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사유적연구원 학술지에 논문 게재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 강우방 박사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2-1) 동일 제작인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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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제 백제 보살입상(좌)과 금동제 반가사유상(우) (제공: 이재준 한국역사유적연구원 고문) ⓒ천지일보 2022.09.16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지금까지 조사되지 않은 국보급 금동제 백제 반가사유상과 보살상 2점이 찾아졌다. 

서울 세운미술관(관장 정세운)이 소장하고 있는 이 두 점의 금동불상은 고대사‧불상연구가인 이재준 한국역사유적연구원 고문(전 충청북도문화재 위원)이 조사, 한국역사유적연구원 논문집 12, 13집을 통해 공개했다.

금동반가사유상은 전체 크기 13㎝, 대좌 높이 4.5㎝, 대좌 폭 4㎝, 얼굴 높이 3.3㎝, 얼굴 폭 2㎝, 보관 높이 1.5㎝, 어깨 폭 4㎝이며, 금동보살입상은 전체 높이 20.2㎝, 대좌 높이 6㎝, 대좌 경 7.6㎝, 얼굴 고 5.5㎝, 어깨 폭 4㎝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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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2-1)(좌)과 새로 조사한 금동반가사유상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이재준 한국역사유적연구원 고문) ⓒ천지일보 2022.09.16

두 점의 금동불상을 친견 조사한 강우방 박사(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는 “두 점 모두 진품으로 반가사유상은 국보 제78호를 그대로 닮고 있어 국보를 만든 장인의 솜씨로 보인다”고 밝혔다. 

국립박물관 재직 시 가장 많은 시간을 금동반가사유상 연구로 보낸 강우방 박사는 새로 조사한 불상을 정밀 조사하면서 “눈을 의심할 정도로 똑같다. 같은 시기 장인이 아니고서는 이렇게 만들 수 없다”고 설명했다.

강 박사는 또 “백제 금동보살상의 경우도 머리에 쓴 보관은 보주를 상징하며 각부 양식이 백제시기 주성으로 볼 수 있는 매우 주목되는 유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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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양나라 성도유적에서 출토된 금동삼존불. 좌우 협시보살상의 보관이 백제금동불입상을 고증하는 결정적 자료다. (상해박물관 소장) ⓒ천지일보 2022.09.16

한편 이재준 고문은 논문에서 “금동보살입상은 현존하는 백제 금동제 소형불상 가운데 시대적 특징이 잘 나타나며 보존상태도 완전해 국보급 유물로 평가된다”며 “독특한 형태의 보관은 성왕 대 가장 이른 시기의 소작으로 보이며 양나라 성도 유적에서 출토된 무제(武帝)시기 금동삼존불 협시불에서 이 불상과 닮은 보관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고문은 또 “미소년 같은 아름다운 상호, 비교적 큰 얼굴과 손발의 표현, 삼산형의 보관. X자형으로 교차된 영락의 표현과 팔에 걸친 천의 아래로 내려 온 태조(彫)의 상의(裳衣) 표현은 삼국시대 백제 불상에 나타나는 양식으로 미소는 백제 금동보살상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작품으로 귀품 있는 태자상의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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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발견된 금동보살입상의 상호 (제공: 이재준 한국역사유적연구원 고문) ⓒ천지일보 2022.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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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양동 출토 금동관음보살입상(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2.09.16

 삼국시대 백제 불상의 조각은 굵고 릴리프가 강하다. 이 불상에서는 백제 금동제 불상의 전형적인 조각 수법이 잘 남아있다. 양발 옆으로 넓게 뻗친 칼날 같은 의문은 이 불상의 제작 시기를 잘 말해주는 것이다. 이 고문은 금동보살입상의 복련 대좌는 국보 제127호로 지정된 삼양동 출토 금동보살입상과 똑같다고 설명했다.

