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좌고우면이다. 좌고우면(左顧-右眄)이란 이쪽저쪽 눈치를 살피며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본디 뜻이 그러하나, 요즘 사람들 마음이 좌고우면(左苦右面)인 게 틀림없다. 왼쪽을 보면 고통스럽고, 오른쪽을 보니 면구스럽다는 말이다. 좌파, 우파 이야기다.

보수다 진보다, 서로 잘났다 큰소리를 치지만 왼쪽, 오른쪽 모조리 다 역겹고 진저리난다는 게 대세다. 그래, 사람들은 이쪽도 저쪽도 아닌 새로운 정치세력 혹은 인물들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어느 설문조사에 따르면 기존의 보수, 진보 진영 아닌 제3의 정치 집단이 등장한다면 적극 지지하겠다는 사람이 절반 가까이나 됐다. 그게 그 소리다.

세상이 어수선하고 먹고 살기 힘들어지면,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짜자잔~” 하고 등장하는 로봇 ‘짱가’처럼, 자신들을 구원해 줄 누군가가 나타나 주길 기대하게 된다. 그게 미륵불일 수도 있고 예수일 수도 있다.

역사를 돌아보면, 나라가 망할 무렵이면 어김없이 도참설이 돌았다. 고통스러운 현실을 타개해 줄 구세주가 나타나길 염원하는 백성들의 마음을 담은 것으로, 그게 입에서 입으로 안개처럼 퍼져 나갔던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선한 사람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 버리는 경우가 많다. 세상이 뒤집어졌으면 좋겠다는 민초들의 마음을 읽고선 그것을 자신의 야망을 위해 교묘하게 이용해 먹는 약삭빠르고 교활한 인간들이 등장하고, 개벽천지에서 잘 살아보고 싶다는 민초들의 열망이 물거품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신라 말기에 그야말로 ‘마징가 제트’처럼 짠, 하고 등장한 궁예가 대표적이다. 그는 원래 중이었으나 도적떼에 가담해 ‘리더십’과 꿈을 키웠다. 그는 스스로를 미륵불이라 불렀다. 미륵불이란, 도솔천에 머물다 사바세계가 어지러워지면 내려온다는 미래의 부처 아닌가. 이 염치없는 인간은 한 술 더 떠, 두 아들 이름도 보살이라 하였다. 후백제를 세운 견훤도 궁예처럼 그의 두 아들 이름을 금강(金剛) 신검(神劍)이라 지었다.

조선을 세운 이성계도 도참설을 적극 이용했다. 등 뒤로 통나무 세 개가 내려앉는 꿈을 꾸었다는데, 그 모양을 한자로 쓰면 임금 왕(王)이 된다. 이게 무슨 허경영이 하는 소리도 아닌 것이 황당하기 짝이 없지만, 어수룩한 시절이고 하니 사람들은 과연 그런가 보다 했을 것이다.

심지어 이성계는 글자로 장난을 치기도 했는데, 목자위왕(木子爲王)이란 말도 퍼트렸다. 목(木) 밑에 자(子)를 갖다 붙이면 이(李)가 되는데, 즉 이(李) 씨 성을 가진 사람이 왕이 된다는 뜻이다. 곧, 자신이 왕이 된다는 것인데, 아무튼 그로부터 거의 600년간 오로지 이(李) 씨들이 왕조를 물려받았으니 한 씨족이 참으로 야무지게도 해 먹은 셈이다.

요즘같이 무슨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같은 게 없던 시절, 정치가들은 이처럼 저희들 스스로 설(說)을 만들어 슬쩍 흘리고, 백성들은 연유를 모른 채 그야말로 ‘카더라’ 방송에 따라 그게 그런가 보다 했던 것이다. 그 시절에도 민심은 중요했고 그래서 민심을 잡기 위해 나름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게 그냥 한 소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도참설까지는 아니어도, 숱한 설(說)들이 만들어지고 퍼져나갔다. 그 중심에는 첨단 통신네트워크가 있었다. 결국 그 설(說)들을 잘 활용한 쪽이 이겼다. 그게 아니고, 민심이 그랬던 것이다, 라고 해도 맞는 말이다. 그 말이 그 말이다.

박원순 시장의 전략은 탁월했다. 좌고우면(左苦右面)인 상황에서, 좌도 우도 아닌 시민의 대표로 나섰으니 말이다. 아무튼 이렇게 되었으니, ‘희망을 제작’하고 ‘아름다운’ 서울을 만들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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