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 진술 "엄마는 외교관 되라 주입"

(서울=연합뉴스) "가족이 좀 더 챙겨줬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고 담임선생님이 말하는데 가슴이 무너졌어요."
어린 조카가 포승줄에 묶인 모습을 본 고모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우등생 모친 살해사건을 수사하는 서울 광진경찰서는 25일 오후 어머니 B(51)씨를 살해하고 8개월간 방치한 혐의(존속살해 및 사체유기)로 구속된 고교 3학년생 A(18)군을 데려와 현장검증을 했다.

푸른색 외투를 입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사건 현장에 온 A군은 자신이 살던 다세대주택 2층 집에 올라가 범행을 재연했다.

아버지를 제외한 가족·친척과 취재진의 현장 출입이 금지된 상태에서 A군은 지난 3월13일 침대에서 자고 있던 어머니를 살해한 장면을 되풀이했다.

경찰 관계자는 "범행 순서를 하나도 잊지 않고 흔들림 없이 담담하게 검증을 했다. 감정적 동요는 보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경찰에 따르면 A군은 어머니를 살해하고 한 달쯤 지나 시신이 부패해 악취가 나자 집에 있던 글루건을 이용, 공업용 본드로 안방 문틈을 메우는 상황까지 40여 분에 걸쳐 당시 행동을 따라 했다.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어머니에게 혼날 것이 두려워 위조했다는 성적표 등 증거물을 확보했으며, 범행 전날 어머니에게서 골프채로 맞았다는 A군 진술에 따라 당시 입었던 바지를 분석해본 결과 A군의 혈흔을 발견했다.

5년 전부터 A군 어머니와 별거했던 아버지는 이날 경찰조사를 받고 나와 "엄마는 외국어를 잘하는 아들에게 외교관이 되라고 주입했지만 아이는 영어선생님이 되고 싶어했다. 애 엄마는 극단적이긴 했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다. 내 잘못이 크다"고 말했다.

현장검증에 동행한 고모 C씨는 "조카가 '엄마한테는 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 같은데, 그런 와중에 이틀을 굶기고 잠을 안재우니 '엄마가 없어야 내가 산다'고 순간적으로 비정상적인 생각을 한 것 같다"며 고개를 저었다.

C씨는 "엄마가 이혼소송을 하면서 심리적 불안감이 더해져 아들에 대한 집착이 심해졌던 것 같다. 조카에게 엄마는 거역할 수 없는 존재였다"며 "교육열이 강한 줄만 알았지 그렇게 극단적으로 애를 학대할 줄 몰랐다"고 말했다.

이어 "수능을 본 것도 뻔뻔해서 그런 게 아니다. 수능을 며칠 앞두고 학교에서 '수험표를 안 받아갔다'며 아버지한테 전화가 왔다고 한다. 아버지가 다그치니 어쩔 수 없이 시험을 치러 간 것"이라며 A군을 감쌌다.

이날 A군은 큰아버지와의 면회에서 "내가 혼자라고 생각해 아무에게도 힘든 것을 말할 수 없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오후 광진경찰서에는 존속살인미수죄를 저지른 적이 있다는 시민이 찾아와 "패륜아로 몰려 사회적으로 매장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취지의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경찰은 어머니 B씨 시신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보내 부검을 의뢰했으며, 오는 28일 프로파일러를 불러 A군의 심리상태를 분석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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