이 고문은 “삼국시대 반가사유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호(相好)의 표현이다. 이 불상은 원만하고 후덕한 얼굴에 아름다운 미소가 은은하게 감돌고 있다”며 “상호는 충남 서산시 운산면 마애삼존불의 넉넉함을 지니고 있어 자비가 넘친다. 특별한 것은 안면의 도금 상태가 좋아 아직도 찬란함을 잃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반듯한 이마는 귀족적이며 눈은 반개했다. 양 눈에는 쌍꺼풀까지 사실적으로 표현돼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 고문은 “이 반가사유상의 비량(鼻梁, 콧마루)은 오뚝해 삼국시대 특징을 보여 주며 목에는 국보 제78호 미륵반가사유상의 심엽형(心葉形)경식을 착용하고 있고 대좌와 밑으로 흘러내린 치마 표현은 국보 반가사유상을 닮고 있다”고 설명했다.

백제는 중국 남조인 양나라와 가장 친밀한 외교 관계를 수립해 일찍부터 문화국으로 성장했다. 백제 성왕은 수도를 부여로 천도하고 국호를 남부여로 바꾸는 등 동아시아에서 비상하려고 했다. 일본 긴메이(欽明) 천왕에게 불교를 전하고 불보살상을 만들어 전하는 등 불교 외연 확대를 꾀하려 했다.

그러나 정신적 지주이자 후원자였던 양 무제가 몰락한 이후 백제의 국운도 무너지기 시작했으나 성왕 전사 이후에는 대륙의 신흥강자인 북제(北齊)와 적극적으로 교류했으며 학계는 이 시기 반가사유상의 도래가 이루어진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 고문은 “새로 발견된 보살입상과 반가사유상은 비록 소형이지만 백제의 우수한 금속예술을 보여 주는 국보급 문화유산”이라고 덧붙였다.
 

글.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금동보살입상은 진품 백제 불상"
금동보살입상(전체 높이 20.2㎝, 대좌 높이 6㎝, 대좌 경 7.6㎝)

이 금동보살입상은 삼국시대의 고대 양식을 그대로 보여 준다. 즉 양어깨를 타고 내려오는 보발의 형태라든지, 영락 띠가 복부에서 교차한다든지 양팔에 걸친 천의 역시 하반신에서 교차한다든지 전형적인 삼국시대 형식이다. 그러나 반전하는 돌기처럼 보이는 보발은 일본, 한국과 중국 학자들이 보발이라 부르나, 보살의 머리에서 무슨 머리칼이 있는가. 그것은 제 1영기싹이 연이어 있는 영기문이다.

즉 보살의 머리에서부터 발산하는 영기문이다. 영락 띠는 연이은 보주로 된 것이며, 천의도 현실에서 보는 천의가 아니고 모두가 보살로부터 발산하는 영기문이다. 왜 그런지는 긴 과정을 통해 설명해야 하므로 여기에서는 생략한다. 대좌는 연판이 넓고 크다. 서울 삼양동 출토 금동보살입상의 대좌와 똑같아서 흥미롭다.

얼굴은 눈을 감은 듯하여 명상에 잠기고 있으며 보관은 삼각형 모양이 중첩된 형식인데 뒤에 다시 다룬다. 천관대는 머리 양쪽에서 내려오고 있다. 수인은 삼국시대 것이 모두 그렇듯이 양 손바닥을 다 보이며 시무외인과 여원인을 맺으며 그 당시 대부분의 불보살들이 함께 취하는 통인(通印)을 보여 주고 있다.

목걸이와 신체 전체에서 교차하는 영락 띠를 보면 연결되는 느낌이 없이 동글동글한 보주를 연이어 놓은 듯한 표현도 흥미롭다. 천의는 양팔을 거쳐 좌우로 내려오는데 끝부분에서 양쪽으로 벌리고 있다. 천의는 그저 밑으로 수직으로 내려와야 하지만 이처럼 좌우로 뻗치게 표현한 것은 역시 보살의 몸에서 발산하는 기운을 나타낸 것이다.

