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진 피해 대안학교로 온 어느 중학생의 고백

(청주=연합뉴스) "학교에 다시는 안 갔으면 좋겠어요. 날 괴롭히던 애들을 다시 만날텐데. 그 여덟명이 아예 다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어요"

충북의 한 대안학교에서 생활하는 상민(14ㆍ가명)이는 몇 달 전까지 다닌 학교만 생각하면 진저리를 친다.

얼굴이 뽀얗고 통통한 상민이는 지금 귀엽고 명랑해 보인다. 하지만 두달 전 이 학교에 들어올 때는 눈 밑이 시커멓고 말도 잘 하지 않는 내성적인 소년이었다.

기자가 `일진' 얘기를 꺼내자 상민이는 점퍼에 얼굴을 반쯤 묻은 채 눈길조차 주지 않으려 했다.

상민이가 `일진'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기 시작한 것은 3년 전인 초등학교 5학년 때다.

전학 온 학생이 학교 `일진'이 되면서 순진하고 어수룩해 보이는 상민이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 `일진'은 거의 매일 같이 때리고 돈을 빼앗았다. 점심 시간에는 맛있는 반찬을 다 빼앗아가고 학교 청소도 대신 하라고 했다.

그 `일진'과 같은 중학교에 진학한 작년부터 상민이는 학교 친구들이 모두 싫어졌다. `일진'의 괴롭힘이 갈수록 심해졌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잘 나가는 `일진' 8명이 상민이를 `인간 샌드백'이라고 부르며 수시로 주먹질을 했다. 심지어 초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들까지 `일진'들한테 붙어 상민이를 조롱하며 괴롭혔다.

"몇시까지 3천원 구해와라, 내일까지 2천원 가져와라 이렇게 시켰어요. 돈을 제때 안 가져가면 여자애들도 있는 교실에서 마구 때렸어요. 발로 차고 머리도 때리고 줄넘기 같은 걸로 때릴 때는 많이 아팠어요. 얼굴이나 목 같은 데를 골라 계속 때리기도 했어요"

`일진'들은 가느다란 나무를 뾰족하게 깎은 화살로 상민이를 쏘기도 했는데, 오른쪽 팔뚝에는 화살이 꽂히며 찢어진 상처 자국이 선명했다.

책상 위에 손을 쭉 펴게 한 뒤 커터칼로 손가락 사이를 마구 찍어대는 `고문' 수준의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다. 이 말을 할 때 상민이는 악몽이 되살아나는듯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게임을 잘하는 상민이는 `일진'들에게 동네 PC방으로 끌려다니며 인기 높은 게임 아이템을 빼앗기기도 했다.

담임교사에게 `일진'들의 악행을 알리고 도움을 호소해 봤지만 되레 더 심한 보복만 당했다.

`일진'들이 "장난으로 툭 친 것이지 때린 적 없어요"라고 거짓말을 하면 선생님은 더 문제삼지 않았다. 그러고 나면 `일진'들은 상민이가 고자질을 했다며 더 심하게 때렸다.

대안학교에서 치유 프로그램을 마치면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 요즘 걱정이 태산이다.

얼마 전 주말에 누나와 함께 외출했다가 거리에서 만난 `일진'들에게 심한 욕설을 들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날은 누나 남자친구가 있어 해코지를 당하지 않았지만 혼자 학교에 가면 다시 `인간샌드백'이 될 것이 뻔하다.

`일진'들의 끊임없는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50일 동안 결석하고 대안학교에 들어온 상민이는 "학교에 친한 애들만 있었으면 좋겠어요. 보기 싫은 애들이 모두 없어졌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며 고개를 떨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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