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1941년 12월 7일 일요일이었다. 이날 아침 하와이 오아후 섬 진주만(Pearl Harbor)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날씨는 쾌청해 구름 한 점이 없었다. 하지만 고요한 일요일 아침의 평화는 곧 지옥으로 변한다. 어디선가 까마귀 떼처럼 새까맣게 몰려온 전폭기들의 폭격이 시작된 것이다. 그 비행기들은 더 말할 것 없이 일본 연합함대의 항모에서 발진한 일본군 전폭기들이었다. 선전 포고 없는 기습이었다. 이날의 기습을 위해 일본 연합함대는 11월 26일 일본을 출발해 5천 마일 이상의 거친 태평양을 12일이나 항해해왔다. 전폭기들은 진주만 북쪽 200마일 해상에 다다랐을 때 항모에서 날아올랐다.

미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 피해는 실로 막심했다. 미국은 일본이 자신들을 상대로 전쟁을 준비한다는 정보는 입수해 알고 있었으나 설마 그것이 진주만의 기습으로 시작될 줄은 몰랐다. 필리핀 정도라면 모를까 그 먼 망망대해를 건너올 것으로는 예상하지 못했다. 이날의 진주만 폭격으로 12척의 미 해군 함선이 침몰되거나 피해를 입었고 188대의 비행기가 격추되거나 손상을 입었으며 2403명의 미군 사상자와 68명의 민간인 사망자가 나왔다. 맑은 날씨는 공중 폭격에 최상의 조건을 제공했다. 조종사 육안으로 목표물을 식별해야 했던 시절이었으므로 구름 한 점 없는 이런 날씨는 폭격의 전과를 올리기에 그만이었다. 날씨가 일본을 도와주었다.

그날만은 일본이 악마의 미소일망정 회심의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날의 기습도발은 잠자는 사자를 건드린 무모하고 섣부른 짓이었다. 미국은 곧바로 일본을 향해 선전 포고를 하게 되고 드넓고 평화롭던 태평양은 전화(戰禍)의 불바다로 변해간다.

미국은 진주만 기습으로 당한 피해를 불과 6개월에서 1년 사이의 짧은 기간에 원상 복구하는 무서운 저력을 발휘한다. 진주만의 기습은 미국에게 일본이 기대한 것과 같은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다. 더구나 3척의 항공모함과 유류 비축기지, 병기창은 피습 현장에서 벗어나 있었으므로 아무런 피해 없이 보존할 수 있었다. 그것이 일격을 당한 미국에게 큰 힘이 돼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은 강해지고 일본의 전쟁지속능력은 고갈돼갔다. 메이지(明治) 유신 이래 힘을 키워온 일본의 전성 시기는 진주만을 기습하던 바로 그 순간으로 끝이었다. 마침내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 리틀 보이, 9일 나가사키에 팻맨이 떨어져 일본은 참담한 굴욕과 패망을 맛보았다. 이렇게 해서 태평양 패권 전쟁의 승자는 미국이 됐으며 오늘날까지도 다소 흔들리긴 하지만 그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일제는 이렇게 그 시기 모든 전쟁을 기습으로 시작했다. 대한제국을 병탄하려는 야망에서 저지른 1984년의 청일전쟁, 1904~1905년의 러일 전쟁도 일본의 기습 선제공격으로 벌어졌었다. 급기야는 일제의 과도한 팽창야욕에 제동을 거는 미국에 맞서려 했던 것이 그들의 패망의 씨앗이 됐던 진주만 기습공격이었다. 그 전쟁 말기에는 미국도 지쳐 소련의 참전을 요청한 것이 한반도가 분할되는 비극을 불렀다. 소련의 스탈린은 일본에 미국의 원자폭탄이 떨어져 일본의 패망이 확실해진 뒤에야 약삭빠르게 대일 선전 포고를 하고 전쟁에 끼어들었다. 그들은 그 보상으로 일본이 항복한 뒤에 38도선 이북에 붉은 군대를 전광석화처럼 진격시켰다. 그것은 강대국끼리의 흥정에 따른 것이었다.

미국은 숨 고를 틈도 없었다. 히틀러의 독일과 맞선 유럽전쟁과 일제와의 태평양전쟁에 이어 1950년 한국전쟁에 직면한다. 그들은 지쳐 있었지만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은 미국이 태평양 세력으로서의 존재감을 확실히 과시한 큰 전쟁들이었다. 동시에 열강의 이해관계가 교차하고 충돌하는 요충지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시아를 포함하는 태평양 지역에서 결코 패권을 놓치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었다. 그런 과정에서 일본 메이지 유신 이후 일제 식민지 시대를 거쳐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하는 주인이 아니었다. 그것이 약소국의 비애라는 것 아닌가. 그 뼈저린 과거를 어찌 잊을 수 있는가.

태평양에 새삼 격랑(激浪)이 일 조짐이다. 격랑의 발원(發源)은 두 마리의 고래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다. 중국은 경제 총량 면에서 미국에 이어 세계 G2로 부상했다. 뿐만 아니라 무서운 속도로 미국을 추격하고 있다. 그 힘을 바탕으로 공공연하게 미국을 견제한다.

중국은 아시아 멀리 미국을 밀어내려 하고 미국은 밀리지 않으려 한다. 밀리기는커녕 오히려 미국은 경제적 활로를 찾아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더욱 다가서 중심 세력이 되려 한다. 유럽의 경제가 무너져가는 상황에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은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는 기회의 땅이다.

미국은 ‘장기적인 경제적 미래를 여는데 어떤 지역도 아시아보다 더 중요하지 않다’고 공언하고 있다. 예전처럼 자원과 부(富)를 수탈할 식민지가 없는 전통적인 유럽의 강국들도 아시아 시장에서 벌어가야 먹고 산다. 세계 10대 경제 강국인 한국도 세계가 주목하는 아시아 시장의 중심 국가다. 한국도 그들에게 기회의 땅일 테지만 그렇기 때문에 한국은 우리에게 손을 내미는 넓은 세계가 다 기회의 땅이다. 북한이 말해주는 바와 같이 경제적 쇄국(鎖國)으로는 그 같은 기회를 향유할 수 없다. 이런 이치나 알고서 FTA(자유무역협정)를 반대하는지 궁금하다. 경제적 쇄국으로 더욱 부강한 나라를 지향해 갈 수 있겠는가.

중국의 세력 팽창은 그 물리적인 힘과 목소리가 크고 거칠어진 레토릭(Rhetoric)으로 여실히 나타나 주변국들에게 위협으로 느껴진 지 오래다. 소련은 물론이고 일본 필리핀 베트남 호주 인도네시아 인도 등의 나라들의 경계심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은 그 같은 아시아 국가들의 대 중국 정서를 십분 활용한다. 중국은 과거 일본이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 미국과의 태평양 전쟁을 위해 그러했듯이 군사력 증강과 첨단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더 이상은 미국의 가공할 무력의 항모 전단도 편안하게 중국 대륙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 국가들과의 안보 협력과 중국 포위망을 견고하게 구축해나가는 한편 감시와 정찰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결국 이 두 세력의 갈등이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전개될 것인지에 대해 뭐라고 장담은 할 수 없지만 결코 남의 일이 아닐 것만은 분명하다. 한국의 미래와 무관할 수가 없다. 따라서 태평양의 격랑의 파고를 생존의 본능과 감각으로 유심히 지켜봐야 한다. 그 같은 관점에서 정치 엘리트들의 몰아(沒我)적인 분열과 대립을 심히 걱정하게 된다. 어쩌면 대한제국의 말기나 해방공간과도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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