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눈 없는 나라, 중미 카리브해의 자메이카 봅슬레이 선수들이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내용을 소재로 한 영화 ‘쿨러닝(Cool Running)’은 지난 1994년 국내에 상영돼 큰 흥행을 거두었다.

영화의 제목이자 경주용 썰매의 이름인 ‘쿨러닝’은 ‘안전한 여행길 되세요’라는 뜻의 자메이카 영어이다. 영화는 1988년 서울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육상 국가대표 선발전을 치르던 중, 선수의 발에 걸려 넘어져 탈락한 단거리 선수들이 엉뚱하게도 동계종목인 봅슬레이팀을 구성해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실제 이야기로 만들었다. 동계올림픽에서 고물썰매 ‘쿨러닝’호는 장치적 결함으로 뒤집히는 사고가 발생하지만 선수들이 완주를 위해 썰매를 어깨에 둘러메고 결승선을 통과해 가슴 벅찬 감동을 주었다.

‘쿨러닝’ 스토리는 영화로만 끝나지 않았다. 자메이카 봅슬레이팀은 계속해서 세계무대에 도전해 거푸 실패를 맛보았다가 12년 후인 2000년 모나코 몬테카를로에서 열린 세계 봅슬레이 챔피언십에서 마침내 금메달을 따냈다. 영화 속의 이야기가 현실에서 화려한 결실을 맺었던 것이다. 세계서 가장 ‘빠른 사나이’ 우사인 볼트로 널리 알려진 자메이카가 눈 하나도 없는 열대자연환경의 불리함을 딛고 봅슬레이에서 세계 정상에 올랐던 것은 세계 스포츠 사상 최대 기적의 하나로 평가됐다. 하고자 한다면 어떠한 어려움도 의지로 극복할 수 있다는 교훈을 주었다.

한국여자 봅슬레이가 불모지에서 금메달의 옥토를 일궈내기 위해 영화 ‘쿨러닝’과 같은 도전에 나선 것은 아주 주목할 만한 일이다. 지난 10일 한국체대 운동장에서 영하의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서울 봅슬레이스켈레톤 연맹 주관으로 열린 국내 첫 봅슬레이 선발전은 차가운 냉기를 충분히 녹일 만큼 선수들의 열기로 가득했다. 참가 선수들은 육상, 역도, 탁구 등 다양한 종목 경험을 가지고 있었고 나이는 10대부터 30대까지 다양했다. 심지어는 애 엄마까지 있었다. 선수들은 ‘쿨러닝’의 선수들이 처음에 그랬듯이 봅슬레이에 대한 세부적인 경기정보를 갖고 있지도 않았다. 다만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국으로서 사상 처음으로 봅슬레이 메달 획득의 주역이 되고 싶은 마음 하나로 태극마크를 위한 선발전에 출전했던 것이었다.

이날 선발전 종목은 정작 봅슬레이 종목과는 직접 관계가 없는 기본 체력을 테스트하는 것들이었다. 순발력을 측정하는 50m 달리기, 근력을 평가하는 제자리멀리뛰기와 6kg 공던지기 등이었다. 아직 썰매를 끄는 기술보다는 기본기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선수들은 대체적으로 순발력, 근력 등이 좋았고 성장 잠재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연맹은 여자팀 선수로 봅슬레이 2인승 2팀과 스켈레톤 2명 등 총 6명을 뽑아 17일 평창 동계올림픽 장소인 알펜시아의 스타트 훈련장에서 본격적인 훈련을 실시할 예정이다. 이번 선발전을 주관한 강광배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 연맹 부회장은 “아직은 시작단계이지만 우리 선수들을 체계적으로 잘 훈련시키면 봅슬레이는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피겨에 이어서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는 종목이다”며 “영화 ‘쿨러닝’도 그랬듯이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를 얼마나 잘하느냐가 종목 성공의 관건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목표로 선수들을 집중 관리해 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번 선발전은 한국의 봅슬레이 선수 1세대로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서 혈혈단신으로 유학, 국제연맹 부회장에까지 오르며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숨은 공을 세운 강광배 부회장과 동계 스포츠의 산실인 한체대 김종욱 총장의 지원과 배려에 힘입어 성사될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한국의 경제와 스포츠의 성공을 ‘시작은 미미하지만 끝은 창대하리라’는 성경의 구절에 많이들 비유한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일제로부터 해방을 맞이한 이후 반세기 만에 무역 1조 달러로 세계 9위에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난관과 위기를 잘 극복하는 한국인들의 강한 정신력을 잘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스포츠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강한 민족의 기상을 떨쳤다. 양궁, 쇼트트랙 등 서양 국가들의 종목인 양궁,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피겨 등도 뒤늦게 시작했지만 세계 정상에 올라설 수 있었다. 이제 시작단계이지만 여자 봅슬레이도 현재의 어려움을 딛고 실력을 꾸준히 연마해나간다면 언젠가는 불모지의 이름을 던져 버리고 세계 챔피언에 서는 날이 있을 것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