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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

추석은 중추절(仲秋節), 한가위, 가배(嘉俳)라고도 부른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유리이사금 조에 의하면 왕녀 2인이 여자들 무리를 만들어 7월 16일부터 매일 길쌈, 적마(績麻)를 했다. 8월 15일에 이르러 진 쪽에서 술과 음식을 내놓고 가무와 놀이를 했는데 이것을 가배(嘉俳)라 불렀다. 고려시대 노래인 ‘동동’에 이날을 가배라 적은 것에서 명칭이 지속됐던 것으로 보여진다.

중국 ‘수서(隋書)’ 동이전 신라 조에 보면 ‘임금이 이날 음악을 베풀고 신하들로 하여금 활을 쏘게 하여 상으로 말과 천을 내렸다’고 하였으며 ‘구당서(舊唐書)’ 동이전에도 ‘신라에서는 8월 15일을 중히 여겨 음악을 베풀고 잔치를 열었으며 신하들이 활쏘기 대회를 하였다’고 쓰여있다. 이규경(李圭景)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추석행사가 가락국에서 왔다’고도 했던 것처럼 우리의 오랜 고유 명절이었다. ‘더도 덜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라고 ‘열양세시기’에 언급했듯이 곡식과 햇과일이 나와 만물이 풍성함을 즐기던 명절이다.

‘동국세시기’에는 송편·시루떡·인절미·밤단자를 추석음식으로 꼽았고, ‘농가월령가’에서도 신도주(新稻酒)·오례송편·박나물·토란국 등을 이때의 시식이라 노래했다. 이때는 어느 절기보다도 오곡과 과일이 풍성하므로 다양한 음식이 만들어진다.

이 중에 추석의 대표적인 떡은 송편이다.

중국 사람들은 추석에 보름달을 닮은 달떡이라는 뜻의 월병(月餠)을 먹는다. 일본은 음력을 쓰지 않지만 전통 추석 음식으로 스키미당꼬(月見團子)를 먹는데, 달을 보며 먹는 둥근 떡이다. 우리는 보름달이 뜨는 추석에 먹는 떡인데도 둥근달 모양이 아니라 반달 모양이다.  우리 조상은 달은 만물에 생명력을 주고 사람에게 복을 가져오는 힘이 있다고 믿은 데서 연유한다. 

달이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서 보름달로 커지는 과정을 보며 재생과 부활의 힘이 달에게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달의 생생력(生生力)이라고 한다. 초승달은 초승에 돋는 달로 신월(新月) 또는 현월(弦月)이라고도 한다. 우리 선조들은 달의 생생력은 만월보다 초승달이 가장 강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어찌 보면 달과 전혀 관계없이 그냥 솔잎에 쪘으므로 송편(松餠) 또는 송엽병(松葉餠)이라고 부른다. 송편(松䭏)을 한자로 표기할 때 소나무 송(松)자와 떡 편(䭏)자를 쓰기도 하며 송병(松餠), 송엽병(松葉餠)이라고도 하는데, 찔 때 솔잎과 같이 찌는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조선 후기 김삿갓으로 널리 알려진 김립(金笠)김병연(金炳淵, 1807~1863년)은 송편(松餠)에 대한 시를 읊었다.

수리회회성조란(手裏廻廻成鳥卵) 손 안에서 돌리고 돌리니 새알이 만들어지고
지두개개합방순(指頭個個合蚌脣) 손가락 끝이 낱낱이 조개같은 입술을 합치네.
금반삭립봉천첩(金盤削立峰千疊) 금 쟁반에 헤아려 세우니 천 봉우리 겹쳐지고
옥저현등월반륜(玉箸懸燈月半輪) 등불 달아매고 옥 젓가락으로 집으니 바퀴 반 같은 달이로구나

솔잎으로 찌는 것은 아니지만 ‘제민요술(齊民要術)’에 보이는 종(粽)과 열(䊦)은 줄풀잎을 이용한 것으로 보이 송편이 여기서 유래 되지 않나 추측해 본다.

종은 줄풀잎에다 기장을 싸서 진한 잿물 속에서 삶아낸 것으로 각서(角黍)라고도 했다. 열은 찹쌀가루를 꿀로 반죽해 길이 1척, 너비 2촌으로 펴서 넷으로 자르고 이것에 대추와 밤을 아래위로 붙인 다음 기름을 골고루 바르고 대나무잎으로 싸서 쪄낸 것이다.

고려 후기의 문신·학자·문인인 이규보(李奎報, 1168~1241) 는 송이버섯을 노래하면서 “언제나 솔잎에 덮여 소나무 향기를 머금기 때문에 향기가 맑다” “소나무 기름을 먹으면 신선이 될 수 있다는데 버섯이 솔잎 향기를 머금었으니 어찌 약이 아니랴”고 읊었다. 솔잎 향기 머금은 송이버섯을 약이라고 여겼으니 솔잎으로 쪄서 솔 향기를 배게 만든 송편 역시 최고의 음식이 될 수밖에 없다.

