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송범석 기자] 이영수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이다. 그의 시집에는 파괴와 전복을 내달리는 초현실주의적 색채가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이러한 심상의 이미지는 환몽(幻夢)으로 그치지 않고 실재보다 더 실재적인 경험을 생산해 낸다. 시인은 표제작 ‘깊어지는 건물’을 통해서 일반적인 인식을 넘어선 피안에 다다른다.

이 시는 ‘요즘은 건물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게 깊어지는 것을 숭배하도록 건설된다’고 하는데, 문학평론가 이성혁에 따르면 이러한 인식은 이상이 예전에 선취한 것에서도 나타난다. 시적 화자는 더 나아가 모든 것이 인공적이고 시뮬레이션이 된 세계에서 숨이 턱턱 막혀오는 ‘공포’를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 깊어지는 건물

요즘은 건물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게 깊어지는 것을 숭배하도록 건설된다
깊어진 건물의 벽면에
고흐의 불타는 측백나무를 심거나
전자유목의 시대가 도래한 이상 뛰어 본들
우리의 길들은 단추 하나로 미끄러지거나 멈춘다
들판의 소들은 이미 포장되어 냉동 보관될 뿐
질리도록 많음이 공포를 수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건물을 떠나지 못한다

오늘도 우후죽순처럼 솟는 대형유리의 방주를 보며
사각지대란 존재하지 않는 것
내부에 다시 볼록거울을 내장하거나
비상구를 통해 지하의 사각 무덤 자리에 누워도
꿈자리는 편해지지 않는다
소라껍질 같은 무덤의 입구를 지나 나와도
달은 보이지 않은 것 우리들은 달을 잊었거나
사방에서 보아도 달이 보이지 않게 설계된
거룩하게 깊어지는 건물을 숭배하게 된 까닭이다

이수영 시집 / 문학의전당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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