). (사진 제공: 대전 둘레산길)

◆주변 대표적 문화재 ‘보문산성’
1구간 보문산 주변의 문화재로는 보문산성, 봉소루, 월송재, 보문사지, 보문산 마애여래좌상 등이 있고 명소는 대전 아쿠아 월드와 오월드, 한밭도서관, 대전시향토사료관 등이 있다. 그 가운데 ‘보문산성(寶文山城)’은 대전시 기념물 제10호이다.

보문산 정상 부분의 산세를 이용해 쌓았으며 성벽은 자연지형에 따라 간단하게 다듬은 네모난 돌을 이용해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했다. 발굴조사 결과 남문터가 확인됐고 현재 통행로로 사용되는 북문을 통해 고려시대에는 성문 폭을 좁혀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이 성은 백제 말에 신라와의 전투가 치열하던 때 만들어진 것으로 인근의 산성들과 쉽게 연락을 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山行… 암 극복한 시민 이야기
“2003년도만 해도 보문산에 등산길이 제대로 정비돼 있지 않았어요.” 당시 대전시청 직원이었던 이상진 씨는 스트레스성 대장암으로 고생하던 중 보문산 관리직을 자원했다. 이후 약 3년간 보문산을 오르고 내리며 13개의 등산로를 정비했다.

“구간마다 거리를 부분별로 측정하고 계곡과 산등성이를 구분해 정리했지요. 열심히 관리를 하던 중 자연 치유가 됐어요. 지금은 건강해져서 다시 시청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현재 대전시청 건설관리본부 시설부 시설정비과 계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아내와 함께 늘 등산을 하고 있어요. 하루 14시간씩 밥도 안 먹고 등산을 한 때도 있고 지리산부터 휴전선까지 1000㎞, 백두대간을 완주했어요. 하루 25㎞씩 20개월간 한 달에 두 번 다녀왔지요.” 그는 이제 건강 뿐 아니라 삶의 자신감까지도 회복했다고 한다.

“등산을 하면서 견문이 넓어져 자신감이 살아나고 어려울 때마다 동료끼리 서로 도우면서 동료애를 느끼고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그는 이같이 당시 상황을 회고한다.

그는 대전 둘레산길 잇기 첫 등정 때 청년광장에서 고촉사까지 500m를 오르는 동안 머리가 어지러워 금동고개까지 가는 10㎞ 구간을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고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너무 무리는 아닐지… ‘힘들면 중간에서 돌아오라’는 아내의 말이 주마등 스치듯 지나면서도 ‘여기서 포기하면 죽는다. 포기해 죽느니 최선을 다해 산에서 죽자’는 각오로 등정에 임했어요.”

그가 마침내 목표지점에 도착했을 때 그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당시 그 일이 바로 엊그제 같았는데 1년이란 시간이 지나 전 구간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완주를 할 수 있게 됐다.

그는 “자연은 우리 인간에게 항상 이로움을 주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면서 “산은 어머니 품처럼 포근해 산행(山行)을 하면 마음이 편안해져 산을 사랑하게 되고, 산행에 매진하다 보니 자연히 암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그는 “언제나 모든 이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활하면 자연히 암이나 마음의 병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 보문산 식물원에서 보는 겨울에 핀 꽃. ⓒ천지일보(뉴스천지)

 

 

▲ 대전 둘레산길 1구간 보문산 입구. 보문산 공원관리사업소 관리담당 이재만 씨가 1구간의 지도를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 보문산 중턱 등산로.ⓒ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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