또 ‘목은집(牧隱集)’에 보이는 팥소를 넣은 차기장 떡도 송편의 일종인 것으로 추측되므로 고려시대에는 일반화됐다고 할 수 있다.

송편은 1680년대로 추정하는 저자 미상의 한문 필사본 1책으로 이뤄진 ‘요록(要錄)’에 송편은 “백미가루로 떡을 만들어 솔잎과 켜켜로 쪄서 물에 씻어낸다”고 했으며, 조선 후기의 실학자 성호 이익(李瀷, 1681~1763)이 쓴 ‘성호사설(星湖僿說)’ 권4 ‘만물문(萬物門)’에는 “떡 속에 콩가루 소를 넣고 솔잎으로 쪄서 만드는데 이는 송병이라는 것이다”라고 했다. 서유본(徐有本)의 부인 빙허각(憑虛閣) 이씨(李氏, 1759~1824)가 1809(순조 9)년에 조선시대 부녀자를 위해 엮은 한글로 된 생활지침서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쌀가루를 곱게 하여 흰 떡을 골무떡보다 눅게 하여 쪄서 꽤 쳐 굵은 수단처럼 가루 묻히지 말고 비벼 그릇에 서려 담고 떼어 얇게 소가 비치게 파고, 거피팥꿀 달게 섞고 계피, 후추, 건강가루 넣어 빚는다. 너무 잘고 동글면 야하니 크기를 맞춰 버들잎같이 빚어 솔잎 격지 놓아 찌면 맛이 유난히 좋다”라고 기록돼 있다. 

송편 속에 들어가는 재료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콩, 검정콩, 팥, 꿀, 대추, 미나리를 들었고, ‘부인필지(婦人必知)’에는 팥, 잣, 호두, 생강, 계피를, ‘시의전서(是議全書)’에는 거피팥가루, 거피녹두고물, 대추, 꿀, 팥, 계피, 밤을 들었다.

송편은 흰 떡 속에 솔잎에서 발산되는 소나무의 정기(精氣)를 침투시킨 떡으로, 이것을 먹게 되면 솔의 정기를 체내에 받아들임으로써 소나무처럼 건강해진다고 여겼다.

송편을 추석에 빚는다는 것은 주로 근대 문헌에 많이 등장한다.

조선 후기의 학자 도애 홍석모(洪錫謨, 1781~1857)가 1849년에 지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추석 때면 햅벼로 만든 햅쌀 송편을 먹는다”라고 기록돼 있고, 조선말 문신이자 서예가 최영년(崔永年, 1856~1935)이 1925년에 지은 ‘해동죽지(海東竹枝)’에 추석이면 새 쌀로 송편을 빚는다고 적었다. 그리고 한자로는 그냥 송편이 아니라 햅쌀 송편이라는 뜻에서 신송병(新松餠)이라고 표기해 놓았다.

그리고 한자로는 그냥 송편이 아니라 햅쌀 송편이라는 뜻에서 신송병(新松餠)이라고 표기해 놓았다.

옛날 문헌에는 추석이 아닌 다른 명절에 송편을 만든다는 기록이 더 많다. 

조선 후기에 조수삼(趙秀三)이 지은 한시집인  ‘추재집(秋齋集)’에서 정월 대보름날 솔잎으로 찐 송편을 놓고 차례를 지낸다고 했다. 

조선의 한양 풍속을 적은 1911년 김매순(金邁淳)의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도 2월 초하룻날 떡을 하는데 콩으로 소를 넣고 솔잎을 겹겹이 쌓아 시루에 쪄서 농사일을 준비하는 노비에게 먹이니 바로 노비 송편이라고 했다. 노비일에 머슴에게 새 옷을 입히고 노비송편을 푸짐하게 먹이지 못하면 3대가 망한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였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역시 추석 때보다는 2월 초하룻날 먹는 송편을 더 자세히 기록했다. 

광해군 때 팔도의 맛있는 음식을 기록한 허균(許筠, 1569~1618)은 ‘도문대작(屠門大嚼)’에서 송편을 봄에 먹는 떡이라고 적었다. 

봄에 쑥떡, 송편, 느티떡, 진달래화전 등을 먹는다는 것이다. 반면 추석이 있는 가을에 송편을 먹는다는 이야기는 없다.

정약용도 봄에 송편을 빚는다는 시를 지었다. 

영조 때 문인 덕재(德哉) 이의현(李宜顯, 1669~1745년)은 세시음식으로 정월에는 떡국, 대보름에는 약식을 먹으며 삼짇날에 송편을 먹는다고 했고, 조선 후기의 문신인 이의현(李宜顯,  1669~1745)의 시문집 ‘도곡집(道谷集)’에는 삼월 삼짇날 먹는다고 되어 있고, 조선 중기 인조(仁祖) 때 문인 이식(李植, 1584~1647)의 시문집 ‘택당집(澤堂集)’에서 초파일에 송편을 준비한다고 적었다. 

