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당역 여자 화장실에서 20대 여성 역무원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전주환(31)의 신상정보가 19일 공개됐다. 이날 전주환의 신상에도 이목이 쏠렸으나 ‘신당역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로 보지 않는다고 한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발언이 큰 파장을 낳고 있다.

논란이 커지자 조민경 여가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을 통해 “지난 16일 이후 해당 사건에 대해 ‘여성혐오 범죄다’, ‘아니다’ 하는 논란이 많았다”며 “이것은 학계나 다른 여성계에서도 정의 부분을 한 번 논의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고 했다.

많은 전문가는 불법촬영에 스토킹, 살인으로 이어진 이번 사건이 ‘페미사이드(femicide, 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하는 현상)’의 전형이라고 진단했으나 정작 여성 문제에 밝아야 할 김 장관은 이를 여성혐오로 인한 범죄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여기에 반발이 커지자 ‘여성혐오 범죄의 정의’를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애초에 여성혐오와 관련된 문제가 아니었다면 왜 여가부 장관인 본인이 신당역을 방문해 피해자를 애도했는지 의문이다.

작년 여가부에서 나온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자료에 따르면 불법촬영 가해자 검거 인원은 2017년 5437명(남성 95.2%), 2018년 5497명(남성 97%), 2019년 5556명(남성 95%)으로 남성이 90% 이상이며 올해 통계에서 성폭력 피해자 수는 여성이 88.6%를 차지했다. 이런 숫자를 들이밀지 않더라도 여성이기 때문에 많은 범죄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큰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거의 모든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그런데 이번 여가부는 이런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보인다. 애초에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도 올해는 ‘통계로 보는 남녀의 삶’이라며 여성을 지워냈다. 그러나 내용은 대부분 여성이 피해자인 성폭력, 가정폭력, 성착취물에 대한 통계다.

명확한 여성혐오로 인한 범죄를 놓고 그 정의를 다시 ‘논의하자’는 말도 이해가 안 된다. 현 상황에서 뒷걸음치는 행동이다. 남성이 스토킹이나 묻지마 살인사건에 희생되는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다. 구조적 성차별로 인해 빚어지는 범죄유형이라면 여성혐오 범죄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누구보다 여성인권에 관심이 높아야 하는 여가부 장관이 ‘여성혐오 범죄’ 개념 논란을 유발한 당사자라는 것이 아이러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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