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릉 사투리로 번역돼 출판된 이탈리아 동화 ‘눈 오는 날’. 이순원 소설가가 사투리 감수를 맡았다. (제공: 도서출판 북극곰)

이탈리아 동화 ‘눈오는 날’
구수한 강릉말로 감성 더해

[천지일보=김지윤 기자] 지난달 구수한 강릉말로 읽는 동화책 ‘눈오는 날(도서출판 북극곰)’이 출간됐다. 이탈리아 동화작가 엠마누엘레 베르토시가 지은 동화를 한국어 표준어로 번역한 후 이순원(54) 소설가가 다시 강릉말로 구성한 것. 게다가 출판사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이 작가가 강릉말로 직접 참여한 오디오북을 들을 수 있다. 투박하고 독특한 리듬감 때문에
웃음이 터지고 감동이 더 찾아온다.

그는 ‘강릉 사투리’보다 ‘강릉말’이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자신의 작품 ‘첫사랑’에 방언에 대한 생각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 말 말고는 그 의미와 분위기를 정확하게 표현해낼 말이 없는데도 그게 사투리야? 제대로 만들어지지도 않은 사전에 없으면다?”
<소설 ‘첫사랑’ 中>

‘강릉말’만 표현할 경우 독자들이 의미를 모르지 않겠느냐는 소설 속 출판사 관계자의 걱정에 주인공은 “아는 독자들도 있지. 그리고 독자들이 모른다고 의미까지 다르게 쓸 수는 없는 일이고” 하고 답한다. 그에게 있어서 방언은 표현의 언어다.

 

▲ 이순원 소설가

―동화책 ‘눈오는 날(장서리 내린 날)’을 ‘강릉말’로 번역했다. 계기가 무엇인가.

원작이 이탈리아 표준말과 북부 사투리 두 언어로 쓰여 있었다. 눈이 내리는 날 밤의 이야기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번역을 할 때에도 원작의 사투리 느낌을 살려 ‘서울말과 우리나라에서 눈이 가장 많이 오는 강릉지역의 말로 번역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출판사에서 밝혀왔다. 강릉말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흔쾌히 동조했다.

―오디오도 직접 녹음했다. 녹음할 때 어색하지 않았나.

스무 살 넘어서는 고향을 떠나 있었지만, 글을 쓰는 사람으로 가능한 고향말(탯말)을 잊지 않으려 나름대로 노력하며 살고 있다. 서울에 와서 사는 강릉 사람 가운데 나만큼 고향말을 어휘와 억양을 그대로 쓰는 사람을 보지 못한 거 같다. 어느 자리에서나 자연스럽게 또 자랑스럽게 고향말을 쓴다.

―일반인들은 강릉말을 재밌는 방언으로만 생각하고 있다.

‘웰컴 투 동막골’ 같은 영화에서 보면 확실히 그렇다(재밌다). 그건 어느 사투리나 사실 마찬가지다. 지금도 똑같은 말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사투리로 바꿔 서로 비교해보는 우스갯소리도 있지 않은가. 특히 강릉말은 억양이 독특해서 따라 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재미있어 하는 거 같다.

강릉말의 매력은 무엇인가.

강릉말은 억양이 독특해서 따라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강릉말에는 중국말과 비슷한 사성이 있다. 그래서 외지 사람들이 강릉말과 발음이 비슷한 경상도 말은 따라해도 강릉말은 따라하지 못하는 것이다.

 

▲ 동화 ‘눈 오는 날’의 내용 中 (제공: 도서출판 북극곰)

―잦은 이동 및 대중매체 발달로 사투리색이 옅어지고 표준어화되고 있다. 이를 어떻게 생각하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강릉지역 어린이도 이젠 강릉말을 잘 쓰지 않는다. 이유는 예전에는 어른들로부터 말을 배웠지만 지금은 텔레비전을 통해, 또 학교에 들어가서는 책을 통해 말과 글을 배우기 때문이다.

―작품 속에서 강릉말을 활용하나.

다음은 ‘첫사랑’이라는 내 소설의 한 부분이다. 소설가로서 강릉말에 대한 내 생각을 반영했다.
 

 

원고를 쓰며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사투리’라는 말이었다. 어떻게 서울말은 다 표준말이고 지방말은 다 잘못된 사투리란 말인가. 아무리 의미 전달이 목적이라지만 같은 사투리도 서울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으면 괜찮고, 서울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면 안 된다는 법은 또 무엇인가.
‘굴암 한 남박 삶아서’와 ‘도토리를 한 그릇 삶아서’가 어떻게 같은 뜻인가? 같은 물건이더라도 ‘굴암’은 굴암이고 ‘도토리’는 도토리인 것이다. ‘굴암’은 우리 어린날 가난한 집의 한 끼 점심 양식이고, 도토리는 아이들이 부르는 동요 그대로 다람쥐가 소풍을 갈 때 싸가지고 가는 점심이거나 때로는 도토리묵을 해 먹는 별식의 원료인 것이다.
<소설 ‘첫사랑’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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