배면을 보면 하반신 부분에 긴 타원형 구멍이 있다. 그런데 그 내부에도 그만큼의 빈 공간이 나 있는데, 일반적으로 삼국시대 불상은 내부가 동으로 차 있는 통불이어서 무게가 꽤 나간다. 그 구멍은 동을 절감하기 위한 공동이라고 보기 어렵다. 통일신라시대의 금동불은 모두가 내부가 공동이어서 동을 절감하기 위해서 생긴 것이지만, 이 경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배면은 광배로 가리어지므로 전반적으로 세부 표현이 없이 밋밋하다. 

흥미 있는 것은 보살의 머리 정수리다. 그 네 면을 보면 정수리가 정상이 조금 좁아지는 둥근 형태인데, 보주를 표현할 때 보통 둥근 모양이나 이처럼 꽃봉오리처럼 윗부분이 약간 좁아지는 경우가 많다. 바로 보주다! 촬영하다가 머리가 보주임을 보고 놀랐다. 삼국시대 불상을 연구하면서 이처럼 머리를 보주로 표현한 것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마치 보주가 솟구치려는 모습이어서 더욱 인상적이었다.

이 금동 보살 입상은 삼국시대 금동불이 귀한 상황에서 귀중한 작품을 추가하게 되어 삼국시대 불상 연구에 도움이 될 것이다.


"반가사유상은 국보와 빼닮아"
금동사유상(金銅 思惟像) 총고 13㎝, 대좌 높이 4,5㎝

금동사유상의 정면을 보면 신체에 비해 얼굴이 큰 편인데 이러한 비례는 삼국시대 불상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아래 대좌를 보면 연꽃잎들이 보기 드물게 곧추서 있고 씨방 위에 다리가 놓여 있어서 사유상의 보주 화생(씨방의 보주들에서 화생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자세한 표현은 생략되어 있다)을 보여 주고 있다.

국보 제78호 사유상과 비교하려 하는데, 이하 78호 사유상이라 부르기로 하려 했지만 불상 앞에 78호라 부르기가 좋지 않으므로 그저 ‘큰 사유상’이라 부르기로 한다. 이 작은 사유상의 대좌에 내려진 다리의 옷주름은 등간격의 포물선을 짓고 있다. 이 점도 큰 사유상과 같다.

아랫부분의 앞면에는 중앙에 내려진 천의 자락과 무릎 밑부분에 내려진 옷자락 사이에 사선으로 옷자락이 역시 등간격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실은 등간격의 포물선 옷주름을 천의 자락과 옷자락이 양쪽을 가리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왼쪽 코너는 직각을 이루고 있으며, 등간격의 포물선도 큰 사유상과 똑같다. 비슷한 것이 아니고 똑같다. 게다가 양 무릎에 걸친 교차하는 천의 자락의 흐름도 큰 사유상과 똑같다.

더구나 정상적이라면 오른쪽 무릎 밑부분의 옷자락도 매우 작은 금동불임에도 불구하고 물결치며 코너에서 솟아올라 온몸의 무게를 받쳐서 무거운 느낌을 주는 오른쪽을 받쳐주며 옷자락이 힘차게 솟아오르고 있다. 솟아오르고 있다는 것은 법의가 바로 물이라는 진실을 증명해 주고 있다. 그리고 그 밑의 대좌 위 코너를 바짝 감싸고 있는 점도 큰 사유상과 똑같다. 물론 제78호 금동사유상 즉 큰 불상은 세부가 정교하고 자세하게 표현될 수 있지만, 지극히 작은 금동불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 작은 금동불에서 큰 금동 사유상을 연상시킬 수 있다는 것은 두 작품을 만든 조각가가 같은 장인임을 더욱 강력히 뒷받침해 주고 있다.

