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한 일몰

김기석(1957 ~ 2018)

 

우리는 모두 상처받은 영혼입니다

 

홀로 지새우는 밤이 있음에

눈부신 아침과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는 저녁

 

산다는 것은

이 얼마나 황홀한 몰락입니까

 

창을 열면 한 줄기 바람 되어

목 놓아 부르는 나의 노래 황홀한 일몰

 

[시평]

김기석 시인은 안산(安山)에서 살았던 사람이다. 경상도 태생인데, 어떻게 안산으로 와서 살게 됐는지는, 그 연유는 잘 알지 못한다. 안산이라는 신도시로 이주한 이후, 이곳저곳을 다니며 시를 쓴다고 했고, 어느 아담한 카페를 빌려서 작은 도서관 운동을 한다고 하며, 열심히 책을 수집하기도 했다.

김기석은 가족도 없이 혼자 사는 시인이었다. 인력센터에 등록을 하고는, 새벽부터 인력센터에 나가서는 일을 배정받으면, 하루의 노동을 해서 벌어서 사는, 그런 사람이었다. 특별한 기술도 없었기 때문에 닥치는 대로, 시키는 대로 이렇듯 노동을 한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안산 빈민가 원룸에서 변사체로 발견이 됐다. 다섯 평 남짓한 싸늘한 책상 위에는 100편이 넘는 시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 간의 지인들이 이 시들을 모아 ‘허무의 빈 바다’라는 유고시집을 출간해 그의 넋을 기렸다. 오늘(2022년 9월 29일) 지인들이 모여 조촐한 출판기념회를 갖는다.

그 시집 중 한 편을 소개한다. ‘황홀한 일몰’. 우리는 모두 상처받은 영혼이라고 시인은 노래한다. 그렇지만 그 아침은 눈부시고 또 저녁은 감미로운 음악이 흐른다고 노래한다. 그래서 산다는 것이 황홀한 몰락이라고 절규한다.

삶이, 자신이,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 밤을 새워 쓰는 시들이 있으므로, 그의 삶은 결코 빈한하지도 또 외롭지도 않았으리라. 비록 작은 원룸, 차가운 바닥에서 변사체가 됐어도, 그의 생애는 황홀한 일몰이었으리라. 한 사람의 시인을 자처하며, 시에의 긍지를 지니고 살아갔기 때문에, 그는 황홀한 생을 마쳤을 것이다. 명복을 빈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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