조선 후기의 문신 송징은(宋徵殷, 1652~1720)의 시문집인 ‘약헌집(約軒集)’에는 오월 단오절에 먹는다고 기록하고, 조선 중기의 문신 신흠(申欽, 1566~1628)의 시문집 ‘상촌집(象村集)’에서는 유월 유둣날 송편을 빚는다는 기록이 보인다.

조선시대 관혼상제의 의식을 기록한 ‘사례의(四禮儀)’에도 단오에 시루떡이나 송편을 만든다고 했으며 6월 유두절에 송편을 빚는다는 기록도 있다.

조선시대 1799(정조23)년에 규장각에서 정조의 시문(詩文), 윤음(綸音), 교지(敎旨) 등을 모아 엮은 책 ‘홍재전서(弘齋全書)’에 “임금이 제물을 준비할 때 여름에 콩떡은 상하기 쉬우니 송편으로 바꾸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송편은 ‘소’는 물론 쌀가루에 호박, 모시잎, 도토리가루, 백년초가루 등 어떤 재료를 넣느냐에 따라 색과 맛, 영양이 달라진다. 특히 송편을 찔 때 까는 솔잎에는 노화와 암 예방에 좋은 베타카로틴(β-carotene)이 많이 함유돼 있고 피크노제놀(pycnogenol)이란 성분이 들어 있어 산화를 억제하며, 테르펜(Terpene)이란 성분이 천연 방부제 역할을 한다고 한다. 

‘고려사(高麗史)’ 열전(列傳)편  43 반역(叛逆) 4  조이(趙彛) 부 김유(金裕) 편에 보면 김유가 원나라에 들어가서는 본국을 배반하고서 사신이 되어 귀국하기만 하면 탐욕을 채워보려고 늘 마음먹고 있었다. 그리고는 승상(丞相) 안톤(安童)에게, 해동(海東) 삼산(三山)에 약재가 있는데 자기를 보내주면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큰소리를 치니 안톤이 이 말을 믿고 그와 신백천(申百川)을 고려로 내보냈다. 김유는 조금도 부끄러운 기색이 없이 오랑캐 옷을 뽐내면서 다음과 같은 안톤의 글을 전했다.

“고려국의 토종 약재 중에서 우리 상의(尙醫)에 비치해 둘만한 좋은 것이 있다는 말을 듣고서 지금 김유 등을 채취하러 보내니 필요한 인력을 제공해 그들이 약재를 수집해 돌아올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십시오. 약품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해동 삼산 액약방(海東三山液藥方)에 따른 대령산(大嶺山)의 향백자(香栢子) 60근과 지령동(智靈洞)의 전밀(全蜜) 40근, 정제하지 않은 인삼(人參)을 합한 조주방(造酒方)에 따른 영동군(永同郡)의 향국자(香麴子) 50근과 남해도(南海島) 실모송(失母松) 50근. 복약후 선방(膳方)에 따른 금강산(金剛山)의 석용(石茸) 60근과 대령산(大嶺山)의 남비자(南榧子) 50근과 송고병(松膏餠) 30근. 목욕방(沐浴方)에 따른 관음송(觀音松)에 맺힌 물과 풍면송(風眠松) 솔잎 200근.”

김유 등이 원나라로 돌아가는 편에 왕이 통역관인 낭장(郞將) 강희(康禧)를 딸려 보내 다음과 같은 답장을 전하게 했다.

“우리나라에서 산출되는 약재를 채취해 보내라는 귀하의 요청을 받고 김유 등에게 문의해 말씀하신 수량대로 채취해 보내드립니다. 다만 관음송에 맺힌 물이란 약재는 산출지를 찾지 못해 김유 등에게 문의했더니 낙산(洛山)에 있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즉시 사람을 보내 김유 등과 함께 찾으려고 했더니 김유가 도리어, 풍면송 솔잎만 많이 얻으면 관음송에 맺힌 물은 없어도 무방하다고 하면서 이는 진작 도당(都堂)에 보고해 그렇게 하라는 허락을 받아온 바라고 말하고는 찾으러 가지 않았습니다. 관음송에 맺힌 물이란 약재는 본래 있지도 않은 약재이며, 송고명이라고 하는 것은 소나무의 흰 껍질을 벗겨 잿물에 푹 삶은 다음 잘게 찧어 꿀물과 함께 버무려 만든 떡을 말하는데 김유는 소나무에 자생하는 약재라 하니 이는 모두 허황된 소리입니다.”

1931년 9월 22일자 동아일보에는 ‘송편은 아무 곡식이든지 가루로 만들 수 있으면 빚었다’고 나온다. 

조, 수수, 옥수수, 감자, 도토리도 재료로 쓰인다고 나와 있다. 

또 물에 불린 쌀을 맷돌에 간 후 체에 밭쳐 가라앉힌 앙금으로 만드는 무리 송편, 보리쌀로 빚는 보리 송편 등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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