정면 상체를 살펴보자. 작은 보관에서는 큰 사유상의 무량한 보주를 발산하는 정교하고 복잡한 영기문을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작은 보관 정면에 단순한 무량보주를 표현하여 같은 상징을 띤다. 얼굴은 비교적 큰 편인데 작은 금동불에서 흔히 보는 특징이다. 얼굴 양옆으로 보관 띠가 어깨에까지 드리워져 있는 그 띠의 각진 모양도 똑같다.

가슴 장식은 제78호에서는 보주들 표현이 있으나, 작은 상에서는 보주 표현 없이 윤곽만 표현했는데 그 형태가 똑같다. 천의는 어깨 부분에서 갑자기 넓어져 이중을 이루며 양어깨를 넓게 감싸며 양 끝이 위로 반전되어 가운이 뻗치고 있는 것도 똑같다. 천의는 항상 두 겹이 같이 전개되고 있는데 이것은 영기문이 항상 두 가닥이 함께 가는 것과 똑같다. 정면 하반신에서 그래서 두 가닥 천의가 수직으로 내려오고 있는 까닭이다.

좌측면을 보면 우선 하반부의 대좌 모양이 똑같다. 대좌는 배면을 다룰 때 자세히 다룰 것이지만 참으로 두 불상이 똑같다. 특히 양 허리에서 내려온 두 가닥의 띠는 방석과 둔부 사이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면서 큰 매듭을 짓고 바닥까지 드리운 것도 똑같아서 놀라울 뿐이다.

더구나 어깨에 드리운 보발이 두 갈래로 갈라져 양어깨에 드리웠는데 그 끝은 두 개가 둥글게 매듭지어져 있는 것조차도 똑같다. 우측면은 78호와 다르다. 즉 허리에서부터 내려오는 띠가 보이지 않는다. 작은 금동불의 표면 상태가 크게 변질되어 과학적 보전 처리가 시급하다.

그러면 배면을 살펴보자. 하반부의 둔부와 대좌를 보면 대좌의 양감이나 덮개의 주름들이 똑같다. 윗부분의 방석 같은 것과 밑 부분 사이를 두 가닥의 굵은 띠 두 가닥으로 조였는데 그것도 같다. 방석 같은 부분에 아름답게 굴곡진 주름에 비현실적인 율동감을 부여한 것도 같다.

상반부를 보자. 머리칼은 두 가닥으로 갈라져 끝에서 둥근 매듭을 지으며 양어깨에 드리웠는데, 큰 사유상에서는 머리칼을 표현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작은 금동불에서는 머리칼이 정교하게 가지런히 표현되었다. 그리고 양어깨를 넓게 감싼 천의는 등에서는 두 가닥으로 아름다운 포물선을 짓고 있는데 그야말로 똑같다. 

이처럼 한두 가지 빼고는 두 상이 똑같아서 두 상 중 어느 상을 취하든지 특징들을 설명하면 두 상을 설명한 것이 된다. 필자는 평생 무수한 불상들을 직접 촬영하며 조사한 바가 있는데, 국보 제78호 금동사유상은 독립 논문을 쓴 바 있지만 아직까지 유일한 논문이다. 작은 금동불을 조명하며 촬영하는 동안, 내내 언젠가 같은 불상을 촬영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오래전에 찍어둔 국보 제78호 불상의 모든 면들을 찾아서 비교하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두 상이 크기만 다를 뿐 세부가 같아서 ‘똑같다’라는 말을 안 쓸 수 없었다. 

이 작은 금동 사유상은 국보 큰 사유상을 조각한 장인이 만들었다는 심증이 굳어져 갔으며, 이 현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필자만이 느낄 수 있다. 너무 같아서 오늘 다시 그 금동불을 꺼내서 살펴보았다. 혹시 너무 같은 이유는 요즘 만든 모작일 수도 있겠다는 의문이 들어서다. 그러나 작은 금동불을 조명하여 자세히 살펴보니 진품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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