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일제가 강탈해 간 조선왕실의궤 등 우리 도서 1200책이 대한항공편으로 일본 나리타공항을 떠나 인천공항에 도착,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이송 보관됐다.

이번 조선왕실의궤 반환을 통해 우리의 역사인식에 대해 깊은 고찰이 다시 한번 요구되고 있다.
여기서 잠시 과거의 우리 교육정책을 한번 살펴보자. 교육과정에서 우리의 뿌리와 살아온 역사를 배우는 한국사는 불행히도 필수가 아닌 선택과목이었다. 그나마 일부 지식인들과 언론의 끈질긴 노력으로 지난 4월 교육과학기술부는 2012년부터 고교 한국사가 선택이 아닌 필수과목으로 채택된다고 발표했다. 물론 대학입시엔 여전히 필수가 아닌 선택과목으로 남아있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말이다.

자기 나라의 역사를 필수가 아닌 선택과목으로 하는 나라는 대한민국 말고는 그 어디에도 없다. 역사는 뿌리다. 자기 나라 역사와 그 정신을 더해 민족성을 회복해야만 한다.
알고 보면 우리의 역사뿐 아니라 인류역사에 대한 진실 또한 만신창이가 돼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러한 때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우리 민족의 뿌리를 캐고 지켜온 조선상고사학회(朝鮮上古史學會) 고(故) 이중재 선생이 있어서였다. 그는 거짓과 왜곡, 단절과 굴절, 그리고 날조된 오욕의 역사를 다시 매듭짓기 위해 모진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한민족의 뿌리를 찾아 그 근간을 세웠으니 곧 한국사를 넘어 인류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놨다.

이제 그 터 위에 우리 한민족의 역사는 물론 인류 세계사를 재정립해 나가야 할 책임은 살아남아 있는 우리의 절대적 몫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선 민간(民間)의 연구로 어렵게 이어왔던 이 학회를 정부 차원의 공식기관으로 자리매김해 학계는 물론 정계 재계가 힘을 모아 잘라지고 묻혀왔던 한민족사를 넘어 인류사를 찾고 회복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제기되고 있다.

세종대왕은 백성들의 눈을 띄우기 위해 한글 창제를 결심한 후 집현전을 세워 학자들과 고군분투했으며, 심지어 세종의 뒤에는 늘 죽음의 그림자가 따라붙었으나 백성사랑의 마음을 당할 수는 없었다. 이같이 이 시대의 지도자 또한 거짓의 역사를 청산하고 새로운 역사 아니 잃었던 역사를 다시 찾아 세우는 회복의 역사를 더 이상 늦추지 말아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한 ‘지도자의 시대를 읽는 고귀한 결단’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물론 지나친 국수주의는 경계돼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역사의식과 인식이 절대적으로 선행돼야 하겠지만 말이다.

1776년 청나라 건융이 40년간 60명의 학자를 동원해 약 7000권의 사서를 날조 왜곡시켜 고구려와 백제를 동
쪽 변방의 작은 나라로 만들어 속국화했으며, 또한 일본은 1905년 을사늑약이란 미명하에 한민족 역사를 송두리째 날조해 나갔음을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뿐인가. 현존하는 자국의 국경 안에서 일어난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연구인 동북공정(東北工程), 그러한 국가 정책의 일환으로 고구려가 중국 변방의 속국임을 주장하고 있으며, 일본의 계획적 역사왜곡 또한 우리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러한 결과로 인해 한민족사는 갈기갈기 찢어지고 할퀴어져 내려왔다. 슬픈 것은 고조선(古朝鮮)의 광활했던 대륙의 역사를 한반도의 작은 역사로 몸소 기록했던 학자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또 그 학설의 영향을 받으며 시작된 식민사관의 후예들, 그러한 사대 및 식민사관에 종속되어 오늘까지 내려오는 식민사관학자들에게야말로 시대적 결단과 민족적 충정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진실과 진리 앞에 겸허해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럴 때 왠지 중세(中世) 천동설이 지배할 때의 일화가 생각난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법정에서 강압에 못 이겨 천동설을 부정하지 못했지만 법정을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한 그 일화 말이다.
오늘날도 엄연한 진실과 사실 그리고 육하원칙에 입각한 논리적이고 살아 있는 역사인 상고사(上古史) 앞에 진실을 고백하는 학자를 기대할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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