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지난달 28일 저녁. 서울 강남 모 음식점에서 체육언론인회 선배들과 즐거운 만찬을 가졌다. 70대 후반부터 60대의 체육기자 원로 선배들이 대부분이었다.

아직도 현역 못지않은 열정을 갖고 있는 이들의 화제는 프로야구로 모아졌다. 야구기자 출신의 몇몇 선배들은 순식간에 매진된 한국시리즈 5차전 입장권 여러 장을 미리 확보해 직접 잠실야구장에서 볼 수 있게 됐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야구기자 경험이 없는 다른 선배들은 다소 부러운 듯한 눈치로 이들의 자랑(?)을 들어야 했다. 축구, 농구, 골프 전문기자 출신 등도 할 말이 많았겠지만 야구기자의 입심이 분위기를 주도했다.

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가 여러 순배 돌면서 프로야구에 대한 이야기가 좀 더 깊어져 갔다. 올해 갑작스레 타계한 최동원, 장효조와 관련한 뒷얘기와 다양한 화제 등이 쏟아졌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올 프로야구는 관중이 650만 명을 넘는 사상 유례없는 대호황을 보였지만 내용적으로는 별로 볼 것이 없었다는 평가였다. 특히 시즌을 총결산하는 플레이오프는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는 것이었다. SK-기아 준플레이오프, SK-롯데 플레이오프, SK-삼성 한국시리즈 등은 예년과 비교해 팬들의 흥미와 관심을 끌지 못했다는 주장들이었다.

지난해 한국시리즈 우승팀 SK가 기아와 롯데 등을 연파하고 한국시리즈에서 삼성과 자웅을 겨루게 됐으나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삼성에게는 좋은 상대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기아나 롯데가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면 SK보다 좀 더 만만치 않은 상대로서 뜨거운 승부가 펼쳐질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너무 일찍 승부가 갈라지고 사전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경기가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통상 재미있는 야구와 재미없는 야구를 가르는 가장 큰 잣대는 얼마나 스토리가 있는 경기를 하느냐다. 역경을 딛고 뜨거운 감동을 선사하는 팀과 선수가 활약하는 경기는 재미있는 경기로 평가를 받는다. 프로야구의 진정성은 스토리가 있는 경기에서 표출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재미있는 경기보다는 이기기 위한 경기에 주력한 SK나 결정타에만 의존해 산발적인 공격력을 선보인 기아와 롯데 등은 스토리가 풍부한 드라마틱한 경기를 펼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오히려 정규리그가 플레이오프보다 예상 밖의 접전이 벌어지고 역전 승부가 많이 펼쳐져 팬들의 흥미를 더 자아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미국 프로야구 월드시리즈는 야구팬들 마음에 딱 드는 드라마틱한 경기를 펼쳐 국내 프로야구와 대조를 보였다. 월드시리즈는 반전과 반전을 거듭하며 야구팬들의 가슴속에 특별한 울림을 만들어냈다. 우승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는 기적같은 우승을 연출했다.

세인트루이스는 8월 25일까지 지구 1위 밀워키에 10경기, 와일드카드 1위 애틀랜타에 10경기 반차로 처져 있었다. 포스트시즌 진출조차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9월 8일 이후 12승 2패로 고공비행하면서 결국 시즌 마지막 날 극적으로 와일드카드를 거머쥐었다. 이후 디비전시리즈에서 필라델피아를 물리쳤고, 챔피언십시리즈에서 밀워키를 꺾었다. 월드시리즈에서는 2승 3패까지 뒤지다 역전 우승을 일구었다.

한국야구와 미국야구를 비교해 어느 쪽이 더 재미있다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다. 환경과 문화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플레이오프를 통해서 볼 때 올해는 미국야구가 한국야구보다 박진감이 넘친 경기를 펼쳤다고 평가할 수 있다. 비록 현장을 떠난 지 오래됐지만 원로 스포츠 기자들은 팬들이 환호할 수 있는 진정한 스토리가 있는 프로야구 경기가 많이 펼쳐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프로야구가 발전하려면 진정성 있는 스토리가 넘친 경기가 그라운드를 장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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