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 차례보다 집이 문제”
산더미처럼 쌓인 폐기물
“적적함 떨치려 TV만 켜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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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에서 만난 이웅철(66, 남)씨가 지난달 초 집중호우 피해로 생긴 이웃집의 폐기물들을 나르고 있다. ⓒ천지일보 2022.09.11

[천지일보=홍보영·조성민 기자, 김한솔 수습기자] “이런 곳에 누가 오려고 하겠어요. 명절 같은 쉬는 날이 아니면 수해 복구하기도 어렵습니다.”

추석 연휴 3일째 맞는 11일 서울 강남구에 마지막 판자촌인 구룡마을에서 만난 이웅철(66, 남)씨가 지난달 초 집중호우 피해로 생긴 이웃집의 폐기물들을 나르면서 이같이 말했다. 작업복 차림에 빨간 수건을 목에 두른 채 반코팅 장갑을 낀 그는 “평일에 구룡마을 주민들이 일하러 가서 어렵고 명절 같은 휴일에서야 폐기물 처리를 할 수 있다”며 “피해를 본 지 1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복구는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3년 만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없는 명절로 도심 곳곳에선 들뜬 분위기가 느껴졌지만, 지난 8월 초 115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져 삶의 터전이 무너진 구룡마을 주민들은 대체로 고령층이라 연휴를 홀로 쓸쓸하게 또는 수해복구로 보내고 있었다.

땀으로 머리카락이 다 젖은 이씨는 “우리 집은 이미 장판과 벽지를 새로 해서 더 이상 손 볼 곳이 없지만 여기 주민들은 대체로 연령층이 높아 휴일을 맞으면 조금이라도 젊은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서로 팔을 걷어붙이고 물난리 난 이웃집을 돕는다”고 덧붙였다.

차례는 지냈냐는 질문에 그는 “이웃집이 이 모양인데 어떻게 차례를 지내겠냐”면서 “조상 차례가 문제가 아니고 집이 문제”라고 답했다.

주민 생활시설에서 나온 흙과 범벅된 폐기물들은 재활용 구분 없이 한쪽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이씨는 “지난 한 달간 구청에서 집게 차가 와서 몇 번이나 수거해 갔지만 어느새 벌써 이만큼 쌓여 있다”며 “어르신들이 직접 재활용을 구분해서 버리기도 어렵고 흙이 섞여 있어 더 처리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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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해의 흔적으로 문과 가구들이 박살나 어지럽게 놓여있다. ⓒ천지일보 2022.09.11

마을은 모세혈관처럼 골목에 골목으로 뻗어 있어 길을 찾기도 어려웠다. 곳곳에는 수해를 입은 흔적으로 문과 가구들이 박살나 있었으며, 어지럽혀져 있었다.

한 골목에 들어서 TV 소리로 인적을 확인 후 이춘심(가명, 86)씨를 만났다. 이곳에서 30년 넘게 살고 있다는 그는 이번 연휴를 어떻게 보내고 있냐는 질문에 “다리가 아파서 어디 갈 수도 없고, 아직도 천장이 축축하게 젖어 있고 비가 오면 샌다. 자녀들이 이런 누추한 곳에 어떻게 오겠냐”며 “적적함을 떨치려 보든 안 보든 간에 그냥 TV만 틀고 있는 게 전부”라고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마을은 산기슭 아래 있어 지대가 높은 지역서부터 낮은 지역까지 거처가 다양했다. 지대가 낮아 가장 침수 피해가 컸던 한영애씨 집은 무너져버려 새롭게 집을 짓고 공사가 한창이었다.

그는 “집이 완파됐는데 강남구청은 겨우 200만원 주고 끝”이라며 “자원봉사자들을 보내줘서 집을 고쳐주는 것도 아니고 일꾼들 품삯만 따져도 족히 200만원은 넘는데 수해 피해보상이 너무 작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과일을 판매하고 있던 이영희(가명, 70대)씨는 “이번 추석은 방문자 수도 적고 수해 복구로 인해 지난번 명절 때보다 들여놓은 과일들의 판매량이 많이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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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해로 무너진 한영애씨 집이 새롭게 지어 주변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천지일보 2022.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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