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해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여러 사건 중 국민들을 분노의 도가니로 들끓게 한 일이 있었으니 바로 학교폭력에 의한 청소년들의 자살 사건이다.

잊을 만하면 수면 위로 부상하는 학교폭력과 집단따돌림 문제는 이제 심각의 수준을 넘어 경악과 씁쓸함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집단따돌림과 학교폭력의 대상이 점점 더 어려진다는 사실이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중학교 2학년 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많은 학교폭력이 행해진다고 하니 참으로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같은 학교, 같은 반 친구들에 의해 행해지는 인격모독과 물리적인 폭력의 행사는 어린아이가 행한 일이라고 보기에는 그 정도가 흡사 어른들의 폭력 세계와 닮아도 너무 닮아 있어 절로 혀를 끌끌 차게 만들었다. 그냥 싫어서라든지, 옷 입은 게 마음에 안 들어서라든지 집단따돌림과 폭력을 행사하는 이유도 참 가관이다. 더 큰 문제는 친구를 괴롭히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인지하지도 못하고 인정하지도 않는 대다수 가해 학생들의 정신상태다.

여기에 더해 학교폭력을 인지하고, 또 보고를 받고도 이를 무마하려는 학교와 일부 교사들이 학교폭력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보고도 못 본 척 무마하고 넘어가려는 학교 내 환경이 가해 학생들에게 일부 정당성을 부여한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할 것이다. 학교 이미지만을 생각하다 결국 그 이미지 관리 때문에 학교폭력의 온상지라는 명함을 받게 됐으니 세상만사 인과응보라는 말이 생각난다.

학교폭력 사태가 피해 학생들의 극단적인 선택으로 끝나고 그 폭력의 잔인성이 만천하에 공개된 지금 학교와 사회 나아가 정부 당국까지 학교폭력 근절에 대한 대책과 방안을 세우느라 여념이 없다. 허나 이런 와중에도 피해 학생에게 문제를 돌린다거나 가해 학생들을 두둔하는 일부 네티즌들의 모습을 보면서 학교폭력 문제는 당사자 간의 문제만이 아닌 사회 전반에 걸친 의식과 인식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학교 내 집단따돌림과 학교폭력의 실태가 잇따라 드러나고 있자 급기야 서울시교육청이 가해 학생들만을 별도로 모아 교육시키는 일명 ‘왕따 대안학교’ 설립을 추진키로 했다. 지속적으로 동료를 괴롭히는 학생은 대안학교로 전학시켜 별도의 교육을 시키는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교육당국은 왕따 폭력이 가장 심각한 중학교부터 대안학교 도입을 시행한 후 고등학교와 초등학교에도 순차적으로 도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가해 학생을 피해 학생과 물리적으로 분리시키는 방식으로 왕따 폭력 행위를 근본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허나 교육당국의 이와 같은 대책 마련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가해 학생들만 모아놓는 것이 과연 좋은 방책인지에 대한 의구심과 함께 훗날의 조직폭력배 양성소가 되지 않겠느냐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교육당국의 이러한 방책이 근본적인 문제해결 방안은 아닐 것이다.

누누이 나오고 있는 이야기지만 학교폭력의 근절은 아이들의 인성을 바로잡는 것부터 시작이 되어야 한다. 문제 학생들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식상할 정도로 나오는 말이 ‘가정교육이 중요하다’는 말일 것이다. 식상하기는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성악설(性惡說)이냐 성선설(性善說)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아기가 태어나고 자라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아이가 자라는 주변 환경이다. 작금의 현실을 보건데 학교폭력 당사자들의 문제는 부유하고 가난하고, 부모가 있고 없고의 차이도 아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아이의 인성이 바로 서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이 또한 그 성품을 닮아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 본다.

종교세계 또한 이와 마찬가지라고 본다. 현 정부 들어서면서 유독 깊어진 불교와 기독교 간 갈등과 잊을 만하면 언론의 도마 위에 올라오는 종교 간 문제 또한 종교 본연의 모습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면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본다.

종교인이라면 누구든 자신이 믿는 종교가 최고요, 진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속한 종교가 아니면 이단이 되고 가짜가 되기 십상이다. 함께 가는 이웃종교라고는 하지만 형식적인 것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 같은 생각이 마음 속 깊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종교가 소중한 만큼 다른 종교 또한 그렇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자신의 종교가 소중하고 귀하다면 자신이 믿는 종교가 가르치는 것이 무엇이며, 그 경전에 기록된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저 형식적인 신앙에 물들어 있기에 종교 간 마찰과 갈등이 생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유불선을 떠나 자신의 종교가, 경전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그 뜻과 의미를 제대로 알고자 힘쓴다면 진짜다, 가짜다, 정통이다 이단이다 싸울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종교의 가르침을 알고자 힘쓴다면 더 이상 반목과 갈등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요, 종교는 결국 하나임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우리 안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회문제도, 종교 간 문제도 각기 본연의 모습을 찾기에 힘쓴다면 자연스레 해결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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