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민주주의 정치는 소통의 정치다. 소통이 민주주의를 지탱해준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소통은 꽉 막혔다. 그러다 보니 물리적인 충돌이 벌어지고 시민의 휴식 공간으로 만들어 놓은 시청 앞 광장과 광화문 광장은 시위대의 싸움터로 변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인 FTA를 반대하는 시위가 연일 벌어져 교통은 짜증나게 막히고 주변 상인들은 장사가 안된다고 아우성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위는 벌어지고 시위대와 이를 막는 경찰과의 승강이는 그치지를 않는다.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도 힘들겠지만 내 자식이나 손자 같은 전경 아이들이 추위에 떨며 힘들게 이들과 맞붙어 대치하는 모습이 안쓰럽기 짝이 없다.

희한한 것은 국회에 있어야 할 국회의원들이 시민단체나 일반 자연인들처럼 시위에 참가하고 있는 일이다. 그들이 있어 시위대들은 힘을 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런 곳에 얼굴을 내미는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 기회로 시위를 이용하는 것 같다.

똑똑한 국회의원들이 시위에 가담할 때 전혀 순수한 뜻이 없다고 단언하는 것은 실례이지만 시위에 참여함으로써 그들이 다음 선거에 유권자의 지지를 더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타산하는 것은 맞을 것이다. 하여튼 시위대들에 자신들의 존재감을 알리는 효과는 클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는 것 같다. 시위대도 우리 국민인 것은 사실이지만 국회의원들이 시위대에 뒤섞이면서 일반 국민 전체와 함께하고 있다는 허위의식에 젖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시위대는 시위대다. 다 같은 국민이지만 그 시위에 반대하고 시위에 참가하지 않는 국민들이 더 많기에 그들은 시위대다. 국회의원들도 시위대에 섞이면 그 시위대의 일원이다.

우리가 과거에 경험한 것처럼 시위가 독재나 권력의 폭거에 항거하는 것이어서 국민 절대다수의 공감과 호응을 얻는 것이라면 그런 시위에 나서는 사람을 그냥 ‘형용사’가 안 붙는 시위대라고 가치중립적으로만 부르기는 너무 아깝다. ‘시위대’라고 사실적으로 부를 수도 있을 것이지만 그런 시위대를 국민들은 단순히 시위대라고 부르는 것을 주저한다. 그것은 ‘의거’ ‘항쟁’ ‘봉기’라는 가치가 부여돼 영웅시되기 때문이다.

FTA에 반대하는 시위를 의거나 항쟁, 봉기라고 부르지는 않을 것이다. 시위대원들 중에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열혈 대원들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시위에 나선 뜻을 침소봉대하는 것이 될 것이다. 자기의 주장을 침소봉대하면 소통은 없다. 그렇게 해서 자기주장만 일방적으로 관철하려고 하면 폭력과 같은 물리적 충돌로밖에는 귀결될 것이 없는 것이다. 국회의 소통은 상대방의 의견이 옳거나 맞다고 인정해서 수용하거나, 타협을 하거나 아니면 서로 의견이 다름을 확인하고 말거나 해야 평화롭고 원활하다. 어떤 식으로든 끝장을 내야 할 것 같으면 가장 최선의 방법은 아닐지라도 다수결의 방식에 의존하면 된다.

그렇지 않으면 싸움은 그칠 날이 없을 것이다. 국회에서 자기 의사와 다르게 법안을 통과시키려 한다 해서 최루탄을 터뜨리는 몬도가네식의 기괴한 행위들이 계속될 것이다. 최루탄 사건에 비하면 약과지만 길거리로 뛰쳐나가 시위하는 국회의원들이 계속 생겨날 것이다. 민주정치는 소통의 정치이고 그 소통이 민주주의를 지탱해주는 것인데 가장 민주적이고 헌법적 가치에 충실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소통을 이루어내지 못한다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크나큰 위기에 처한 것이 된다.

국회의원들이 소통을 못 하고 합의를 이루어내지 못하고 싸움이나 하니까 그것을 본받아 사회 전체가 갈등으로 들끓고 자기주장이 관철되지 않는다고 우격다짐이 나오고 폭력사태가 확산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시위에 나서는 국회의원들은 착각하지 말고 소통을 못 하고 국회에서 뛰쳐나와 시위대원이 된 것을 부끄러워해야 옳다. 시위대원들은 그들을 열광적으로 환영할지 모르나 시위에 참가하지 않은 더 많은 국민들은 자신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헤아려야 봐야 할 것이다. 그렇게 역지사지(易地思之)할 수 있어야 소통을 시작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FTA 법안이 통과된 마당에 원천무효를 주장하는 극렬한 시위만이 능사는 될 수 없다. 자유무역협정으로 피해 보는 부문이 있는 것은 분명하므로 그 피해를 줄이거나 가능하면 막는 대책을 숙의하고 만들어나가야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협정 자체를 무효화하자고 하면 말이 안 된다. 그것을 을사늑약이라고 하면 과한 선동이다. 시위에 참가한 국회의원을 포함한 모든 국회의원들과 정부 그리고 피해를 호소하는 부문의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숙의하고 만들어내야 한다.

올해로 우리의 무역고가 1조 달러를 돌파했다. 1964년 1억 달러를 돌파한 지 50년 만의 위업이다. 우리는 무역으로 사는 나라다. 무역으로 번 돈이 고루고루 국민에게 혜택이 안 가는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무역을 포기하자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경제의 그늘을 지우는 일은 절박해졌지만 그것도 총량적인 경제의 성과가 줄어들어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1조 달러에 만족할 수는 없으며 부단히 더 규모를 키워나가야 한다. 그 밑거름이 FTA다.

무역은 주고받으면서 이익을 취한 국제간의 거래다. 우리가 유리한 것도 있고 불리한 것도 있다. 불리한 것은 우리에게 극복을 요구하는 ‘도전’일 것이다. 이 같은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머리를 모아 대책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며 그 같은 대책을 만들어 시행해가면서 경쟁력을 키워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피해 부문의 아픔을 헤아리고 소통하고 그 같은 도전을 이겨내고 도리어 국제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지 시위대의 주장을 제풀에 지치도록 내버려 두어서도 안 될 것이다.

세계의 관심이 새로운 시장과 기회를 찾아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집중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태평양의 패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미국과 강대국으로 굴기해 이를 밀어내려는 중국의 기 싸움으로 태평양의 기상도가 어지럽다. 그것이 우리와 결코 무관한 일이 아닐진대 더욱 무역 규모도 늘리고 문을 더욱 활짝 열어 세계로 나아가고 소통해야 하며 그런 가운데 아시아 태평양은 물론 세계에서 당당한 나라로 자리매김해야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지금처럼 국회의원들이 뭔가를 반대하는 한 편에 가담해 시청 앞이나 광화문의 시민의 휴식 공간을 시위대와 함께 어울려 휘저어서야 어떻게 미래의 희망을 말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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