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6대책 후 주민 비판 쇄도
政 “2024년 마스터플랜 발표”
18개월 만에 도시계획 가능할까
이름만 신도시, 노후단지 많아
‘용적률 500%’ 공약 나오기도
매물 증가량 서울 10배 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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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23일 "1기 신도시 재정비를 위한 마스터플랜 일정을 최대한 앞당기겠다"고 밝혔다. 원 장관은 다음달 마스터플랜 연구용역을 발주하고, 5개 신도시별로 전담 마스터플래너를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경기 고양 일산 아파트. 2022.8.23 (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이우혁 기자] 정부가 출범 100일 만에 내놓은 부동산 대책이 1기 신도시 주민들에게 우려의 눈초리를 받고 있다. 주민들은 특별법을 통해 조기 재정비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었지만 내후년에나 마스터플랜이 나오기 때문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에 성명을 발표하며 “조속히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정부가 마스터플랜을 짜는데 오는 2024년까지 소요된다는 점을 두고도 우려가 나온다. 통상 5~10년이 걸리는 도시계획이 1년 반 만에 ‘졸속으로’ 처리하는 게 아니냐는 이유에서다. 이를 반영하듯 ‘실망 매물’이 쏟아져 나오고 아파트값도 하향세를 이어가고 있다.

◆기대감 ‘와르르’…‘속 빈 강정’ 지적도

지난달 16일 정부가 첫 부동산 대책을 내놓은 이후 ‘속 빈 강정’이라는 지적을 받았던 내용에는 ‘1기 신도시’ 관련 재정비사업 계획이 꼽힌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된 후부터 재건축 기대감을 키워왔지만 정작 발표된 정책에는 마스터플랜을 오는 2024년 중 수립할 것이라고만 명시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는 연구용역을 거쳐 도시 재창조 수준의 재정비 마스터플랜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는데 이 부분과 관련해 정부와 주민들 간의 입장차가 발생하고 있다.

주민들은 대선 이후 1기 신도시의 조기 재정비를 기대했지만 발표된 부동산 대책이 공약과 다르다며 일제히 반발에 나섰다. 올해 안에는 특별법이 나와 대통령의 임기 내 착공에 들어갈 것이란 기대가 무너진 영향도 컸다.

정부 입장은 이와는 사뭇 다르다.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대규모 장기 도시계획을 수립해야 하는 만큼 이를 졸속으로 추진할 순 없다는 이유에서다. 정부가 마스터플랜을 준비하기로 한 기한은 1년 6개월 뒤인 오는 2024년이다.

일각에선 이 마저도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소 5~10년은 걸리는 도시계획을 18개월 만에 수립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또 그만한 역량이 있는지도 검증하기 어려우며 결국은 일부 기업의 특혜로 이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비판 여론에 대해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오는 2024년으로 가급적 속도를 내보겠다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일정을 정하는 것은 제한이 있다”며 “일정을 당기도록 노력하고 중간 진행 상황은 주민과 공유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편 정부는 지난달 신도시 재정비 TF를 확대·개편하고, 신도시별 마스터플래너를 지정하는 등 마스터플랜 구체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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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열린 1기 신도시 정비 추진방안 감담회에서 발언하는 원희룡 국토부 장관. (제공: 국토교통부)

◆아파트 시대 열었지만 이젠 노후단지多

1기 신도시는 노태우 정부(1988~1993년) 시절 서울의 주택부족 해결을 위해 200만호 건설을 목표로 추진된 대규모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성남의 분당을 비롯해 일산, 중동, 평촌, 산본 등에 약 30만호가 공급됐다. 일부 전문가들은 당시를 국내에서 아파트 위주의 주거 환경이 본격적으로 정착한 시점으로 보기도 한다.

해당 지역은 추진했던 시기가 오래된 만큼 노후단지가 많아 재개발·재건축에 대한 기대감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분당시범단지가 지난 1991년, 나머지 단지가 1992년부터 입주를 시작해 올해를 기준으로 신도시 내 아파트 대부분이 지어진 지 30년에 달한다. 아울러 구축 아파트들이 가진 협소한 주차장, 커뮤니티 시설 부족, 노후화 등의 특징도 가지고 있어 주민 불만이 속출하기도 했다.

또 일산을 제외하면 대부분 단지의 용적률이 200%에 그쳐 재정비를 통해 용적률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곳이다. 이 때문에 앞선 대선 때는 여야 할 것 없이 1기 신도시 재정비 시 용적률을 500%까지 늘려주겠다는 공약을 내건 바 있다. 통상 용적률을 높이면 층수가 높아져 수익성이 좋아진다.

◆‘실망 매물’ 속출에 하향세 이어지나

부동산 시장에선 위축된 기대감이 각종 지표로 드러나고 있다. 정부가 공약에 따라 취임 100일 만에 1기 신도시 재정비 계획을 내놨지만 마스터플랜을 내년까지 세우겠다는 것이고, 계획이 세워지더라도 신축 아파트 입주까지는 10여년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다.

먼저 부동산 정책이 발표된 이후 ‘실망 매물’이 속출하고 있다. 부동산 빅데이터업체 아실에 따르면 지난 5일 1기 신도시 아파트 매물은 1만 7363건으로, 8.16 부동산대책이 발표되기 전날(1만 6681건)보다 4.08% 증가했다.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 매물이 0.44%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적체 속도가 10배 가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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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연합뉴스)

또 가격도 하향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아파트값은 전주대비 0.12% 하락했다. 또 고양시 일산동구·일산서구도 각각 0.05~0.09%, 평촌이 있는 안양시 동안구 0.26%, 중동이 있는 부천시와 산본이 있는 군포시도 각각 0.13%, 0.17%씩 떨어졌다.

다른 통계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1기 신도시 중 중동(0.00%)을 제외한 나머지 신도시의 아파트 가격이 모두 떨어진 것으로 집계됐다. 지역별로는 ▲광교(-0.08%) ▲평촌(-0.07%) ▲일산(-0.06%) ▲분당(-0.02%) ▲동탄(-0.02%) ▲산본(-0.01%) 등이 하락했다.

하락한 주요 단지들을 살펴보면 광교는 이의동 광교자연앤자이2·3단지, 광교e편한세상, 하동 광교레이크파크한양수자인 등이 500만∼2000만원, 평촌은 평촌동 향촌현대5차, 귀인마을현대홈타운, 비산동 관악부영4차, 호계동 목련9단지신동아 등이 500만∼1000만원, 일산은 주엽동 강선16단지동문, 강선14단지두산 등이 1000만∼1500만원 떨어졌다.

1기 신도시를 중심으로 실망 매물이 쏟아지는 것을 두고 전문가들은 “다주택자들의 매물이 쏟아져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1기 신도시는 특별법을 통한 재정비 기대감에 가격 방어가 잘 됐었지만, 부동산대책 발표 후 사업 지연에 실망감이 커졌고 더는 금리 인상으로 인한 하락세를 피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한편 정부는 1기 신도시 재정비를 위한 특별법을 내년 2월에 발의하기로 했다고 지난 8일 밝혔다. 마스터플랜 실행의 법적 지원을 담보하기 위함이다. 국토부는 이에 제도화 방안 마련을 위한 연구용역과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특별법을 발의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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